-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쳐
'판춘문예'라는 용어가 있다. 포털사이트의 여론광장인 '네이트판' 인기글에 오르기 위해 없는 이야기를 진짜처럼, 혹은 크게 과장해서 지어낸다는 뜻으로 '판'과 '신춘문예'의 합성어다. 판 인기글로 전국민의 공분을 샀지만 허위로 드러난 ‘세 모자 성폭행 사건’(2015년)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 판춘문예는 과거의 명성을 잃었다.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이 생기면서부터다. 판춘문예 '작가'들이 국민청원으로 몰려갔다는 소문이 돌았다. 네이트판의 사용자는 줄었고 네이트판과 비슷한 서비스였던 포털사이트 다음(DAUM)의 '다음아고라'는 국민청원 게시판이 활성화되던 2018년 말 문을 닫았다.
네이트와 다음 등 포털사이트에서 여론을 형성하던 토론게시판의 이용자들은 대거 SNS로 몰려갔다. SNS에서 소화할 수 없는 긴 글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등장했다. 청와대 홈페이지 방문자는 박근혜정부때는 월 5만명 전후에 불과했지만 국민청원 도입 후에는 월평균 방문자수가 500만~700만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판'처럼 허위 내용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도 했고, 결국 '판춘문예'같은 사건이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일어났다. 지난 3월 한 청원인이 올린 "25개월 딸이 이웃 초등5학년 남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청원은 53만여명의 동의를 얻었지만, 이는 허위 사실로 밝혀졌다. 청원인은 "같은 아파트에 사는 지인의 아들인 초등 남학생이 딸을 성폭행해 병원 진료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조사 결과 해당 지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강정수 청와대 디지털소통센터장은 19일 청와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25개월 딸 성폭행한 초등생 처벌' 청원에 답하며 "해당 청원은 허위사실"이라고 밝혔다. 강 센터장은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가해 아동이 실존하지 않고 피해 아동의 병원 진료내역도 사실과 다른 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53만명의 분노를 불러일으킨 해당 청원이 두 달이 지나서야 거짓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이다.
이밖에도 청원 중 사실과 다른 내용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고, 더 많은 동의를 위해 일부러 자극적인 표현을 쓴다는 얘기도 나온다. 청와대 내에서는 이에 대한 진실 여부를 여과할 장치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국민청원이 국민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도 있지만, 또다른 억울함을 가져오기도 한다는 사실을 청와대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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