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박근혜가 총선 출마 생각했고 전두환이 이를 지지했다"는 미 국무부 기밀문서는 사실일까? : 월간조선

지난 5월 15일 공개된 1980년 당시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에는 흥미로운 얘기가 하나 있다. 12·12사태 두 달 뒤인 1980년 2월 작성된 문서인데 당시 28살이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총선 출마를 희망했고, 실권자이던 전두환 당시 국군보안사령관도 이를 지지했다는 얘기였다.

<1980년 2월에 작성된 미 국무부 문서는 “암살된 대통령의 딸에 갑작스러운(rash) 야심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면서 “사정을 잘 아는 민주공화당(DRP) 국회의원’에 따르면 박근혜가 다음 총선에 자신의 아버지 고향이 포함된 지역구에 출마하길 바란다(wish)”고 전했다. 그러면서 “청와대 경호 근무를 통해 박정희 대통령 일가와 친해졌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이런 상황을 알고) 박근혜에게 출마를 강력히 권유(urge)했다”고 전했다. 문서는 또 “민주공화당 지도부가 박근혜의 출마가 박정희 시대를 주요 선거 이슈로 만들어 당내 분열을 일으키고 제3당 창당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김종필이 박근혜가 출마하지 않도록 설득하려고 할 수도 있지만, 그가 성공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이 1981년 3월 25일 치러진 11대 총선에 불출마한 이유가 무엇인지 이번 문건에 정확히 나오지는 않았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은 2007년 발간한 자서전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나날이 만족스러웠다. 정치를 해볼 생각이 없느냐는 제안을 종종 받았지만, 단호히 거절했다"고 썼다.> (조선일보 2020년 5월 15일자)

미국 국무부 보고서에 나오는 얘기이기는 하지만, 당시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이를 의아하게 생각한다.

우선 보고서에서는 ‘청와대 경호 근무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 일가와 친해졌던 전두환 보안사령관’운운하지만 실제로 전두환 장군 측과 박정희 전 대통령 유족측의 관계는 상당히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장(國葬)을 치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족들이 서울 신당동 사저로 이사하고 난 후 당시 보안사령부의 실세였던 모(某)씨는 박근혜 영애에게 “당신은 이제 공주가 아니다. 일반 국민으로 살아가는 법을 익혀야 한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그로서는 나름 충심 어린 충고였다고 하지만, 그 말을 듣는 박근혜 영애는 이를 불쾌하게 받아들였다고 한다.

양측의 불편한 관계는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전두환 장군이 1980년 8월 대통령이 되면서 새 정부측에서는 정책적인 측면이나 이미지 메이킹 측면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을 폄하하고 전두환 당시 대통령을 띄우는 일들을 많이 했다. 전두환 정권 초기에는 박정희 시대 인사들이 10‧26 추도식을 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족이나 측근들은 이를 배신으로 받아들였고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 대해 서운한 감정을 많이 가졌다고 한다.

반면에 전두환 전 대통령측에서는 “10‧26사태 후 박정희 대통령의 명예를 지켜주기 위해 5공 정부가 얼마나 애썼는데, 그걸 몰라준다”고 서운해 했다고 한다.

전두환 정권이 박근혜 영애의 곁에서 말썽을 일으키던 최태민씨를 떼어놓기 위해 전방 군부대로 격리시킨 것도 박근혜 영애를 화나게 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후일 회고록에서 “10‧26 이후 나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영애인 근혜 양과 함께 구국봉사단, 새마음봉사단 등을 주도해왔던 최태민씨를 상당 기간 전방의 군부대에 격리시켜 놓았다”면서 “최태민씨가 근혜 양을 등에 업고 박정희 대통령을 괴롭혀온 사실을 이미 관계기관에서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는 “나는 최태민씨가 더 이상 박정희 대통령 유족의 주변을 맴돌며 비행을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격리시켰지만, 처벌을 전제로 수사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반정부 변호사로 김재규의 변호인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는 “박근혜가 ‘오빠 오빠’ 부르며 따르던 사이였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원 때문에 결국 전두환 대통령이 최태민을 풀어줬다고 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 측근은 “10‧26사태 이후 김재규 수사 보고와 관련해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박근혜 영애를 만났을 때와 둘째 영애(박근영) 결혼식 때 전두환 대통령 부부가 참석했을 때 본 것 외에는 두 사람이 따로 만난 적이 없었던 것으로 안다”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회의원 출마 의사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할 기회 자체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80년이면 큰 영애가 칩거할 때였고, 정치 같은 데는 뜻을 둘 상황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시절이던 2013년 7월 ‘전두환 추징법’이라고 불리는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이 만들어져 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의 재산에 대한 추적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이순자 여사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따님 대통령 시절에 와서…나는 생을 포기할 뻔했다”고 술회했다.

한편 전두환 전 대통령은 2017년 펴낸 회고록에서 “2002년 ‘미래연합’을 창당한 당시 박근혜 의원은 자신에게 사람들을 보내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히며 도움을 요청했다”며 “완곡하게 그 뜻을 접으라는 말을 전하도록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실패했을 경우 박정희 대통령을 욕보이는 결과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전달하게 했다"면서 “당시 박근혜 전 의원이 지니고 있는 여건과 능력으로는 무리한 욕심이라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

이상의 관계로 볼 때 박근혜 전 대통령이 1980년 국회의원 출마 의사를 표했고, 당시 보안사령관이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를 지지했다는 미국 국무부 문서의 내용은 그 신빙성이 의심된다. 당시 주한미국대사관이 국무부에 보고한 내용은 현지 대사관이 수집한 ‘첩보’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미국 국무부 기밀문서라고 해도 그걸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것은 아니라는 얘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