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피해 ‘동물의 숲’으로…‘동·숲’이 대체 뭐기에? : 월간조선

‘동물의 숲’을 처음 접한 건 한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다. 한눈에 보통 게임기가 아니구나 싶었다. 게임기를 판다고 글을 올렸는데, 돈만 받는 게 아니라 면접까지 보겠다고 한 것. 게시글에는 “게임기는 36만원으로 정가 그대로 팔겠으며, 이 게임기가 향후 되팔리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면접도 함께 보겠다. 아래 세 가지 질문에 서면으로 답을 해 달라. ‘동물의 숲’이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1200자), 동물의 숲 에디션으로 이루고자 하는 가치가 있다면(1500자), 내가 꼭 사야만 하는 이유(1000자)”라고 적혀 있다.

아, 도대체 게임 하나가 뭐기에 면접까지? 이후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나만 빼고’ 다 아는 게임이었다. 그래픽은 화려하지 않다. 과장 조금 보태 초등학생이 그려놓은 그림 같다. 놀라운 건, 이런 게임기를 (면접을 불사하고) 사겠다는 이가 줄을 이었다는 점이다.

살펴보니, 게임 내용도 무척 단순하다. 무인도로 이사해 집을 짓고 살아가는 거다. 그러면서 동물 주민들과 대화하고, 가구를 사서 집을 꾸미고, 과일을 따고 낚시를 하고 나비도 잡는다. 현실세계에서는 가질 수 없는 주거공간을 가진다는 게 재미 요소다. 이를테면 집 마당에 폭포도 만들 수 있다. 친구의 섬에 놀러가 그가 꾸며놓은 공간을 구경하는 건 또 다른 묘미다. ‘다른 이의 세계’는 만인의 관심사니까.

무엇보다 이 게임의 백미는 따로 있는 듯했다. 우선 캐릭터가 모두 웃는 얼굴이다. 이들은 대화할 때 항상 ‘나의 이름’을 불러준다고 한다. 지친 퇴근 후 접속했더니, 동물 친구들이 모여서 노래를 불러줘 감동이었다는 게임 후기도 보인다. 게임 이용자인 이진아(27)씨는 “입고 싶은 옷을 마음껏 사고, 코로나19로 볼 수 없는 벚꽃놀이를 게임 속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치열하고 각박한 삶 속에서 생략하게 된 서로의 안부, 위로, 아쉬움, 반가움 등의 감정들을 게임 속에서 대신 공유한다는 게 이 게임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이용자들 사이에서 동숲이 ‘힐링 게임’이라 불리는 이유다.

치고 박고 깨부수는 치열한 싸움 끝에 비로소 세계를 제패하는, 세계까지는 아닐지라도 누군가의 우위에 서는, 누군가와 ‘경쟁’하고 무언가 ‘달성’하는 게임에, 혹은 현실에, 익숙한 이들에게는 무척이나 ‘심심할 수 있는’ 게임. 이런 ‘동물의 숲’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있다. 모 연예인은 “이 게임을 하면서 삶의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고 까지 했다.

실제로 판매고도 어마어마하다. 출시일인 지난 3월 20일. 일본 최대 게임 매체인 패미통에 따르면 발매 이후 사흘간 일본에서만 188만장(실물 패키지 버전) 이상 팔렸다. 닌텐도 스위치용 게임 출시 첫 주 판매기록으론 역대 최고다. 세계 최대 게임 시장인 미국에서도 아마존 비디오 게임 분야 4위에 올랐다. 북미 닌텐도 e숍에서도 1위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오프라인 정식 판매 당시 3000명 이상이 줄을 섰다.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 마트에서도 매진 행렬이 이어졌다. 이마트 관계자는 “동물의 숲은 현재 모두 품절이라 4월 초에나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지만 아직 정해진 건 없다”고 했다. 앞서 닌텐도는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동숲 에디션’의 다음번 출하는 4월 상순으로 예정돼 있다고 밝혔다.

이 게임을 실행하는 플레이어인 ‘닌텐도 스위치’ 가격도 급등했다. 3월 30일 기준, 다나와에 따르면 닌텐도 스위치 최저가는 57만9000원으로 1월 초(33만5000원)와 비교하면 72%나 올랐다. 각 중고거래 사이트에서는 웃돈을 주고도 사겠다는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유니클로는 입으면 안 되고 ‘동물의 숲’은 괜찮다고 하는 이중적인 사람들의 ‘선택적 노재판(NO JAPAN)’”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새다. ‘동물의 숲’은 노재팬의 버뮤다 삼각지대인 셈이다.

일본 닌텐도는 전 세계 게임 산업을 이끌어나간 기업이다. ‘게임기 외길’로 100년 이상을 걷다, 지난 2009년 스마트폰이 보급되면서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2008년 1조8000억 엔(약 19조6000억원)에 달하던 매출은 6600억 엔(약 7조2000억원)까지 줄었고, 2011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이후 줄곧 적자에 허덕였다.

그런데도 닌텐도는 모바일 게임 시장에 뛰어들지 않았다. 자체 하드웨어를 줄곧 고집했다. 당시 닌텐도는 “모바일 게임을 만든다면, 닌텐도는 더 이상 닌텐도가 아닐 것”이라고 했다. 그러던 지난 2017년 기존 게임기의 단점을 보완한 ‘스위치(Switch)’를 출시했고, 10년 정체기 끝에 매출은 반등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동물의 숲’으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글=박지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