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부부의 설날 장보기, 메르켈 독일 총리의 동네 장보기 : 월간조선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는 설 연휴 전날인 1월 23일 농협 양재 농산물종합유통센터를 찾아 장보기를 했다. 언론에서는 김정숙 여사가 “당신이 좋아하는 거잖아”라며 어리굴젓을 카트에 담기도 했다는 둥의 이야기를 전했다.

하지만 이날 장보기는 청와대가 경자년(庚子年) 설을 맞이해 차례를 준비하는 국민들을 만나 소통하고, 농산물 구매를 촉진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데서부터 드러나듯 다분히 ‘연출’된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우선 서울 종로구 효자동 1번지에 사는 대통령 부부가 양재동까지 장보기를 하러 나섰다는 것부터가 자연스럽지가 않다.

대통령 부부가 나병만 농협유통 대표이사의 안내를 받으며 장보기에 나섰다는 것이며, 문 대통령은 농촌 청년 창업가 김미선 지리산피아골직품 대표를 만나 농촌에서의 청년창업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것에서도 연출의 티가 풀풀 난다. 대통령 부부 바로 뒤에 따라붙은 날카로운 눈매의 경호원의 모습을 보며, 그날 우연히 대통령 부부가 장보기 할 때에 그 곳에 있었던 소비자들은 즐겁기만 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설날 장보기는 국내 언론에서도 종종 보도됐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장보기와는 대조적이다. 조선일보는 지난 2015년 5월 2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장보기에 대해 보도했다. 그해 4월 30일 저녁 독일 베를린 중심가 빌헬름거리의 한 수퍼마켓에서 장을 보는 메르켈 총리의 모습을 보도한 것이다. 당시 한경진 조선일보 베를린 특파원은 그 수퍼마켓이 메르켈 총리가 22년째 단골로 다니는 곳이라는 얘기를 듣고 대기하고 있다가 메르켈 총리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데 성공했다.

당시 메르켈 총리는 아우디 방탄승용차에서 내려 꼬깃꼬깃한 백화점 장바구니를 들고 혼자 1유로(1200원)짜리 동전을 넣어 카트 한 대를 꺼내더니 성큼성큼 수퍼마켓 안으로 밀고 들어갔다고 한다. 22년째 메르켈 총리를 봐 왔다는 직원 헬가 마쿠아스씨는 "주로 퇴근길에 들러요. 그럴 때면 우리가 뉴스에서 보던 정장 차림이지요. 쉬는 날에는 청바지를 입고 오기도 합니다. 뭘 사는지 주의 깊게 본 적이 없지만, 오렌지는 꼭 사요. 그녀는 모든 종류의 물건을 삽니다“라면서 ”그러니까 제 말은 일반 시민과 별 다를 게 없다는 뜻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조선일보 보도에 의하면 메르켈 총리는 이날 오렌지, 샐러드용 채소, 가지, 양배추 등 신선 식품과 로션, 주방용 타월, 크림치즈, 레드와인, 초콜릿, 밀가루, 토마토 소스 등을 구입했는데, 시든 양배추 껍질을 일일이 떼어낸 뒤 상품을 카트에 담거나, 눈을 가늘게 뜨며 루콜라(샐러드용 채소의 한 종류)의 선도를 살피는 모습, 종이에 미리 적어온 쇼핑 내역을 보며 물건을 이리저리 찾는 모습은 평범한 아줌마와 다를 바 없었다고 한다.

수퍼마켓 안 사람들은 총리와 마주쳐도 놀라지 않고 장보기에 집중했고, 메르켈 총리 역시 계산대로 가서 남들과 똑같이 줄을 서고, 물건을 올려놓고, 판매원과 눈인사를 한 뒤 장바구니에서 푸른색 장지갑을 꺼내 카드 결제를 했다고 보도는 전했다. 종종 메르켈 총리는 거의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남편 요하임 자우어 교수와 장을 보러 오기도 한다고 한다.

물론 메르켈 총리에게도 경호원은 따라 붙었다. 하지만 그들은 회색 정장의 경호원 두 명은 5~10m 떨어진 곳에서 묵묵히 총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경호원들처럼 대통령 곁에 밀착해서 계속 카메라에 잡히거나, 경기관총을 소지한 모습을 드러내지도 않았다.

조선일보 기자가 메르켈 총리의 사진을 촬영하자 멀리 서 있던 경호원은 다가와 “이곳은 총리에게 사적인 공간이어서 가급적 찍지 말아 달라"고 요청하기는 했지만, 제지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장보기 하는 동안 경호원들이 근접경호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보인다.

이날 보도는 조선일보 기자가 작정하고 대기하고 있다가 보도한 것이지만, 2007년에는 독일 일간지 《빌트》가 앙겔라 총리의 장보기를 보도한 적이 있었다. 앙겔라 총리가 기차역 구내 슈퍼마켓을 방문해 오렌지와 레몬 등을 사는 것을 우연히 목격한 한 시민이 사진에 담은 것이었다. 이날도 메르켈 총리는 물건을 고른 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계산대 행렬에 줄을 섰으며, 자신의 지갑에서 현금을 꺼내 물건값을 지불했다고 한다.

글=배진영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