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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版 백의종군-몽클라 장군

오동룡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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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클라 장군의 백의종군 기자는 최근 지갑종(池甲鍾ㆍ76) 유엔한국참전국협회장이 연합신문 정치부 차장시절, 몽클라(Monclar) 장군을 인터뷰한 기사를 우연히 보게 됐다. 인터뷰를 보면 그가 스스로 ‘계급 강등’의 길을 선택한 이유가 나온다. 기사 全文을 소개한다. <參戰16個國 歷訪-본사 池甲鍾 특파원 현지보고(佛蘭西에서)> 중령 계급장 달고 참전한 몽클라 中將 會見談-연합신문 1959년 1월13일자 “韓國軍은 세계 제1급 군대 조속한 시일내 통일 冀願” 한국참전 16개국중 10번째로 벨기에(白耳義)의 방문을 마친 본 기자는 그 인국(隣國)인 佛불란서(佛蘭西)를 열한번째로 방문하게 되었다. 여정도 초조(焦燥)히 이 나라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당지시간(當地時間)으로 1월9일 하오 6시 30분이었다. 드골씨 지도하에 제5공화국으로 힘찬 발걸음을 내어 디디려는 이 불란서공화국은 오랜 역사를 두고 세계의 중심을 이룬 나라이지만 우리의 기억에 무엇보다도 생생한 것은 6.25동란 당시 용약(勇躍) 한국에 파병하여 그 전통적인 무용을 대공전(對共戰)에 바친 사실이다. 동란이 발생한 해인 8월20일에 일부 지상선발대를 파병하고 계속하여 주력부대인 1개독립 보병대대를 갖고 한국동란에 참전하였던 것이다. 3차에 걸쳐 병력의 교대가 있었는데 이 동안 참전한 용사들은 전부가 지원으로 이루어진 장병으로서 구성되었으며, 제1차 파병은 저 유명한 말세이유 항(港)을 출발하여 1950년 11월24일 한국에 도착한 것이다. 여기에서 좋던궂던 기자가 들은 불란서 파병 이면(裏面)의 일단을 소개하건대, 당시 이 나라는 제2차 세계대전의 막대한 출혈에 지친 나머지 한국파병의 첫 1개 대대가 ‘말세이유’항을 떠나려던 때 일부 시민들이 부두와 대로에서 트럭을 통과 못하게 방해 메모를 하여 1일간 출발을 연기하여 다음날 새벽 일찌기 승선시켰다는 것이다. 이들 일부 시민들의 파병반대 이유는 세금이 오른다는 것이었다 한다. 그러나 현명한 佛蘭西 지도부는 인류정의의 굳은 신념 밑에 기어코 파병은 단행하고야 말았다. 한편 불란서 해군 순양함은 육군에 앞서 1950년 7월19일부터 한국동란에 참전하였던 것이다. 본 기자는 파리 제재중 1월13일 하오 우리나라에 참전했던 현 퇴역장교인 R. 몬크라 중장을 회견할 기회를 얻었다. 同 장군은 참전 당시 불란서 병력이 대대로 편성된 관계로 ‘중장’ 계급을 ‘중령’ 계급으로 바꾸어 달고 참전하여 同 부대를 지휘하였다는 에피소드의 인물인데, 귀국후 다시 중장에 복귀하였던 것이다. 동 장군은 기자의 순방취지를 들은 후 “우리는 지원병으로서 한국군과 협동하여 자유를 수호코자 싸웠으며 나아가서는 우리 자신이 평화스럽게 살고자 싸웠다”라고 전제한 다음 이어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본인은 1950년 12월부터 1952년 2월까지 한국전선에서 싸우는 동안 중부전선에 배치되어 있었다. 공산군과 최초의 교전은 1951년 1월 하순 가평(加平)지구 ‘지평리’에서였으며, 이 전투는 약 2주일간 계속되었다. 이는 우리의 참전중 가장 큰 격전의 하나였다. 우리는 원주(原州)와 인제 등지에서 참전중 젊은 한국학생의용군 1개 중대와 같이 있었는데 나이 어린 이들의 애국심과 투지에는 오직 감명(感銘)이 깊었고, 그 만만한 정신에는 머리가 수그러졌다. 그리고 오랜 군인생활을 하여온 나의 눈으로 볼 때 한국군은 용감한 군인으로서 세계 제일급의 군대이다.” 同 장군은 충심으로 우리 군대를 칭찬해 주는데는 本 기자도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이어 그는 우리 군대의 용감성의 일단을 본 그대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인제 지구 전투에서였다. 한국군은 우리의 우측에 있었는데 그들은 놀랍게도 단 하룻동안에 칠차에 걸친 공격전을 감행하고 끝내는 적의 중요한 거점(據点)인 고지를 탈환하고야 말았다. 이는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사실이며 나의 경험으로 일찌기 보지 못한 감투력(敢鬪力)이다.” 그는 이렇게 극구 칭찬했다. “우리는 결국은 자유를 위하여- 나아가서는 한국통일을 위해 싸웠다. 한국전처럼 세계 각국의 군대가 출병한 전례는 일찌기 없었는데 보람도 없이 국토가 양단된 채 있다는 것은 참전한 본인으로서는 더욱 유감히 여기는 바이다. 조속한 시일내에 통일이 이루어지기를 진심으로 바라마지 않는 바이다.” 기자의 휴전소감 질문에도 장군은 무척 동정적이었다. 이 회견석상에서 몬크라 장군은 李대통령 각하와 全한국민들에게 본인의 최대의 경의와 인사를 전해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었다. 同 장군의 이날 설명에 의하면, 1951년 1월9일부터 동년 10월18일까지 참전 불란서 군대가 입은 희생은 전사자 330명, 전상자 1089명, 동상자(凍傷者) 399명의 큰 숫자를 표시하는 것이었다.*

입력 : 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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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msi@chosun.com 기자클럽 「Soldier’s Story」는 국내 최초로 軍人들의 이야기를 전문으로 다루는 軍隊版 「피플」지면입니다. 「Soldier’s Story」에서는 한국戰과 월남戰을 치룬 老兵들의 인터뷰를 통해 이들이 후손들에게 전하는 전쟁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합니다. 또한 전후방에서 묵묵하게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軍人들의 哀歡과 話題 등도 발굴해 기사로 담아낼 예정입니다. 기자클럽 「Soldier’s Story」에 제보할 내용이 있으시면 이메일(gomsichosun.com)로 연락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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