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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

정경두가 감싸려는 듯 한 모습 보인 김일성의 실체

北 김정은 할아버지 김일성의 6가지 역사조작 사례

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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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DB.
순간 멍했다. 국군의 수장이  6·25전쟁을 일으켜 민간인 포함 300만명을 죽게 한 전범(戰犯) 김일성을 감싸려는 듯 한 모습에 말이다.
 
정경두 국방장관은 지난 3일 오후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한 자리에서 한 야당의원의 6·25가 김일성과 북한 노동당이 벌인 전쟁범죄인지를 묻는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재차 묻자 "어떤 의미로 말씀하시는거냐"고 되묻고선, "북한이 남침한 전쟁이라고..."라고 말했다.

"6·25전쟁은 김일성과 북한 노동당의 범죄인가"라는 질문에 7초가량 머뭇거리며 답하지 않다가 겨우 답변한 것이다. 이에 《월간조선》은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 원장이 집요한 추적 끝에 밝혀낸 김일성 관련 진실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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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열 자유민주원 원장. 조선DB.

대북‧안보 전문가인 유동열 자유민주원 원장은 지난 4월 15일 이렇게 말했다.
 
“북한과 국내 일부 학자 및 북세력들에 의해 항일애국투사로 둔갑된 김일성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굴절된 한국 현대사를 재정립하는 중요한 작업이다.”
 
이날은 북한 최고 명절인 김일성의 107회 생일날이었다. 북한은 김일성을 ‘태양’이라 칭하고 그의 생일날을 ‘태양절’이라고 명명하며 매년 대대적인 축하행사를 개최한다.  유 원장은 우선 김일성의 6가지 거짓부터 밝힌다고 했다.
 
①김일성 가계는 외세침략에 대항한 애국적이고 혁명적 가정이다.
 
→김일성의 증조부 김응우와 조부 김보현은 북한 주장처럼 샤먼호사건과 일제침략에 대항한 열렬한 애국자가 아니라 평범한 농부였다. 다만 김일성의 아버지 김형직은 어느 정도 학식과 민족의식도 가진 인물이었는데, 고향을 떠나 만주에서 한의업에 종사했고 한때 민족주의적 독립운동단체인 정의부(正義府) 계통의 백산무사단(白山武士團)이라는 조직의 일원이기도 했다. 그러나 북한 주장처럼 불요불굴의 혁명투사는 아니었다. 어머니 강반석도 북한 주장처럼 조국의 광복과 여성해방을 위해 싸운 열렬한 혁명투사나 공산주의 여성운동의 시초를 열어놓은 탁월한 지도자와는 거리가 멀다. 보통 가정주부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김일성의 가계는 역사적 문건들에 자신들의 이름을 남길 만한 행동을 하지 않고 평범한 서민의 삶을 살다가 간 보통사람들이었다.
 
②김일성이 1926년 10월 17일 반일청년혁명조직이라는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했다.
 
→타도제국주의동맹은 1926년 당시 존재하지 않았다. 1930년경 민족주의단체였던 국민부 산하에 남만 한인청년동맹 계통의 청년들이 만든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김일성이 결성했다고 조작한 것이다. 심지어 26년에는 김일성이 14세에 불과했다. 14세의 김일성이 사회주의사상에 심취해 반일지하혁명 조직을 결성하고, 지휘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북한에서 타도제국주의동맹의 존재가 등장한 것은 1968년 ‘민족의 태양 김일성장군’이란 책 발간 이후다. 이전 북한 문헌에서는 그들 주장대로 그렇게 중요하고 역사적 의의가 큰 이 동맹에 대해 전혀 언급이 없었던 것이다.
 
③김일성은 1930년 6월 30일 중국 만주 장춘현의 카륜에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 지도간부회의’(일명 ‘카륜회의’)를 소집했다.
 
→1930년 당시 김일성은 남만주에서 민족주의단체인 국민부(國民府) 산하 청년조직인 ‘남만 한인청년동맹’에서 평 조직원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바, 주체사상의 원리를 천명하거나 독자적으로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하며 조선혁명의 주체적 노선을 정립할 여유나 위치에 있지 않았다. 또 북한은 당시 김일성이 ‘조선혁명의 진로’ 논문을 ‘볼쉐위크’지에 수록됐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동 잡지는 1929년 4월 서울 상해파라는 공산주의그룹이 창간한 잡지로 그런 논문이 수록된 적이 없다. 아울러 당시 나이 18세인 김일성이 주체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주체사상을 실질적으로 정립한 것으로 알려진 황장엽 선생(전 조선로동당 비서)에 의하면 주체사상은 1970년대에 그 이론적 토대를 갖춘 것으로 증언하고 있다.
 
④김일성은 1932년 4월 25일 조국의 광복을 위해 항일무장군사조직인 조선인민혁명군(이전의 조선혁명군, 반일인민유격대 포함)을 창건했다.
 
→김일성이 조직했다는 조선혁명군은 국민부(國民府) 산하 독립군조직으로 김일성이 조직한 것이 아니다. 김일성은 1930년 4월 조선혁명군에서 탈퇴한 공산주의계열의 대표격인 이종락(李種洛, 당시 조선혁명군 제9대장)이 결성한 ‘국민부 탈퇴파 조선혁명군’에 1930년 7월초 참사(參士: 하사관) 자격으로 입대해 마적 활동하다가 1931년 1월 동 조직이 괴멸되면서 자연스럽게 이탈했다. 김일성이 1932년 결성했다는 반일인민유격대와 1934년 조선인민혁명군 역시 조작이다. 당시 김일성은 만주 동만지방의 중공 유격대(1933년 중국공산당 동북인민혁명군으로 통합)에 입대해 중국공산당을 위해 충성을 바치고 있었다.
 
⑤ 김일성은 1936년 5월 5일 김일성이 무송현 동강회의에서 전국적 규모의 반일민족통일전선 조직인 조국광복회를 창설했다.
 
→이 역시 철저한 역사날조이다. 조국광복회의 원래 명칭은 ‘재만한인 조국광복회’(在滿韓人 祖國光復會)이며 중국공산당이 항일연합전선을 강력히 주장한 이른바 ‘8·1선언’(1935년)을 한 이후 만주에서 항일한인 통일전선체를 결성하기 위해 1936년 6월 10일 중국공산당의 지령을 받아 한인당원인 전광(全光)에 의해 결성됐다. 동 단체의 회장이었던 전광의 본명은 오성륜(吳成崙)으로 중국의 동북항일연군 제2군 제3사장(후에 제6사장)으로 김일성의 직속 상관이었다. 김일성은 전광의 지휘하에 ‘재만한인 조국광복회 장백현 공작위원회’에 일부 간여했을 뿐이다. 김일성이 조국광복회를 손수 조직하고 회장으로 추대되어 각종 항일투쟁을 주도했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는 조작인 것이다.
 
⑥1937년 보천보전투는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사 중 가장 빛나는 업적이다.
 
→보천보전투란 1937년 6월 4일 김일성이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를 인솔하고 일제의 전략상 요충지인 함경남도 갑산군 보천보(현재 양강도 보천군)를 습격해 승리를 거뒀다는 전투를 말한다. 보천보전투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보천보전투를 수행한 부대는 북한이 주장하는 것처럼 김일성의 조선인민혁명군이 아니라 중국공산당 동북항일연군 제6사 북조선원정대 사령이었던 김일성(북한의 김일성 즉 김성주와 다른 인물: 1901년 함남생, 모스크바공산대학 졸업, 1931년 중국공산당 가입, 동북항일연군 제6사장, 1937년 11월 13일 무송현 양목정자에서 만주군과의 전투중 사망)의 부대이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보천보전투의 성과는 북한이 선전하는 것과는 달리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니다. 당시 보천보는 1380여명(일본인 50명, 중국인 10명, 조선인 1323명)이 살고 있는 작은 마을로 무장병력은 겨우 5명의 일본주재소 순사(경찰)뿐이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07.05

조회 : 8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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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박리 (2019-07-10)

    감사합니다.

  • 정을기 (2019-07-06)

    장경두 혹시 간첩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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