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진보정치는 ‘광신주의’ 배격해야... 사악한 이가 권력 잡으면 민주국가도 惡을 저지른다” : 월간조선

고(故) 노무현 대통령 10주기가 다가옴에 따라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행보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jtbc 시사프로 〈썰전〉 패널로 인지도를 높인 유 이사장은 올해 초부터 유튜브 방송 ‘알릴레오’를 진행하면서 대중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보수 텃밭’으로 불리는 유튜브 전장(戰場)에서 그의 방송은 수십 만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는 등 주목을 받고 있다. 내달에는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TV홍카콜라’와의 ‘콜라보 방송’도 예정돼 있다. tvN 예능프로 〈알쓸신잡〉에 나와 입담을 과시하기도 했던 그는 근래 KBS 예능프로 〈대화의 희열〉에도 출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유 이사장의 정치적 발언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 이사장은 지난 11일 대전에서 열린 ‘노 대통령 서거 10주기 시민문화제’에서 “그분(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은 여전히 공안검사다. 정치를 하시는 분이 어떤 정당을 해산시킨 것을 국무총리와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큰 업적으로 생각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그래서 그 분이 정말 예뻐 보이더라. (여권에서 볼 때는) 정말 잘해 주신다”라며 “그 분은 최소한 거짓말을 하는 분은 아니다. 정직하게 자기가 아는 것을 가지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얘기를 한다”고 평가했다. 유 이사장은 다음날 광주에서 열린 같은 행사에서 “(황 대표의 광주행은) 얻어맞으러 오는 것이다. 황 대표가 나타날 땐 눈 마주치지 말고, 말 붙이지 말고 뒤돌아서는 게 최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유 이사장은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한때 학생운동 동지(同志)였던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과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밀고(密告) 논란으로 공방(攻防)을 벌이고 있다. 온라인 여론조작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는 ‘드루킹’이 유 이사장을 언급하기도 했다. 드루킹은 지난 15일 법정에서 “명절에 (경공모가) 선물을 주는 사람이 몇 명 있었는데 유시민에게도 설이나 추석에 한우 세트를 여러 차례 보냈다”며 “본인도 받으면 고맙다며 핸드폰으로 동영상도 찍어 보냈는데, 이 사건 터지고 방송에 나와서 저를 전혀 모른다고 해 깜짝 놀랐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켰다.

또한 유 이사장 본인은 수차례 부인했지만 여전히 이낙연 국무총리와 함께 여권(與圈)의 유력한 ‘대권주자’로 꼽히고 있다. 《경향신문》은 16일 유 이사장의 존재감을 분석한 기사에서 “유 이사장의 전방위 행보는 여권 내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며 “정치 재개 가능성과 관련해, 우선 여권 위기론이 고조될 경우 2022년 대선에 직접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대표적”이라고 밝혔다. 이 매체는 “유 이사장이 직접 플레이어가 아니더라도 최소한 킹메이커 역할을 자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고 했다.

‘정치적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유 이사장의 국가관(國家觀)·사회관(社會觀)은 어떠할까. 그가 정치를 그만둔 뒤 펴낸 여러 권의 책에서 이를 엿볼 수 있다. 그중 2011년 나온 책 《국가란 무엇인가》는 2017년 개정 신판으로 다시 나와 베스트셀러가 됐을 만큼 유 이사장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그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소득 불평등 해결, 國家가 나서야”

“대한민국에서 소득과 부가 분배되는 과정과 결과는 결코 정의롭다고 할 수 없다. 어려움이 있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가가 법률을 정비하고 과정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물론 완전하게 정의로운 사회를 실현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그래서 헌법을 만든 이들은 불의를 만드는 근본원인을 제거함으로써 정의를 실현하도록 노력해야 할 국가의 의무를 헌법에 명시하면서,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할 경우 국가가 결과를 사후적으로 바로잡는 ‘대증요법’을 쓸 수 있도록 배려했다.

공정한 시장경쟁을 통해 승패가 나뉘는 경우에도 승자와 패자가 받는 보상의 격차가 너무 클 경우에는 패자가 흔쾌히 승복하기 어렵고 승자도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하물며 공정한 경쟁의 조건조차 확립되지 않은 경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럴 때 국가는 결과의 격차를 사후적으로라도 보정할 책임이 있다. 헌법은 이를 위해 몇 가지 국가의 의무를 명시해두었다. 이것이 사회보장과 사회복지를 증진할 국가의 의무이다.”

“진보정치, 자유주의적 氣風 필요”

유 이사장은 또 “진보정치는 열정을 요구하지만 광신주의를 배격해야 한다. 그것은 일당독재, 신정국가, 국가의 신격화 등 여러 형태의 전체주의로 귀결될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는 “진보정치는 자유로운 개인의 내면에 튼튼하게 닻을 내린 도덕적 이상과 인류에 대한 자비심,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관용의 정신과 겸허하게 진리를 추구하는 태도를 요청한다”며 “진보정치에는 자유주의적 기풍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국가는 때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부당하게 억압하는 폭정을 성공시킴으로써 그것이 폭정임을 은폐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아무리 철저하게 권력을 분산하고 강력한 견제장치를 만들어놓아도 제도를 운영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사람이 만든 어떤 것도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한다”며 “완전무결한 민주주의 제도가 있다고 해도, 권력이 완전하지 못한 인간의 손에 있는 한 반드시 문제가 일어난다”고 했다.

유 이사장은 “인간이라면 누구도 권력남용의 욕망을 완전하게 제어하지 못한다. 소위 ‘완장문화’는 인간적 본능의 표현”이라며 “사악한 인물이 권력을 잡으면 민주주의 국가도 악을 저지른다”고 주장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