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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비화]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비하인드

유치 위해 1년 동안 지구 13바퀴 돌며 IOC 위원들 설득

[편집자 주] 고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례가 서울 세브란스병원에서 회사장으로 5일간 치러지는 가운데 정재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16일 발인을 앞두고 조 회장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월간조선> 2011년 8월호에 실린 조양호 회장의 동계올림픽 유치 비화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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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동계올림픽 유치 에피소드

 

“어제의 적을 오늘의 동지로 껴안은 작전이 먹혔다”

 
글 :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가 결정되기 며칠 전에 대한항공에서 근무하는 선배가 전화를 걸어왔다. ‘평창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할 것 같으냐’는 얘기였다. 독일의 뮌헨이 예상 밖으로 선전(善戰)하고 있다는 얘기를 다른 루트로 건네 들은 터라 뚜껑을 열어봐야 알지 않겠느냐고 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언론에 오르내렸던 ‘평창’ 얘기가 쏙 들어간 터여서 내심 이번에도 실패가 아닌가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리고 온 국민을 열광하게 했던 지난 7월 7일 새벽 12시18분.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의 어설픈 ‘평창’ 발음이 울려 퍼졌을 때 그 선배 생각이 났다. 새벽 12시20분에 ‘축하한다’는 문자를 보냈더니 1분도 안 돼 답이 왔다.
 
  “고맙습니다. 본사는 축제 중입니다.”
 
  다소 의아했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평창이 세계적인 행사를 유치한 것이 자랑스러울 수 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한항공은 지창훈(智昌薰) 총괄 사장을 비롯해 임직원 600여 명이 본사에서 응원전을 펼치며 결과를 지켜봤다고 한다. 나중에 설명을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
 
  “조양호(趙亮鎬) 회장은 평창동계올림픽유치위원장을 맡은 후 회사 일에서 손을 떼다시피 했다. 지창훈 총괄 사장에게 업무를 일임하고 전문경영인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정작 본인은 회사 오너였을 때보다 더 바빴다. IOC 위원들이 모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지난 2년여 동안 조양호 회장은 한진그룹 회장이라기보다는 유치위원장이라는 타이틀이 더 어울렸다. 모든 시간을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썼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너가 저렇게 열정을 보이는데 직원들이 우리 일처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나.”
 

 
 
  스피치 트레이닝 전문가로부터 훈련받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명박(李明博) 대통령은 물론, 이건희(李健熙) 삼성그룹 회장, 김진선 전(前) 강원도 도지사, 피겨선수 김연아 등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애썼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뒤늦게 ‘3수생’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을 맡은 조 회장의 어깨는 남달리 무거웠을 것이다.
 
  동계올림픽 에피소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몇몇 관계자는 유치 성공의 요인 중 하나로 ‘적을 동지로 만든 부분’을 꼽았다. 조 회장이 위원장을 맡고 나서 초반에 했던 일이었다. 우리에게 두 번의 아픔을 준 데에는 테렌스 번스라는 미국의 ‘헬리오스파트너스’ 대표가 있었다. 그는 스포츠 컨설팅 회사의 대표로 2014년 소치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담당한 인물이다. 우리로서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조 회장이 이 사람을 영입하자고 했을 때 내부의 반대는 만만치 않았다. ‘우리의 약점을 고스란히 알고 있는 사람에게 그런 중차대한 임무를 맡길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유치위 관계자의 말이다.
 
  “조 회장은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내부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설득했습니다. 우리의 힘만으로 어렵다면 외국인을 전격 기용해서라도 유치를 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수행 인원을 과감하게 줄이고 대신 IOC 위원들을 공략할 수 있는 사람을 영입했습니다.”
 
  그뿐이 아니다. 조양호 회장은 IOC 위원들 앞에서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했다. 조 회장은 청중 앞에서는 일종의 ‘무대 울렁증’이 있다. 때마침 극장에서는 영국왕의 말더듬증 극복기를 다룬 영화 <킹스스피치>가 상영 중이었다. 조 회장은 이 영화를 보고 마치 자신의 일인 양 여겼다고 한다.
 
  조 회장은 수소문 끝에 스피치 트레이닝 전문가를 찾아내 같은 훈련을 수없이 반복했다. 앉으나 서나, 누워서나 소리를 지르고, 원고를 외웠다.
 
 
  정부의 미숙함으로 고배를 마신 과테말라의 기억
 
조양호 위원장과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평창을 선정한 서약서에 사인한 후 악수를 나누는 모습.
  지루한 장마철에 지친 국민에게 낭보로 다가온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가 물망에 오른 것은 지난 1993년. 이듬해에 우리 정부는 ‘2006년에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겠다’는 의사를 대외적으로 선포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가 채 무르익기도 전에 우리는 IMF 앞에 꿈을 꺾었다. 2003년 체코 프라하에서 개최된 IOC 총회, 2007년 과테말라에서 개최된 IOC 총회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이때까지만 해도 동계올림픽을 우리나라에서 개최하겠다는 것은 ‘꿈’에 불과했다.
 
  IOC 위원들이 ‘평창’을 ‘평양’으로 착각할 정도로 낮은 인지도가 문제였고, 국제 스포츠 행사 유치에 대한 매뉴얼은 물론이고, 그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을 확보하지 못한 정부의 미숙함도 문제였다.
 
  지난 2007년에 과테말라 IOC 총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의 증언이다. 그는 고(故) 노무현(盧武鉉) 전 대통령의 측근 인사다.
 
  “올림픽 유치는 청와대, 정ㆍ재계, 사회단체가 하나가 돼야 유치할 수 있는 행사입니다. IOC 위원 한 명을 우리 사람으로 끌어들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압니까. 개개인별로 성향이 어떤지, 취향은 무엇이고 요즘 상황은 어떤지를 세밀하게 파악해야 합니다. 유치전을 벌이는 다른 국가와의 접촉점을 최소화하고 우리와 1분이라도 더 지낼 수 있도록 하는 전략도 필요합니다. 가령 VIP(대통령 등 최고 책임자)와 면담이 정해져 있다면 그 전부터 화젯거리를 만들어 붙들고, VIP 면담 후에 우리 실사단과 다시 환담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기까지 모든 동선을 체크해야 할 정도로 치밀한 전략이 필수입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 당시) 우리는 내 편이 될 수 있는 IOC 위원 한 명 제대로 알지 못했죠. ‘어떤 위원과 친하다’고 해서 섭외 목적으로 보냈는데 친분이 거의 없더라고요. 오히려 정부 인사에게 ‘IOC 위원과 만날 때 나를 좀 동석(同席)시켜 주면 안되겠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테말라로 함께 떠났던 모 그룹의 총수는 지원을 약속했는데 현지에서 듣기 좋은 말만 에둘러 하고는 그만이었습니다. 세계적인 스포츠 행사를 유치하기에 정부가 미숙했고 재계의 지원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회사 아닌 평창 찾아가
 
  온 국민이 기대했던 동계올림픽 유치가 물건너가면서, 함께 준비했던 위원회 내부에 분열이 생겼다. 드러내놓고 누구 탓을 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 불신(不信)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는 것이 당시 유치위에 몸담았던 이의 증언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이런 상황에서 유치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9월이다.
 
  조 회장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국가적 대업(大業)에 심부름꾼 역할을 해야겠다는 소명의식을 가지고 위원장을 맡았다”고 밝혔다.
 
  사실 그와 체육계의 인연은 크지 않다. 2008년에 대한탁구협회장을 맡아 난파 위기에 몰렸던 대한탁구협회를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것이 전부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그룹 총수들에게 없는 강점이 있었다. 글로벌 물류그룹을 이끄는 만큼 막강한 외교 네트워크가 있었고, 통역 없이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의 영어 실력이 있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은 일찌감치 스포츠 외교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며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으로 취임하기 이전인 2009년 7월에 싱가포르에서 아시아올림픽평의회 총회가 열렸습니다. 조 회장은 이곳을 찾아 IOC 위원들로부터 평창이 두 번씩 실패했던 이유를 들었다. 공감 가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조 회장은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대한항공 헬기를 타고 평창으로 날아갔습니다. 올림픽 시설을 방문해서 무엇이 문제였는지를 파악했습니다. 회사보다 먼저 평창을 찾았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이 일에 열중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조 회장은 사내에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추진 사무국’ 조직을 만들었다. 영어, 프랑스어, 중국어 등 탄탄한 외국어 실력을 갖춘 임직원 20여 명을 추려 유치위원회를 지원토록 했다. 지난해 1월에는 위원회에 그룹 명의로 30억원의 후원금을 기탁했다.
 
  하지만 그가 IOC 위원들과 만나는 일은 녹록하지 않았다. 조 회장이 IOC 위원들과 친분을 넓히는 데 처음 교두보 역할을 한 것은 ‘스카이팀’이었다. 대한항공이 창설을 주도한 스카이팀은 에어프랑스, 알리탈리아, 중국남방항공 등 총 14개 회원사로 구성돼 있다. 169개국, 898개 도시를 취항한다.
 
  조 회장은 팀 소속인 멕시코 항공 ‘아에로멕시코’의 CEO를 통해 멕시코 IOC 위원들을 소개받았다.
 
  대한항공 관계자의 얘기다.
 
  “조 회장은 처음부터 올림픽 얘기로 이들을 접촉하지 않았습니다. 사전에 IOC 위원들의 가족관계, 관심사 등 상대방에 대해 수집한 정보를 메모해 뒀다가 그들이 관심 있어 하는 화제로 말을 꺼냈죠. 자칫 처음부터 스포츠 얘기를 하면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을 우려해 개인적인 얘기로 대화를 풀어나가 친밀도를 높였습니다.”
 
  조 회장은 전(全) 세계에 흩어져 있는 스카이팀 인맥을 활용했다. 중동 지역 IOC 위원들을 만날 때는 한진그룹이 2대 주주인 에쓰오일의 네트워크를 활용했다. 비즈니스에 관심 있는 IOC 위원에게는 비즈니스적으로, 스포츠맨에게는 스포츠를 통해 교감을 시도했다.
 
  조양호 회장은 대한항공이 보유한 비즈니스 전세기를 활용해 미주, 유럽, 아시아, 오세아니아, 중동, 아프리카 등 5대양 6대주를 누볐다. 조 회장은 자신뿐 아니라, 평창 유치위 대표단이 비즈니스 전세기를 이용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비즈니스 전세기는 자신이 원하는 시각에 원하는 곳으로 날아갈 수 있는 ‘하늘 의 자가용’이다.
 
  조 회장이 지난 1년10개월 동안 참석한 국제행사는 총 34개. 지구 13바퀴를 돌며 IOC 위원들을 설득했다.
 
 
  IOC 위원들 비행기 문 앞까지 일일이 배웅
 
  조양호 회장은 지난 2월 개최된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 참가해서는 IOC 위원 70여 명을 차례로 만났다.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불리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조 회장이 1월까지만 해도 우리의 유치가능성은 절반 이하라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IOC 위원은 물론, 국제 경기연맹 관계자 전원에게 일일이 편지를 보냈다.
 
  IOC 위원 실사단이 평창을 방문했을 때 그는 만반의 준비를 끝낸 터였다.
 
  조 회장은 실사단이 인천공항에 도착했을 때 장거리 여행으로 피곤할 것을 감안해 인천공항에서의 이동거리를 짧게 해야겠다고 판단했다. 이에 항공기를 탑승동이 아닌 본 청사에 직접 댈 수 있도록 요청했다. 인천공항에서 버스를 이용해 평창으로 가는 차 안에서는 마이크를 잡고 안내방송을 하는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의 ‘서비스’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평창을 둘러보는 IOC 위원들의 활동 모습을 8쪽짜리 화보로 만들어 제작하고, 개인별로 따로 사진집을 만들어서 전달했다. 그리고 실사단이 떠나는 날에는 항공기 탑승구까지 배웅했다. 그때 몇몇 IOC 위원이 ‘하이, 프렌드’라고 했다. ‘미스터 조’가 아닌 ‘프렌드’가 된 것이다.
 
  대한항공 관계자의 얘기다.
 
  “대기업 회장이 비행기 문 앞까지 일일이 배웅을 해서 다들 놀랐다고 합니다. 오히려 조 회장은 ‘나는 항공사 CEO다. 서비스가 무엇인지 안다’고 했습니다. 고객에게 감동을 선사하기 위해서는 유연성 있는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소리였습니다. 그는 스포츠 관계자들을 극진히 대접해 평창에 대한 깊은 인상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거지요.”
 
 
  만나주지 않던 IOC 위원들이 먼저 악수 건네자 “됐다” 직감
 
  유치활동을 하면서 경쟁 도시로부터 노골적인 야유를 받은 적도 있다.
 
  뮌헨 관계자들은 “평창 시골구석에서 뭐하냐. 2주 동안 따분하게 앉아서 할 게 없다. 박물관이 있나, 쇼핑할 곳이 있나” 하고 비아냥거렸다.
 
  유치위는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베스트 오브 보스 월즈(Best of both worlds)’ 프로그램이었다. 평창에 기업을 유치해 쇼핑센터, 음식점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겠다는 것이었다.
 
  조 회장은 개최지를 발표하기 일주일 전에 승리를 직감했다. 지난 6월 30일 모나코에서는 군주 결혼식이 열렸다. 배우 그레이스 켈리와 레니에 3세 전 모나코 대공이 1956년 결혼한 이후 50여 년 만에 처음으로 열리는 국가적 행사였다. IOC 위원 40여 명이 하객으로 참석할 예정이었다. 조양호 회장도 초대를 받았다.
 
  유치위 관계자의 얘기다.
 
  “조양호 회장은 유치위원장이지만 IOC 위원이 아니기 때문에 IOC 윤리 규정상 위원들을 별도로 만나기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그동안 IOC 위원들을 한 명 한 명 접촉하면서 그들의 냉랭한 태도를 겪은 것이 여러 번입니다. 위원 40여 명이 한자리에 모이는 행사가 그에게는 기회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곳에 가보니 분위기가 예전과는 사뭇 달랐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만나자고 해도 모른 척했던 IOC 위원들이 거꾸로 조 회장을 찾아 인사를 건넸다는 거죠. 끝까지 열심히 하라며 격려를 해주는 사람도 많았고요. 이때 조 회장은 승리를 확신했다고 합니다.”
 
  일주일 뒤, 평창은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됐다. ‘삼수생’의 합격인지라 더욱 의미가 컸다.⊙
 
글=월간조선 뉴스룸
 
 

입력 : 2019.04.14

조회 : 2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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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하늘나라 (2019-04-18)   

    그렇게 바쁜와중에 이미 확정된 평창 동계올림픽 마스코트(호랑이)를 박근혜 대통령이 애정하는 진돗개로 바꾸라는 지침에 한달음에 스위스로 달려가셨던 분. 그리고나서도 최순실의 평창 올림픽 관련 유착 비리를 막으려다 팽 당하신 분. ㅠㅠ

  • joonhoyoon@yahoo.com (2019-04-15)   

    참, 눈물이 난다. 이런 비화 얘기 안들어도 얼마나 고생했을 조회장인데, 이제 편히 쉬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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