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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경제

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발자취

45년 동안 항공, 운송 외길 고집한 항공업계의 거목 잠들다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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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미국에서 갑작스레 별세한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45년 동안 항공, 운송업 외길을 걸어온 항공업계의 거목이었다. 고 조 회장은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전(全) 부서를 두루 거친 경영인이었다.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과정을 밟던 1974년 대한항공 미주지역 과장으로 입사한 그는 1979년 서울 본사로 귀국하면서 본격적으로 회사 업무를 맡았다. 그의 첫 번째 업무는 대한항공 정비본부장. 얼마 뒤 자재 부문을 겸직했고, 6개월 후에는 시스템 부문까지 겸직했다. 엔지니어링(인하대 공업경영학과 졸업)을 전공한 그는 유독 항공기의 정비나 기술 분야에 관심이 컸다.
 
고 조 회장은 1992년 대한항공 사장을 맡으면서 본격적으로 대한항공을 세계적인 항공사 반열에 올리기 위해 매진했다. 1990년대에 베이징, 모스크바 노선을 확보했고, 1997년 외환위기 당시에도 보잉사의 주력 모델인 ‘보잉 737’ 의 구매 계약을 체결하면서 글로벌 항공사로 도약할 채비를 서둘렀다. 이후 1999년 대한항공 회장 자리에 올랐고, 선친인 고 조중훈 회장이 타계한 뒤 한진그룹 회장직(2003년 2월)에 올랐다.
 
고 조양호 회장이 대한항공을 진두지휘한 1990~2000년대 대한항공은 비약적으로 도약했다. 지난 2006년 그룹의 매출은 15조7000억원대(연결재무재표), 영업이익 7000억원대를 기록하며 안정적으로 재계 서열 10위권 내의 그룹으로 안착했다. 그룹의 주력사인 대한항공은 2011년 말을 기준으로 국내외 40개국, 119개 도시에 여객 및 화물노선을 개설했다.
 
항공 수송업 뿐 아니라 항공기 설계 및 제작, 항공우주사업 및 기내식 제조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미국 보잉사가 지난 2005년 공개한 친환경 차세대 항공기 ‘보잉 787’에 대한항공의 기술력이 포함됐다. 대한항공은 ‘보잉 787’기 국제공동 개발에 참여해 후방동체, 날개구조물인 윙팁 등 6개 기체 부품의 설계부터 제작을 맡았다.
 
고 조양호 회장은 ‘모르는 곳에 들어가지 말라’는 선친의 가르침을 가슴깊이 새겼다. 고 조 회장은 외부에 “1980년대와 비교해 세계 순위 몇 위로 도약했느냐는 ‘양’보다 항공사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 서비스가 만족스럽고 믿을 수 있는 회사, 재정적으로 튼튼한 회사로 평가받는 것이 목표”라고 말을 하곤 했다. 특히 고 조 회장은 2000년대 중반부터 ‘시스템 경영론’을 펴왔다. 비행기 조종에서부터 정비, 재무, 음식, 기내식 서비스까지 한 두 사람에 의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각 전문가들이 책임있게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고 조양호 회장은 2000년에 항공업계 흐름에 발맞춰 국제 항공 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을 주도했다. 또 세계 항공업계의 폭넓은 인맥과 해박한 실무지식으로 국제항공운송협회(IATA) 회원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IATA 총회’는 ‘항공업계의 UN회의’라고 불릴 정도인데 올해 역사상 처음으로 우리나라 서울에서 연차 총회를 치를 예정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조양호 회장의 인맥과 노력으로 이룬 성과”라고 말했다. 항공업계의 미래 중 하나를 ‘저가 항공’으로 내다본 것도 고 조양호 회장이었다. 저가 항공사에 가장 먼저 뛰어든 곳이 대한항공이다.
 
고 조양호 회장은 개인적으로 우리의 문화를 외국에 알리고 국제행사를 유치하는데 앞장서면서 민간 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014년 아시안게임이 인천으로 유치하는데 힘을 보탰고, 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과 조직위원장을 역임하면서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사방팔방으로 뛰었다. 특히 프랑스 루브르, 영국 대영박물관 등 세계 3대 박물관에서 한국어로 작품 설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오롯이 고 조양호 회장의 노력 덕분이었다. 고 조양호 회장은 2000년대 중반에 루브르 박물관이 스폰서를 제안했을 때 여러 조건을 넣는 대신에 ‘박물관 내 한국어 설명 서비스를 해줄 것’이라는 단 하나의 조건을 내걸었다. 그 외에도 고 조양호 회장은 한국의 전통문화 유산과 그 주변 환경을 가꾸는 일을 지원했고,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에 ‘한국학 연구소’ 지원 기금을 냈다. 고 조양호 회장의 사진 솜씨는 프로 수준이었다. 매년 자신이 찍은 캘린더를 제작해 해외기업 CEO, 주한 외교사절 등 지인들에게 선물했다. 한진그룹의 매출은 2017년 말 12조원대, 영업이익 90000억원을 기록했다. 태극 마크를 항공기에 그려넣은 채 하늘 길을 누볐던 고 조양호 회장은 한국에서 최초로 열릴 예정인 IATA 총회를 불과 두 달 남긴 시점에서 별세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글= 정혜연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9.04.08

조회 :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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