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석한 변호사에 대해 지난해 4월 인터폴 적색수배 및 미국 형사·사법공조를 요청하고도 별다른 사후(事後)조치를 취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다. 김석한 변호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 삼성 자금수수 혐의와 관련해, 검찰이 자금 수수를 주도한 것으로 지목한 인물이다.
4월 3일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 항소심 공판에서는 김석한 변호사에 대한 증인신문이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김석한 변호사가 재판정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변호인단과 검찰은 김석한 변호사 증인신문 필요성에 대한 공방(攻防)을 이어갔다.
이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은 “김석한 변호사를 조사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석한 변호사가 어떤 의도로 돈을 받았는지 확인하는 방법은 이학수 전 삼성그룹 부회장과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진술을 통해 추정할 수밖에 없는데, 문제는 이 두 사람의 진술이 상당히 불일치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 이유로 변호인단은 김석한 변호사의 증인신문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검찰에 “검찰 논리에 의해서도 60억 원이 이 전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않고 김석한 변호사가 받은 것인데, 김석한 변호사는 조사도 안 되었고 증인신문도 못하고 있다”며 “그러면 검찰은 김석한의 지위를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이 대목을 부연하면 이러하다. 이 전 부회장은 “김석한이 찾아와 이 전 대통령 측의 자금지원 요청을 전했다”는 요지의 진술을 했다. 이럴 경우 김석한 변호사는 ‘뇌물수수의 공범’이 된다. 반면 김 전 기획관은 “김석한이 찾아와 삼성 측의 자금지원 의사를 전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이 경우 김 변호사는 ‘뇌물공여의 공범’이 된다.
이에 검찰은 재판부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검찰이 “사자(使者, 심부름꾼) 또는 대리인으로 보고 있다”고 답변하자, 재판부는 “김석한 변호사가 공범으로 입건되어 있냐”고 다시 물었다.
이에 검찰은 “안 되어 있다”고 대답한 후, 상의 후 “입건되어 있다”고 답변을 번복했다. “입건 후 처리가 어떻게 되었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검찰은 “체포영장을 발부받은 상태”라고 답변했고, 재판부는 다시 “체포영장 발부 후 처분 자체가 없는 것이냐”고 묻자 검찰은 “처분은 안 됐다”고 답했다.
결국 검찰이 질문의 의도를 모르겠다고 하자, 재판부는 “김석한 체포영장에 기록된 범죄사실이 뇌물을 공여한 공범으로 되어있느냐, 아니면 뇌물을 수수한 공범으로 되어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검찰이 대통령을 기소하는 당일 김석한 변호사에 대해 인터폴 적색수배를 내리고 미국에 사법공조를 요청했다고 언론에 나왔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검찰은 “서면으로 제출하겠다”고 대답했다.
재판부는 또 ‘삼성전자가 미국의 대형로펌 에이킨검프(Akin Gump)와 계약을 체결하고 에이킨검프 계좌로 송금된 돈이 어떻게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직접 뇌물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도 이어갔다.
이는 항소심 초반부터 재판부가 검찰에 답변을 요구한 질문이다. 검찰이 제3자 뇌물이 아닌 직접뇌물이라는 공소사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에이킨검프가 이 전 대통령의 사자 또는 대리인임을 입증하거나, 에이킨검프 계좌가 이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임을 입증해야 한다. 이날 공판에서 검찰은 여러 가지 정황만을 나열할 뿐 재판부의 질문에 대한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