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또다시 도진 KBS의 '이승만 혐오' : 월간조선

김용옥 한신대 석좌교수가 3월 16일 KBS ‘도올아인 오방간다’에 출연해 이승만 대통령을 ‘미국의 괴뢰’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고 망언을 쏟아냈다. 이승만 관련 시민단체는 즉각 공동 성명을 내고 “공영방송의 본질을 위배한 반(反)국가적 망동”이라며 “양승동 KBS 사장은 관련자를 문책하고 즉각 사퇴하라”고 밝혔다.

문제의 발언은 김용옥 교수의 입에서 나왔지만, 이를 편집하지 않은 채 내보낸 KBS의 책임 역시 작다고 할 순 없다. 공영방송 KBS가 건국 대통령을 겨냥해 쏟아낸 막말을 여과 없이 내보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KBS의 ‘이승만 혐오’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자는 4년 전, 그 단면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기회가 있었다.

2015년 6월 24일 KBS <뉴스9>은 ‘이승만 정부 한국전쟁 발발 직후 日 망명 타진’이란 보도를 했다. 보도의 요지는, ‘6·25전쟁 직후 다나카 타쓰오(田中龍夫) 당시 야마구치현(縣) 지사가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1950년 6월 27일에, 한국 정부가 6만 명의 망명정권을 야마구치현에 세우고 싶어한다’는 전보(電報)를 받았다’는 것이다.

KBS는 6월 28일까지 제목만 약간 바꾼 채 관련 보도를 계속 내보냈다. 이 보도만 봤을 때 이승만은 6·25 발발 직후, 자국민의 안전 따위는 돌보지 않은 채 일본으로 달아나려 한 일종의 '파렴치한 지도자'에 불과했다.

당시 기자는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前 월간조선 대표) 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를 본 조갑제 대표는 “KBS의 보도가 사실이 아니란 걸 입증하라”는 취재 지시를 내렸다. 그는 이 보도의 허위뿐 아니라, 공영방송이 ‘이승만 죽이기’를 얼마나 교묘하고 광범위하게 자행하고 있는지 정확히 간파하고 있었다.

조갑제 대표는 2015년 8월호 <월간조선>에 KBS의 이승만 망명 관련 오보를 추적한 기사를 게재했다. 사진=월간조선 캡처

기자는 《야마구치 현사》에 이승만 정부가 ‘1950년 6월 27일’ 망명 타진을 해왔다는 기록이 없음을 확인했다. KBS가 첫 단추부터 잘못 뀄음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미국 국무부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각종 사료(史料)에도 KBS의 보도를 부정하는 자료들이 있었다.

더욱 황당한 건 1996년 다나카 타쓰오가 자신의 회고록에서 밝혔던 내용을 KBS가 특종인양 보도한 점이었다. KBS 디지털뉴스부의 한 기자는, 자사(自社)의 특종보도에 자신감이 들었던지 이승만을 임진왜란 당시 몽진(蒙塵)한 선조(宣祖)와 비교하며 조롱하는 듯한 글을 쓰기도 했다.

7월 3일 KBS는 뉴스를 통해 “KBS가 보도한 야마구치현 기록은 망명정부 요청이 전쟁 초기 상황으로 묘사돼 있을뿐 보도에서 나온 6월 27일이란 날짜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7월 15일엔 해당 보도와 관련 있는 부·국장 등 보도본부 간부 네 명이 평기자로 강등당하는 문책을 당했다. 8월 27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관련 보도를 한 KBS <뉴스9>에 법정제재인 ‘주의’ 조치(벌점 1점)를 내렸다.

4년 후 ‘이승만 혐오’가 나온 프로그램은 뜻밖에도 뉴스가 아닌 시청률이 꽤나 높았던 시사 토크 프로그램(현재는 종영)에서다. 김용옥 교수와 배우 유아인씨가 출연한 이 프로그램은 젊은층도 많이 시청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였다. 뉴스나 심각한 시사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 아닌, 예능을 접목한 프로그램에서 역사 왜곡, 막말이 나올 수 있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이제 거의 모든 프로그램에서 전방위적인 역사 왜곡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 아닐까.

이런 식의 프로그램에서 검증되지 않은, 편향적인 정치 얘기를 다룰 경우, 젊은이들은 ‘김용옥류(類)의 시각’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어떤 형태의 또다른 역사 왜곡, 편향된 시각, 막말이 난무하는 프로그램이 나올지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듯하다. 그게 ‘수신료’를 납부하는 우리의 의무이기도 하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