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 지도자 김정은의 '한반도 비핵화론(論)'을 지적하고 문재인 정부의 대북(對北) 외교에 대해 조언했다.

반 전 총장은 지난 26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김정은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북핵의 CVID식, 즉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가 아니라, 사실상 북핵(北核) 활동 동결 '플러스' 미국 핵우산의 제거로 이해해 왔다. 이는 1991년 김일성이 주장하던 비핵화 개념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없다"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이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한미(韓美)의 생각을 모를 리 없지만, 대북 제재로 인한 경제 위기를 모면하고, 모호한 표현을 통해 시간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며 "한국 정부는 북한의 그런 입장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채, 선의로 믿은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이 과거 비핵화 합의를 무시하고 핵 개발을 강행해왔던 사례를 언급하며 "외국 속담에 한 번 속으면 속인 사람 잘못이지만 두 번 속으면 속은 사람이 바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제는 우리가 그걸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그의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하는 목표, 정책에 대해선 이견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적인 어프로치(접근)를 해야 한다. 지금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세 번, 미북정상회담을 두 번 한 상황에서도 (대북 비핵화 협상이) 잘 안 되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 정부도 숨을 한 번 들이쉬고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폐기해야 한다'는 게 대한민국의 입장이 되어야 한다. 이는 노태우 대통령 때부터 이어온 한국의 일관된 (북핵 대응) 정책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수처럼, 북한은 당장은 강경한 자세를 견지할 가능성이 높다. 우선 북한이 현 상황을 타파하기 위해 모종의 도발을 할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

반 전 총장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서는) 남북-한미-미북 관계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움직여야 하는데, 지금까지 어느 것 하나 단단하지 못했고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지도 못했다"며 "흠집이 나 있는 한미동맹을 수선하고 더욱 강화해야 한다. 친구 관계에서도 우애를 확인하는 게 필요하듯, 동맹 관계에서도 서로 관리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반 전 총장은 "한미 톱니바퀴를 튼튼히 해야 남북 톱니바퀴를 제대로 수선할 수 있다. 불가능한 허상에 기초한 남북 톱니바퀴는 제대로 돌아갈 수 없다"며 "(한미-남북 톱니바퀴 모두 불안정한) 현 상태에서 본격적인 남북 경협(經協)은 불가능하다"고 비판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