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기웅 전 통일연구원장.
문재인 정부 들어 환경부에 이어 통일연구원에서도 자진 사퇴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후인 2017년 3월 통일연구원장에 취임한 손기웅 씨는 현 정부 출범 이후 임기를 2년 2개월을 남기고 자진 사퇴했다.
손 전 원장은 24일 <조선일보>와 인터뷰에서 “국무총리실 관계자가 사퇴를 종용하면서 ‘우리도 청와대 인사수석실에서 통보 받는다’고 했다”고 밝혔다.
손 전 원장은 “그 관계자에게 ‘말씀하시는 BH라는 곳이 청와대인가요, 국가안보실인지요’라고 묻자, ‘저희는 그냥 인사수석실에서만 통보받는다. 다른 경로는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고 했다. 대화에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시사하는 대목도 있었다는 것이 손 전 원장 주장이다.
국책 연구기관장의 자진 사퇴 과정에 청와대 인사수석실의 지시가 있었다는 취지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 이어 국무총리실 산하기관에서도 퇴진 압박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손 전 원장은 “저(손기웅)는 눈치 줬을 때 나가지 않고 버틴 죄로 파렴치범 낙인이 찍혀 쫓겨났다”며 “문재인 정부의 지속적인 흔들기가 있었다”고 했다.
손 전 원장은 “내 취임식 날 민주당 정책위원회의에서 ‘선임이 부적절하다’는 취지의 보고서가 회람됐고, 이후 ‘문재인 캠프 인사인 김연철 인제대 교수가 후임으로 내정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면서 “직원들끼리 ‘손 원장 오래 못 간다’고 수군거렸고, 외부 인사는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인맥인 김연철 교수가 원장으로 갈 것 같다’고 귀띔해줬다”고 했다.
이후 손 전 원장은 통일연구원장이 당연직으로 겸직하는 통일부 통일정책자문위원에서 배제됐고, 2017년 11월에는 예기치 않은 감사를 받았다. 손 전 원장은 “운전기사, 개인 비서를 비롯한 주변인들을 따로 불러 1대1로 면접하는 방식으로 ‘원장 성격이 어떠냐’ ‘직원들과 소통은 많이 하느냐’ 등의 질문을 했다고 들었다”며 “정작 원장인 제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이상한 표적 감사’였다”고 했다.
한 달 후인 2017년 12월 송년회 직후 손 전 원장이 직원 10여명이 탄 엘리베이터에서 남녀 직원의 머리를 쓰다듬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제가 됐다. 손 전 원장은 “저는 끝까지 진위를 가리자는 입장이었지만, 정부 측 관계자가 ‘자진 사퇴만 해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으로 하겠다’면서 도리어 회유했다”며 “연구원에 부담이 될 수 없다는 마음에 결국 사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손 전 원장은 “블랙리스트를 비난했던 문재인 정권은 다를 줄 알았다. 순진한 생각이었다”며 “인격 살인에 가까운 모욕감 속에서 24년간 몸담은 평생직장을 그만뒀다”고 했다.
글=정광성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