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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변'이라는 말을 북한식 용법으로 사용한 문재인 대통령

"북미 정상회담은 엄청난 역사적인 큰 사변"... 北, 판문점정상회담-미북정상회담을 '역사적 사변'이라고 표현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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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기내 간담회 관련 청와대 발표문.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캡처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1일 미국에서 뉴질랜드로 향하는 전용기 안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기자는 그 내용을 전하는 신문보도를 읽다가 눈을 의심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70년 만에 이루어진 엄청난 역사적인 큰 사변이듯이 북한의 지도자가, 물론 판문점에서 남쪽으로 넘어온 적은 있지만 제대로 이렇게 서울을 방문한 적은 한 번도 없다”는 대목 때문이었다.

기자를 놀라게 한 표현은 ‘사변’이었다.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은 ‘사변’을 다음과 같이 풀이하고 있다.

사변02(事變)[사ː-]「명사」

① 사람의 힘으로는 피할 수 없는 천재(天災)나 그 밖의 큰 사건.

② 전쟁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경찰의 힘으로는 막을 수 없어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난리.

③ 한 나라가 상대국에 선전 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사변’의 의미는 ②나 ③의 경우이다. 우리 헌법 제77조 ①항에서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한 것은 ②의 경우에 해당한다.

요즘은 ‘한국전쟁’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이를 ‘6‧25사변’이라고 칭했다. 대한민국 헌법상 북한은 국가가 아니라 소련과 중공의 괴뢰정권 내지 ‘반(反)국가단체’로 보았기 때문에 ‘전쟁’ 대신 ‘사변’이라고 했던 것이다.

일본은 1937년 중일(中日)전쟁 발발 후 이를 ‘지나(支那)사변’이라고 칭했었다. 이를 ‘사변’이라고 한 것은 사태 초기에 이를 본격적인 전쟁이 아니라 중국과의 작은 무력분쟁으로 호도(糊塗)하려 했기 때문이다. 1931년 일본이 저지른 만주사변은 ③의 의미에서의 ‘사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변’이 ①의 경우로 쓰이기도 한다. 1895년 일어난 민비시해사건을 ‘을미사변’이라고 하는 것이 그 예이다. 이 경우 ①에서 말하는 ‘큰 사건’ 정도의 의미로 쓰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눈에 띄는 것은 어느 경우이건 우리나라에서 ‘사변’은 대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반면에 북한 문화어에서는 ‘사변’이라고 하면 ‘변스러운 사건, 비상한 사건, 중대한 일’이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북한에서는 만주사변을 9‧18사변이라고 하는데 이는 ‘변스러운 사건’이라는 의미로 쓰인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서는 그보다는 ‘비상한 사건, 중대한 일’이라는 의미로, 그것도 대체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담아 사용된다. 북한에서 훈민정음 창제를 두고 ‘민족문화발전의 커다란 사변’(2002년 1월 15일 <평양방송>)이라고 한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사변’은 북한이 2000년 이후 남북정상회담을 지칭하는 말로도 자주 사용되어 왔다.

2005년 6.15 5주년을 맞아 평양출판사가 발행한 <6.15자주통일시대>라는 책은 6.15 공동선언 채택을 '조국통일운동사의 중대한 의미를 가지는 역사적 사변'이라고 표현했다.

지난 4월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서도 ‘사변’이라는 말은 빈번히 등장했다. 북한의 대남선전용 매체 <우리민족끼리>는 판문점 정상회담을 앞둔 지난 4월 15일 '절세위인의 확고한 통일 의지가 안아온 자랑찬 결실'이란 제목의 글에서 남북정상회담을 두고 “파국의 위기에 처하였던 북남관계의 오늘과 같은 극적인 변화는 원수님의 확고한 통일 의지와 대범한 아량, 동포애적 조치에 의해 마련된 역사적 사변”이라고 주장했다. <우리민족끼리>는 같은 달 14일에도 '현실은 무엇을 보여주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북남 수뇌 상봉과 회담, 조미(북미) 대화, 이것은 최고영도자 동지의 통 큰 결단과 숭고한 민족애, 투철한 평화수호 의지에 의해 마련된 뜻깊은 사변”이라고 주장했다. 판문점 정상회담이 있은 4월 27일 <로동신문>은 ‘천출위인을 모시어 민족의 앞날 창창하다’는 제하의 논평기사에서 “이번 북남수뇌회담(남북정상회담)은 경애하는 최고영도자동지의 뜨거운 민족애와 확고한 통일의지, 대범한 결단과 넓은 아량에 의해 마련된 역사적 사변”이라고 주장했다.

앞에서 살펴본 남북한의 ‘사변’ 용례(用例)들에서 나타나듯이, 문재인 대통령이 미북 정상회담을 두고 “70년 만에 이루어진 엄청난 역사적인 큰 사변”이라고 한 것은 기존에 우리가 사용해 오던 ‘사변’이라는 말의 뉘앙스와는 거리가 있고, 오히려 북한이 사용해 온 의미에 가까운 것임을 알 수 있다.

사실 ‘사변’이라는 용어를 북한식으로 사용해 온 것은 운동권 내부에서는 오래된 일이다. ‘사변’뿐이 아니다. ‘보장한다’는 말 대신 ‘담보한다’는 표현을, ‘주한미군 철수’ 대신 ‘주한미군 철거’라는 표현을 사용해 온 것이 그 예이다. 1980년대 운동권 세대가 지식인 사회나 언론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으로 진출하면서 북한식 용어 사용은 상당히 대중화되었다.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속도전’이라는 말이 10여 년 전부터 국내 언론에서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 된 것이 그 예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사변’이라는 용어를 북한식 용례에 가깝게 사용한 것은 어떻게 보면 작은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1980년대 운동권적 의식이 우리 사회에 어느 정도로 확산되었는지를 보여주는 바로미터는 될 수 있을 것이다.

입력 : 2018.12.03

조회 : 9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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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댓글달기 5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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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박리 (2018-12-08)   

    새x. 욕이 저절로 나오니.

  • BABYBOOMER (2018-12-04)   

    난 흔히 말하는 베이비붐세대입니다. 국민학교 때 6.25사변을 육쩜이오사변라고 읽다가 샘으로부터 수정받은 기억이 새롭습니다. 기사의 지적에 새삼 언어의 변천이 실감납니다. 이렇듯 민초가 댓글하나 다는 것도 시간을 들여가면 용어선택을 고려하는데 대통령이라니요. 의도적인 용어선택임이 틀림없고, 절대 작은 일이 아니지요. 뇌리속에 각인된 그 자의 실체이지요.

  • 김진우 (2018-12-03)   

    기사를 읽고 보니 참 심각하네요. 좋은 기사,사회에 경종을 울려주는 기사 많이 부탁드립니다.

  • COOLRHIE (2018-12-03)   

    말이 행동을 지배하는 법이라오.부지불식간에 본심이 드러났시오.

  • 제프 (2018-12-03)   

    아,글쎄 인이는 공산주의자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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