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탄은 '전원책 해촉'이었다. 김병준 비대위원장이 당협위원장 교체 등 인적쇄신을 위해 영입한 전원책 변호사를 '월권' 등을 이유로 내치면서 당내 갈등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해촉 과정에서 전 변호사를 껄끄럽게 여긴 중진급 인사들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말이 돌았다. 비대위의 당 혁신 작업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김 비대위원장의 교체 의지가 강했고, 전 변호사도 기자회견에서 폭로 수위를 낮추면서 당은 다시 수습 분위기에 들어선 모양새다.

곧이어 반문연대론이 힘을 받았다. 바른미래당과의 합당 내지는 연합 전망이 요원해지자 네트워크 형식으로 합세 범위를 넓혔다. 또렷한 계파 색이나 강경한 보수이념을 갖고 있지 않더라도, 문재인 정부의 실정과 폭주를 막는 데 동의한다면 연대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김성태, 김병준 등 현 지도부 층은 물론, 친박계부터 비박계 중진, 최근 두각을 드러낸 바미당의 이언주 의원까지 찬성했다.

박대출 의원은 "우리가 제대로 된 대안 정당, 수권 정당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보수대통합이나 반문연대를 스스로 준비하고 나서야 한다"고 했다. 윤상현 의원은 "보수통합이 아닌 반문연대의 기치 아래 모든 정치노선의 차이는 뒤로하고 조건 없이 단결해야 한다"고 했다. 김무성 전 대표는 "친박·비박 이야기가 나올수록 당의 지지는 더 떨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이다. (계파 갈등이 아닌) 당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임을 할 때가 됐다"고 했다.

이 와중에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가 정계 복귀를 선언하면서 파문이 일었다. 홍 전 대표는 "나는 홍준표가 옳았다는 국민들의 믿음이 바로 설 때 다시 돌아오겠다고 했다"며 "최근 국민들의 절반 이상이 대선이나 지방선거 때의 홍준표의 말이 옳았다는 지적에 힘입어 다시 (정치를) 시작하고자 한다. 정계를 떠난 일이 없기에 정계 복귀가 아니라 현실 정치로의 복귀라고 해야 정확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권 후보로 거론되는 정우택 의원은 "그분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러 가지 보여준 행태로 인해 보수가 거의 위기의 수렁으로 빠지지 않았나"라며 "그 책임 문제에서 (홍 전 대표가) 일단 벗어날 수가 없다. 제가 보기에는 미국에서 회개도 별로 안 하고 온 것 같다"고 견제했다. 반면 홍문표 의원은 "홍 전 대표가 말을 직선적으로 하는 스타일이 아닌가"라며 "잘못한 부분을 홍 전 대표가 직선적으로 말하면 집권당으로서는 아프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의 복귀에) 지레 겁을 먹고 비판의 날을 세우는 것 같다"고 홍 전 대표를 지원사격했다.

홍 전 대표와 차기 당권, 대권 등을 놓고 겨룰 인사들은 그의 복귀가 반가울 리 없다. 홍 전 대표의 꾸준한 페이스북 정치가 여론의 주목을 받아온 상태에서, 곧 돌입할 '유튜브 방송'에 나와 특유의 직설 화법으로 인기를 더 얻기라도 한다면 당내 권력구도가 어떻게 돌아갈지 알 수 없다. 더욱이 홍 전 대표는 발언 수위 등으로 호불호가 갈리는 인사지만, 4선 의원에 도지사와 당 대표를 두 번 지내면서 체급이 커졌고 작년 탄핵국면 상황에서 대선에 나가 맷집도 길렀다. 흩어진 친홍(親洪) 세력이 결집한다면 매번 여론에 희화화되던 그도 어떻게 변모할지 모를 일이다.

한편 여권을 비롯한 진보정당들은 홍 전 대표의 복귀 선언을 조롱하면서도 표정관리 중이다. 홍 전 대표의 등판을 놓고 한국당 내 찬반 양론이 격화되면 다시 내홍이 일 것이라는 예감 때문이다.

고민의 각도는 다르지만, 친박계도 당의 내분을 우려하는 모습이다. "바퀴벌레, 연탄가스"라고까지 했던 홍 전 대표는 물론, 김무성 전 대표나 김성태 원내대표가 당권을 잡는 날이면 지난 20대 총선 당시 '진박 공천 논란' 책임을 물어 친박계를 숙청할지 모른다는 걱정이다. 친박계는 만약 황교안 전 국무총리 영입 시도에도 내년 2월 전당대회 승리가 난망하다면, 차라리 신당(新黨)을 만들어 차기 총선을 대비하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 21일 <세계일보> 보도에 따르면, 친박 중진 5인이 각 5명씩 현역 의원들을 모집해 교섭단체를 구성한 뒤 신당을 띄운다는 설이 나오고 있다.

전 변호사 중심의 신당 창당, 바미당 일각의 신당 창당설도 보수 정계개편의 한 축을 이룬다. 전 변호사는 앞서 해촉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현역 의원 5명을 포함한 총 10여 명의 인사들로 구성되는 보수 개혁을 위한 포럼 '혁신과 대안'을 준비 중이라고 했다. 그는 21일 KBS 라디오 <정준희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저희가 하려는 건 새로운 보수를 세우기 위한 하나의 중심 세력이 되어보겠다는 것"이라며 "(창당설에 대해서는) 만약 한국당이 지리멸렬하거나 아주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면 여기 계시는 분들이 또 하나 중심 세력을 이루려고 할 수 있다. 이 중(포럼)의 한 분은 그런 (창당) 말씀을 평소에도 한다"고 창당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신(新)보수' 구상으로 주목받는 이언주 의원의 행보에도 시선이 쏠린다. 바미당 내에서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한국당의 경우 그를 청년층 강연에 초청하는 등 당 차원으로서는 견제보다는 환대의 제스처를 보내고 있다. 전 변호사도 그가 보수의 가치를 잘 이해하고 있다고 호평한 바 있다. 최근 이념적 선명성을 확실하게 드러낸 그를 중심으로 '양당(兩黨) 새 판 짜기'가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