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DB.
지난 10월 1일 오원선씨는 SNS에 사건 정황이 담긴 글과 폭행당한 후 찍은 얼굴 사진을 올렸다.
"1일 자정을 조금 넘긴 시각,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 위치한 모 클럽 인근에 있는 편의점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30대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돌연 '뭘 쳐다보냐'며 저의 어깨에 자신의 팔을 두른 뒤 얼굴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일요일 밤에서 월요일로 넘어가는 시각이라 평소만큼은 아니어도 현장에 사람이 많았다. 외진 곳도 아니었다. 하지만 외국인 남성이 나서기 전엔 단 한 명도 날 도와주지 않았다.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외국인 남성이 아니었다면 더 심각한 부상을 입었을지도 모른다. 경찰로부터 CCTV라도 제공받아 온라인에 공개하고 싶다. 목격자가 나타나 가해자를 더 빨리 잡을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다. 그러나 초상권 문제 때문에 그건 어렵다고 하더라."
오씨의 SNS에 국민적 공분이 일었다.
오씨는 안면이 함몰되고 코뼈까지 부러지는 등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사건 발생 10일 만에 가해자가 검거됐지만, 그는 자신은 ‘묻지 마 폭행’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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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오씨 SNS. |
다만 한 방송사가 공개한 폐쇄회로(CC)TV에는 도망치는 오씨를 향한 잔인한 폭행과 이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태원 묻지 마 폭행 사건으로 인해 대표적 부실수사 사건인 '이태원 살인사건'이 재조명받고 있다.
1997년 4월 3일 밤 9시 50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한 햄버거가게 화장실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조중필(당시 23세)씨는 화장실에서 목과 가슴 등 9군데를 흉기에 찔린 채 발견됐고, 병원으로 후송 중 숨졌다. 이른바 '이태원 살인사건'이다.
현장에서 검거된 용의자는 미군 자녀 두 명. 17세 동갑내기 아더 패터슨과 에드워드 리였다. 둘은 서로가 범인이라고 주장했다. 초동수사를 맡았던 미군 범죄수사대(CID)와 경찰은 패터슨을 범인으로 지목했다. 패터슨의 몸에 피가 묻어 있었다는 게 근거였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용의자는 바뀌었다. 검찰은 거짓말탐지기 검사 결과 등을 근거로 리가 살인을 저질렀고 패터슨은 흉기를 버린 혐의만 있다고 봤다. 용의자가 뒤바뀌는데는 조씨 사체를 부검했던 부검의 소견이 결정적이었다.
1심과 2심 재판부도 거기에 동의했고, 에드워드는 20년형을 선고받았다. 패터슨은 현장에 떨어진 칼을 갖고 나와 버렸다는 증거인멸죄로 1년 6월형을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이를 뒤집었다. 패터슨이 범인으로 보인다는 취지였다.
피해자의 유족은 패터슨을 살인으로 다시 고발했다. 그런데 검찰이 출국금지를 하지 않아 용의자 패터슨이 미국으로 떠나버리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이후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검찰은 결국 2002년 10월 패터슨에 대해 기소중지 조치를 내렸다.
수사는 7년이 지난 2009년에야 다시 시작됐다.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개봉되면서 다시 주목받았다. 법무부는 그해 12월 미국에 범죄인 인도 청구를 했다. 2년 뒤 패터슨은 미국에서 체포됐다. 하지만 범죄인 인도재판에만 4년 가까이 걸렸고, 2015년 9월이 돼서야 그를 한국에 데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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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이 이태원 살인사건 현장검증을 위해 재현한 화장실 모형. 사진=조선DB |
패더슨은 세 번의 재판을 거쳐 살인죄로 20년형이 확정(2017년 1월)되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민사48부는 조씨 아버지 조송전씨 등 유족 5명이 정신적 피해보상을 요구하며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국가는 유족들에게 3억 6,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유족들이 겪었을 정신적, 육체적, 물질적 피해와 현재의 국민 소득 수준, 통화가치 등의 사정이 불법 행위 당시보다 변동된 점 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018년 8월 국가는 이 같은 법원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다시 한 번 국가의 책임을 놓고 법정 다툼을 하게 된 것이다.
앞서 국가는 패터슨의 출국정지 기간을 연장하지 못한 과실로 2006년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유족들에게 6,000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확정판결을 받은 바 있다.
글=최우석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