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지난 9월 19일 백화원 영빈관에서 평양공동선언서에 서명한 뒤 교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이 발표한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합의한 철도·도로 연결 등 남북경제협력에 따른 재원 마련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직접 재원으로 쓰일 ‘남북협력기금’은 지난해보다 늘어났지만, 북한 내 인프라 재건 규모 등에 비춰볼 때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차관(借款) 형식의 대북 지원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국회 등에 따르면 내년 남북협력기금 사업비 예산은 1조 977억 원으로, 올해 편성했던 9592억 원보다 약 14.4% 증가했다. 내년 사업 비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인도적 문제 해결 5664억 원, 개성공단 등 남북경제협력 543억 원, 남북사회문화교류 205억 원, 통일정책 63억 원 등이다. 올해 예산안과 비교하면 남북경제협력 사업비용은 1597억 원 증액했고, 인도적 문제 해결은 289억 원 감액하는 등 경제협력 비중을 높였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판문점 선언 비용 추계서’에 따르면 남북 정상 간 합의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서는 남북협력기금 외에 2986억 원의 예산이 추가로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남북협력기금 1조 977억 원 외에 즉시 가용할 수 있는 여유자금은 1859억 원에 불과하다.
대북 인프라 재건 등 향후 진척 상황에 따라 추가적인 사업비가 들 것으로 보인다. 이는 현재로서는 추산이 불가능하지만,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이미 2014년 금융위원회가 추산한 북한 인프라 재건 비용은 미화(美貨) 1400억 달러, 한화(韓貨) 약 151조 원이다. 분야별로는 철도 773억 달러, 도로 374억 달러, 전력 104억 달러, 통신 96억 달러, 공항 30억 달러, 항만 15억 달러 등이다. 현 시점의 물가상승률, 환율 등을 감안하면 이를 상회할 것이란 게 중론(衆論)이다.
정부는 초기 사업비용은 남북협력기금으로 조달하되 북한 내 인프라 사업이 재개되면 차관 형태로 비용을 충당하겠다는 계획이다. ‘판문점 선언 비용추계서’에서 정부는 “초기 북한 경제 인프라 건설에서 남북협력기금이 마중물 역할을 수행한다”며 “단, 경제 인프라 건설은 대규모 재원을 필요로 하기에 차관 형식으로 대북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대북 지원이 본격적으로 이뤄지기까지는 상당한 진통도 예상된다. 야당의 반발은 물론 자칫 ‘퍼주기’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국민 정서를 감안한 듯 문재인 정부는 4·27 판문점 선언의 조속한 국회 비준을 정치권에 촉구한 바 있다. 국회 비준을 받게 되면 정부의 대북 지원에 정당성이 부여돼 ‘퍼주기’ 논란에서 다소 자유로워질 수 있다.
정부는 평양공동선언도 제도화할 방침이다. 지난 20일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비핵화 등 남북 간 이번 합의가) 불가역적인 단계로 가기 위한, 돌아갈 수 없는 상태로 가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첫발을 떼고 있다”며 “이와 관련된 남쪽 내부의 제도화 문제는 앞으로 여러 사회 각 분야, 그리고 특히 야당과 긴밀히 협의하면서 제도화의 방향에 대한 고민들을 같이 나누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통일부·국방부 등 유관부처는 평양공동선언의 내부 제도화 작업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