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이 평양서 재확인한 ‘민족주의 사관’의 함정 : 월간조선

평양서 열린 3차 남북정상회담이 막바지를 향해 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의 합의로 전날(19일)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됐고, 오늘(20일) 두 정상은 소위 ‘민족의 영산(靈山)’이라 불리는 백두산 장군봉에 올랐다. 3일 동안 두 정상의 관계는 화목했다. 공식수행원, 각계 방북단도 북측 인사들과 교류하며 환담을 나눴다. 카메라가 포착하는 동선마다 ‘한민족 화합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여기에 문 대통령이 쐐기를 박았다. 전날 15만 명에 달하는 북한 군중 앞에서 ‘민족자주’ 외교·통일 노선을 재천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저녁 평양 5·1 경기장에서 집단체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관람객들에게 “(본인과 김정은은) 우리 민족의 운명은 우리 스스로 결정한다는 민족 자주의 원칙을 확인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나는 4월 27일 판문점에서 만나 뜨겁게 포옹했다. 우리 두 정상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렸음을 8000만 우리 겨레와 전 세계에 엄숙히 천명했다”며 “오늘 김 위원장과 나는 한반도에서 전쟁의 공포와 무력충돌의 위험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조치들을 구체적으로 합의했다. (우리는) 남북관계를 전면적이고 획기적으로 발전시켜 끊어진 민족의 혈맥을 잇고 공동번영과 자주통일의 미래를 앞당기자고 굳게 약속했다”고 밝혔다.

평양정상회담 사흘째인 20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이 백두산 정상인 장군봉에 올라 손을 맞잡아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20일 오전 김정은 내외와 백두산 천지를 산책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문 대통령은 김정은의 리더십, 평화 구축 의지 등을 다음과 같이 칭찬하기도 했다.

“이번 방문에서 나는 평양의 놀라운 발전상을 봤다. 김 위원장과 북녘 동포들이 어떤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지 가슴 뜨겁게 봤다. 얼마나 민족 화해를 갈망하는지 절실하게 확인했다. 어려운 시기에도 자존심을 지키며 끝끝내 스스로 일어나고자 하는 불굴의 용기를 봤다.

우리 민족은 우수하다. 우리 민족은 강인하다. 우리 민족은 평화를 사랑한다. 그리고 우리 민족은 함께 살아야 한다. 우리는 5000년을 함께 살고 70년을 헤어져 살았다. (70년 적대관계를 해소하기 위해) 담대한 여정을 결단하고 민족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뚜벅뚜벅 걷고 있는 여러분의 지도자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박수를 보낸다.”

문 대통령은 7분 동안의 연설에서 ‘민족’이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총 10차례 언급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20일 ‘헌법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는 문재인 연설’이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사진=조선DB

〈그는 유엔총회가 반(反)인류범죄자로 규정한 김정은을 칭송하기도 하였다. 문 대통령의 연설은 판문점 선언의 반복이지만 대한민국의 가치인 자유를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것이 놀랍다. (우리나라) 헌법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명령하는데 대한민국 대통령이 취임선서 때 헌법 준수를 선서하고도 ‘민족공조에 의한 자주통일’을 하겠다고 했다.

북한이 말하는 민족공조는 반미공조이다. 민족반역자와 민족공조하겠다는 것은 민족반역행위이기도 하다. (...) (문 대통령 연설은) 국가보안법 위반이다. 북한체제를 칭송하고 있다. 사회주의-전체주의 세습독재 고무찬양이다. 2500만 민족이 노예생활을 하는 것을 눈부신 발전이라고 말하고, 핵무기를 개발하여 대한민국을 위협하다가 세계로부터 고립된 것을 자존심을 지킨 불굴의 용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한민국 대통령일 순 없다.〉

이주영 건국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최근 발간한 책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교학도서, 2018)에서 ‘남북 간의 달라진 민족 개념’을 지적하면서, 현 정권 출범 후 다시 주목받고 있는 ‘민족주의 사관’의 함정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통일된 민족 국가를 건설한다는 민족주의의 이상은 그렇게 쉽게 실현될 일이 아니었다. 그것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우선 남한인과 북한인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의식부터 형성되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것조차 분명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인민이 민족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공통된 언어’ ‘공통된 과거’ ‘공통된 생활 방식’ ‘공통된 이해관계’를 가져야 한다. 지금 남북은 그런 요건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주영 건국대 명예교수. 사진=조선DB

(각 체제 수립 후) 남북 사이에는 ‘공통된 생활 방식’ ‘공통된 이해관계’가 생겨나지 못했다. 생활 방식, 즉 문명이 달라지고 있었다. 달라진 남북 생활 방식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지금 북한은 자신들을 ‘한민족’이 아닌 ‘태양 민족’ ‘김일성 민족’으로 부르고 있다. 이것은 통일의 주체가 될 민족의 실체가 확실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민족주의의 명분을 내세우는 것은 분단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 경우에 민족주의는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념이 돼 남한의 경우처럼 감상적인 구호로 끝나거나, 북한의 경우처럼 선전적인 구호로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영호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월간조선〉 2018년 2월호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체제 속에서 개인의 자유와 기회의 평등을 보장함으로써 국민주권국가와 민주공화정을 이뤘다. 그러나 북한 사람들은 같은 한반도에 살고 있지만, 그들이 영위하는 체제와 정체성은 우리와 다르다”며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그들을 같은 민족이라고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남북관계를 민족주의라는 틀 안에서 풀어나가려는 시도는 매우 위험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