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면세점 리베이트 경쟁 과열화... 文 정부 방관에 ‘병드는 관광산업’ : 월간조선

사후면세점 업계에 ‘리베이트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환급대행 업체들이 면세점과의 계약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과도하게 건네면서 관광산업의 질적 하락을 야기하고 있다.

사후면세제도란 외국인 관광객이 사후면세점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상품을 사면 환급대행사를 통해 부가가치세 및 개별소비세를 돌려받는 제도다. 2016년 1월 1일부터 관련법 개정으로 공항 내 환급창구가 아닌 사후면세점 자체에서도 면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사용의 편리성’과 ‘환급의 즉시성’ 등으로 사후면세점이 각광받자 환급대행 시장도 커지고 있다. 2016년 말 기준, 공항 출국장에 위치한 일반 사전면세점들이 49곳인 반면, 사후면세점은 1만 5981곳으로 약 326배 많다. 사후면세점은 2012년 3296곳에서 2016년 1만 5981곳으로 5배가량 늘었다. 외국인이 사후면세점에서 구매한 액수도 같은 기간 5299억 원에서 3조 1032억 원으로 매년 ‘97% 성장’을 기록했다. 환급대행사가 외국인에게 지급한 환급액도 2012년 414억 원에서 2016년 11월 2006억 원으로 증가세다.

환급대행사가 수수료로 올린 수익(3% 기준) 또한 같은 기간 177억 원에서 860억 원으로 5배가량 늘었다. 환급대행사는 고객에게 소비자 가격의 10% 중 7~8%를 돌려주고 나머지 2~3%의 수수료를 수입원으로 삼는다.

지난 2015년 12월 1일 오전 11시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화장품 전문 사후(事後) 면세점 앞에 중국인 관광객을 태워 온 관광버스들이 한 차선을 가득 메워 불법 주차해 있다. 사진=조선DB

성장세인 환급대행 시장을 독점하기 위해 ‘리베이트 전쟁’이 이어졌다. 2016년 12월 기준 지정된 총 15곳의 환급대행사 중, 현재 운영 중인 업체는 ‘글로벌블루코리아’ ‘글로벌텍스프리’ ‘태경이지택스프리’ ‘큐브리펀드’ ‘한국정보통신’ ‘케이티스’ ‘투어텍스리펀드’ 등 7곳이다. 업계 관계자 말에 따르면 ‘글로벌텍스프리’ ‘글로벌블루코리아’와 후발주자로 나선 KT의 자회사 ‘케이티스’, 롯데정보통신의 ‘큐브리펀드’ 총 4곳이 전체 시장의 90%가량을 점유하고 있다.

특히 KT와 롯데, 두 대기업을 뿌리로 두고 있는 ‘케이티스’와 ‘큐브리펀드’가 자금력을 앞세워 사후면세점 사업주들에게 홍보수수료, 영업대행료, 사무기기 교체비용 대납 등의 명목으로 리베이트 지급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기존 중소업체들도 뛰어들었다. 자신의 영업장을 뺏기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수입원인 수수료 중 고율의 금액을 상납하고 있는 것이다.

초창기 리베이트 액수는 환급대행 수수료의 10~20% 수준이었다. 경쟁이 과열되자 30~40%가 됐고, 최근에는 60~70%까지 급등했다. 제공 방식도 온갖 편법이 동원됐다. ‘홍보지원비’ 명목의 현금 지급 수준을 넘어, 장기계약 시 현금 선지급, 연말 상품권 지급, 가맹점 내 환급창구 고액 임대료 지급, 임대보증금 대납 등으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 2016년 7월 4일 제주 연동의 한 외국인 전용 화장품 판매점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이 판매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조선DB

업계 관계자는 “계약 성사를 위해 영업장의 임대료, 인테리어, 홍보판촉비, 사무기기 구입 등을 리베이트로 부담하고 있다. 현장 즉시 환급용으로 (영업장 내에) 관련 기계 설치도 해줘야 한다”며 “어떤 영업장은 계약 전부터 ‘다른 업체에서는 리베이트로 몇 퍼센트를 준다더라’며 대놓고 리베이트 조건을 걸기도 한다”고 토로했다.

업계 전문가 말에 따르면, 환급대행 업체들의 리베이트를 받은 사후면세점들은 판로 확장을 위해 해당 금액의 일부분을 판촉비로 쓴다고 한다. 자신들과 연계된 여행사에 지급해 단체 관광객을 끌어오게 하는 것이다. 대부분이 중국 관광객들이 모인 ‘저가 여행’이다. 최소 비용으로 외국인 관광객들을 최대한 끌어 모은 뒤, ‘관광코스’ 명목으로 사후면세점에 밀어 넣는 것이다. ‘장삿속’에 당한 외국인 관광객들의 ‘한국관(觀)’은 부정적으로 변하기 마련이다. 한국 관광산업의 퇴행을 초래하는 일이다.

사후면세점 환급대행사들의 리베이트 전쟁이 심화되는데도 정부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반면 다른 업종의 리베이트 문제와 관련해서는 최소한의 대책은 마련해 놓고 있다. 가령, 중국 단체관광 리베이트 문제에 대해서는 ‘허가 취소제’ ‘상시 퇴출제’를 지난 5월 15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카드사 리베이트 문제에 대해서는 재작년 4월 25일부터 각종 지원금 금지 조치를 실시 중이다. 제약사 리베이트 문제 역시 지난 1월 1일부터 보건복지부에서 관리 감독을 실시, 대응하고 있다.

국회에서 관련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작년 10월 30일 국정감사에서 김동연 경제부총리에게 다음과 같이 질의했다.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 사진=조선DB

〈김두관: 사전면세점은 관세청이 지금 관리를 잘하고 계시지만 사후면세점 관리 주체가 없는 것 같아요. 지금 굉장히 문제가 되는 것은 잘 아시지요? (...) 저도 현장을 몇 번 봤습니다마는, 특히 마포 쪽에 가니까 대형버스들이 굉장히 많이 주차를 하고 차량들 통행을 불편하게 하고 그렇게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게 뭔가 나는 처음에는 잘 몰랐었는데 그게 사후면세점이 관광객들을 유치하면서 생긴 현상 같더라고요. 그래서 이 문제는 기재부, 그렇다고 지자체가 주무 부처는 아니지만 지자체가 관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사후면세점 관리 감독 제도 개선에 관한 TF를 기재부에서 꾸리고 있다고 들었는데 혹시 부총리님 알고 계십니까?

김동연: 예. 지금 위원님 말씀하신 것처럼 저희 기재부 중심으로 사후면세점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는데 신청/지정은 국세청에서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주무 부처가 좀 부재한 그런 상황입니다. 저희가 TF 구성해서 지금 제도 보완하고 있습니다.〉

상기한 바와 같이 환급대행사들의 리베이트 남발은, 사후면세점들이 여행사에 지급하는 ‘2차 리베이트’ 문제를 발생시킨다. 환급대행사→사후면세점→여행사로 이어지는 ‘리베이트 연결고리’는 ‘저질 단체관광’ 상품이 창궐하도록 만들어 한국의 대외적 신인도를 깎아내린다. 그런데도 김두관 의원의 지적처럼 문재인 정부에는 해당 문제를 관리, 감독할 담당 부서 하나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이날 김 의원의 질의 내용을 다룬 <한국무역신문> 기사의 한 대목이다.

〈일부 사후면세점은 여행사와 홍보수수료 및 대행료 등의 명목으로 리베이트로 얽혀 있어 쇼핑을 강요하거나 비싼 가격에 저질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또 주요 도심 지역에 대형 사후면세점이 늘고 있지만 주차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인근 교통이 마비되는 현상도 문제다. 김두관 의원은 “사후면세점의 관리, 감독을 담당할 주무부처가 따로 없어, 국내 경제에 도움은커녕 한국에 대한 이미지까지 나빠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며 “기재부는 ‘사후면세점 관리, 감독 제도개선 T/F팀’을 구성해 원래 취지인 관광산업 인프라 구축을 통한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편의성 증진이란 정책 목적에 맞는 충분한 제도보완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고 강조했다.〉

2016년 2월 16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한 외국인이 물건값을 계산하며 부가세를 환급받고 있다. 사진=조선DB

작년 국정감사에서 진행된 김 의원의 질의와 김 부총리의 답변 이후 근 1년이 다 돼가고 있다.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월간조선〉 취재 결과, 담당부서로 알려진 기획재정부 부가가치세제과와 국세청 부가가치세과에서는 서로 비슷한 답변을 전해왔다. 두 부서와 환급대행 업체들 간의 협조하에 “대책 마련을 논의 중”이라는 것이었다. 단, “풍문만 듣고 제도 정비에 나설 수는 없고, 실황(實況) 파악이 우선”이라고 했다.

국회의 질타도 있었고, 중소 업체들의 읍소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특정 대책 수립에 나서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실제 관련 시장에서 리베이트가 남발되는지 현황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난관이라고 했다. 자체 조사를 해보면, 각 대행업체들은 자신들은 사후면세점에 “리베이트를 준 적이 없다”는 입장을 내놓는다고 했다. 업체 스스로가 부인하는 상황이니, 해당 상황을 어떻게 더 면밀하게 조사해야 할지 그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이는 사실상 사후면세점, 환급대행사 시장이 매년 급성장하는 현재까지도 정부가 ‘리베이트 근절 대책’을 수립하지 않았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난감한 해당 부처들의 입장도 일견 이해가 가지만, ‘현상 파악’과 ‘제도 개선’이 유독 느리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약 1년 전 국정감사뿐 아니라, 2년 전에도 국회에서 해당 업계의 문제점을 지적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재작년 10월 9일 자 ‘연합뉴스’ 기사의 한 대목이다.

박명재 자유한국당(구 새누리당) 의원. 사진=조선DB

〈사후면세점이 최근 3년 6개월 사이에 4배 이상으로 급증했지만 정작 이를 책임질 주무관서는 없는 실정이라고 새누리당 박명재 의원이 9일 지적했다. 박 의원은 “사후면세점이 급증하는 과정에서 주거지역이나 스쿨존 주변까지 점포가 들어서고 있다”며 “이로 인한 불법 주정차나 비도덕적 상술, 과도한 리베이트 등 다양한 문제가 속출하고 있지만 이를 담당할 주무관서가 따로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사후면세점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는 국세청, 관세청,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련 기관과 지방자치단체가 긴밀한 협조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리베이트 경쟁은 질적 개선을 통한 ‘서비스 경쟁’이 아닌 ‘돈 풀기 작전’이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건전한 경쟁을 막고 관련 시장을 교란한다. 불공정거래로 인한 독점 업체들이 늘어나면 새로운 사업자들이 들어설 틈조차 사라진다. 그로 인한 피해는 돈 없는 중소업체와 외국인 고객들이 받는다. 관광산업 전반의 경쟁력 저하, 환급대행사 시장의 대기업 의존도가 심화될 가능성도 있다.

환급대행사와 사후면세점 간의 리베이트 제공 행위는 ‘세금’을 근본으로 한다. 환급대행사가 차익으로 거두는 수수료의 원천이 세금이고, 세금을 떼어다가 리베이트로 사용하는 셈이 된다. 일각에서는 정부를 대신해 외국인에게 국가 세금을 환급해 주는 환급대행사들이 수수료를 리베이트로 활용하는 것은 ‘탈세’라고 지적하기도 한다. 정부의 관련 대책 마련과 관리 감독 착수가 시급한 때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