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보는 동리머슴 일을 하다가 늦장가를 갔다. 생활은 고단하나마 걱정없는 살림이었지만 아내와 자식이 생기고 보니, 자기는 굶을 지라도 가솔은 먹여야 할 의무가 생겼다.
텃밭이 하나 있어 담배를 심었는데, 그 밭의 전결(田結)을 내야 한다. 아랫마을 김풍헌이 찾아와 춘보에게 전결 채근을 한다. 매일 찾아와 채근하는 것이 속으로 무안했지만 춘보는 헐값에라도 담배를 베어 팔기로 결심한다.…

(계속) 이튿날 춘보는, 유난히 일찍이 일어났다. 일찍이 담배를 비어 엮어 넣고 또 다시 박도사의 집 추수 일을 보러 가야겠으므로 다른 날보다 담배 비는 시간만큼 더 일찍 일어난 것이었다.
한 모숨, 두 모숨, 비어 나아가는 이 담배. 심을 적에는 그래도 가을철에는 비어서 자기는 몇 대 먹어 보려니 하는 마음으로 심었더니, 그 생각도 모두 꿈으로 돌아가고, 지금 물도 들지 않은 담배를 비어서, 홀짝 김풍헌에게 맡기어야 하는가 생각하면, 섭섭키 이를 데 없었다. 다 팔아야 여덟 잎이 되기나 할까. 못되면 이를 어쩌나.
근심 걱정 탄식으로 한 모숨(한 줌 안에 들어올 만한 분량의 길고 가느다란 물건-편집자), 두 모숨 비어 나가다가, 문득 눈을 들어 보니 저편 바위 모퉁이에, 이상한 풀포기 하나이 있다.
“?”저게 뭐냐. 어려서부터 농사와 꼴 비기로 자라난 춘보라, 풀이며 나무며 이름 모르는 것이 없다. 그런데 그 바위 아래 돌아 있는 것은 춘보의 40평생에 처음 보는 풀이었다.
무엇일까. 춘보는 낫을 든 채로 잠시 바라보다가 그곳으로 갔다. 그러고 그 포기를 잡고 잡아당겨 보았다.
“?”
팔쭉지만한 무(蕪) 하나이 땅에서 뽑혀 나왔다.
‘무로구나.’
무? 밑은 무지만 잎과 대는 무가 아니었다.
‘흐―ㅇ. 이상한 무도 있지.’
이리 기웃 저리 기웃 하다가, 하도 이상하여 시험 삼아, 뿌리 끝을 조금 꺾어 입에 넣어 보았다.
‘앗, 튀’
쓰기가 한량없었다.
침을 뱉고 입을 닦고 하였으나 쓴맛은 그냥 남어 있다.
‘에이 고약하군.’
함부로 먹어서 죽는 것이나 아닐까. 도대체 이게 무슨 무람. 휑하니 저편 귀퉁이로 던져 버리고, 다시 담배를 비기 시작하였다.
한 모숨, 두 모숨 비다가 문득 보니, 또 저편 바위 모퉁이에 아까 그런 풀이 하나 있다. 시험삼아 뽑아 보니, 역시 커다란 무가 하나 나왔다.
이리하여 그런 무를 얻기를 세 개.
이윽고 담배를 다 비었다.
다 빈 담배와 무를 부단고 집으로 나려 와서 담배는 엮어서 볕 잘 드는 데 걸고 무는 그냥 지붕 위에 던졌다.
“여보게.”
“네?”
“이따가 김풍헌이 오시거든, 좀 잘 말해. 저처럼 담배를 비였으니까 한 2, 3일 말리면 오는 장에는 팔 수가 있을 테니까, 그때 팔아서 드린다구…….”
“그래요.”
이러한 당부를 남겨 두고 춘보는 박도사의 집으로 일을 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