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실장" 부르던 '버럭 총리' 이해찬 與 대표에... 장기집권 야망 탄력받을까 : 월간조선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됐다. 이 의원은 25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린 전국대의원회의에서 송영길, 김진표 등 경쟁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이 의원은 2012년 민주통합당 대표 이후 다시 '정당의 수장'을 맡게 됐다.

이 의원의 득표율은 42.88%로, 30.73%를 얻은 송 후보와 26.39%를 거둔 김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차이로 압도했다. 여당 신임 대표를 뽑은 이날 결과는 사전에 진행된 권리당원 ARS 투표 40%, 국민과 일반당원 여론조사 15%에 현장 대의원 투표 45%의 합산으로 이뤄졌다.

이해찬 신임 대표는 대표직 수락 연설에서 "문재인 정부 성공, 총선 승리, 정권 재창출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야당과도 진솔한 자세로 꾸준하게 대화하겠다. 국민들을 위한 최고 수준의 협치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제가 드린 약속뿐만 아니라 같이 경쟁하신 김진표, 송영길 후보님과 최고위원 후보님들의 공약도 챙기겠다"며 "철통 같은 단결로 문재인 정부를 지키자.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개혁을 이뤄 촛불혁명의 위대한 정신을 발전시키자"고 밝혔다.

나아가 이 대표는 "민주정부 20년 연속 집권을 위한 당 현대화 작업도 시작할 것"이라며 "민주연구원을 진정한 싱크탱크로 키우고 연수원을 설립, 당의 노선과 가치 및 정체성을 이해하는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하겠다"고 역설했다. 실제 이 대표는 작년부터 최근까지 민주당 20년 집권론, 진보 세력 장기집권론을 주장하며 '보수 궤멸'의 선봉에 섰다.

2012년 9월 2일 민주통합당 대통령 후보자 선출 대회가 열린 인천광역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1위를 차지한 당시 문재인 후보가 이해찬 당 대표로 부터 축하를 받고 있다. 사진=조선DB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년 정도 연속해서 집권하는 계획을 잘 만들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근본적으로 저희가 경험한 바와 같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10년을 가지고 정책 뿌리를 못 내린다"며 "실제 영국의 노동당, 독일 사민당도 보통 16년 정도 (걸려서) 뿌리내리는 것을 봤다. 그런 차원에서 보수적인 사회에서 개혁적인 정책이 뿌리내리기 위해선 최소 20년 정도는 집권할 수 있는 계획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그 다음날에도 광주시의회 브리핑룸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모처럼 집권과 남북관계, 지방자치 세 가지를 갖춘 새로운 역사적 지평이 열렸다"며 "적어도 20년간 연속 집권해 개혁적 정책을 깊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역사적 대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지난 1월 27일 여당의 싱크탱크 민주연구원과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20년 이상 민주당 정권을 이어가야 한다”며 “적어도 4~5번 계속 집권해야 정책이 뿌리내려서 정착되는 것이고, 오랜만에 집권했는데 계속 집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작년 대선 기간에도 한 유세장에서 “이번에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다음에 기라성 같은 사람들이 많다”며 “안희정·이재명·박원순 이런 사람들이 이어서 쭉 ‘장기집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현역 7선의 중진이자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를 역임한 '친노' 진영의 대표 정치인이다. 총리 재직 시절, 깐깐한 성품과 완고한 이념 때문에 국회의원들과 다툼도 잦아 '버럭 총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최근 당 대표 경선과 관련해 한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질문을 던진 진행자를 되레 추궁하는 등 여전히 강고한 성정을 보여주기도 했다.

2004년 10월 26일 국무회의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가 얘기를 나누면서 회의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조선DB

그러나 '친노 대장' '친문 좌장'이라고 불리면서도 이른바 골수 성향인 '뼈문'의 범주에는 속하지 않았다. 문심(文心)이 송영길, 김진표 후보 등에게 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이 대표와 문 대통령이 서로 '어색한 사이'였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실제 이 대표가 참여정부의 국무총리로 활동할 때, 문 대통령은 청와대비서실장이었다. 직급상 이 대표가 상관이었다. 당시로서는 이 대표는 문 대통령에게 '문 실장'이라고 하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이 대표가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문 대통령을 '문 실장'이라고 말했다는 점이다. 과거 회상 부분과 연계된 대목이었지만, 이 대표는 두 번씩이나 '문 실장'이라고 말하는 등 논란을 자초했다. 거북한 사이, 어색한 사이라는 의혹을 걷어내고 이 대표는 진정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위해 노력하는 집권여당의 수장이 될 수 있을까.

이 대표는 1952년 충남 청양에서 부친 이인용의 3남으로 태어나 유복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본관이 전주인 그는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의 생부 '덕흥대원군'의 14대 손이다. 1965년 청양국민학교를 졸업, 서울로 상경한 후 1968년 덕수중에 들어갔다. 1971년 용산고 졸업 후 서울대 섬유공학과에 입학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자퇴한 후 이듬해 같은 대학 사회학과에 입학했다.

서울대 재입학 직후부터 학내 서클을 조직하는 등 유신개헌 반대를 기점으로 학생운동에 투신했다. 2년 뒤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징역을 살았다. 학비를 벌고 생계를 꾸리기 위해 막노동을 전전하고 무역회사를 다녔으며 <동아일보> 해직기자들 밑에서 번역까지 도왔다. 문고판 도서로 유명한 범우사에서 출판을 배우기도 했다.

1978년 사회학과 학술 모임에서 인연을 맺은 부인 김정옥씨와 결혼한 후 출판사 광장서적, 한마당, 평민서당 등을 설립했다. 그가 세운 출판사마다 불온서적 출판 논란에 휩싸여 문을 닫았다. 이 대표는 그 후 '돌베개' 출판사를 새로 세워 주로 사회과학 도서를 취급했다.

2004년 7월 2일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방문해 악수하고 있다. 사진=조선DB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징역 2년 반을 살고 나왔다. 5공 시절부터 학생운동을 넘어 재야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으로 일했다. 투옥과 데모를 반복한 끝에 입학 후 14년 만인 1985년 여름 서울대를 졸업했다. 2년 뒤 민주쟁취국민운동본부에서 상임집행위원과 상황실장을 맡으며 6.10 민주항쟁에도 뛰어들었다.

그해 말 <한겨레> 창간발기인을 지낸 뒤 평화민주당에 입당, 정계로 진출했다. 이듬해 13대 총선에서 서울 관악구를 지역구로 삼아 당선된 후 같은 지역에서 5번 연속 국회의원이 됐다. 13대 국회 때는 노동위원회에서 노무현, 이상수 당시 동료 의원들과 함께 '3총사'로 활동했다. 1992년 민주당 당무기획실장, 1993년 민주당 환경특별위원장, 1995년 조순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장을 지냈다. 조순이 서울시장에 선출되자 정무부시장으로 보좌했지만 5개월 만에 새정치국민회의 총선기획단장으로 당내 복귀했다.

1980년대 말부터 김대중을 비판적으로 지지했던 이 대표는 1995년 9월 김대중의 새정치국민회의로 들어가 정책위원회 의장을 맡아 일했다. 2년 뒤 대통령 선거기획본부 부본부장을 지내며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정책분과 간사를 맡으며 권력의 곁에 섰다.

2004년 9월 16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국정과제회의 자치 경찰제 도입 방안 회의에 참석한 이해찬 국무총리가 문재인 시민사회수석과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조선DB

김대중 정부 때 교육부 장관으로 일했다. 연합고사 폐지, 고교 평준화, 보충수업 폐지, 촌지 근절, 입시 개편 등 관련 정책을 발표했다. 교육 제도가 급격하게 흔들리자, 입시를 앞두고 있는 당시 고등학생들과 학부모들은 혼란에 빠졌다. 복잡다단한 대입 정책의 희생양이라는 뜻으로 '이해찬 세대'라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이 대표는 2001년부터 차기 잠룡으로 일컬어지던 노무현 세력으로 들어갔다. 이듬해 새천년민주당 소속으로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일조했다. 참여정부 출범 후 민주당을 탈당한 후 열린우리당 창당기획단장으로 일했다. 노 대통령 탄핵안이 소추되자 권한대행을 맡았던 고건 총리가 사임한 후 후임 총리로 발탁됐다. 노 대통령의 신임을 배경으로 '실세 총리' '책임 총리'라는 말을 들었다. 그만큼 자기 소신을 굽히지 않아 여야와의 갈등이 빈번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대통령 정무특보, 열린우리당 상임고문 등으로 일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과시했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 시민통합당을 창당했고 그해 말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에 위촉됐다. 2008년 18대 총선 불출마 후, 2012년 19대 총선에서 세종시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며 원내로 들어왔다. 같은 해 김한길 후보를 누르고 민주당 대표가 됐다. 그는 당시 수락연설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매카시즘에 단호히 맞서 싸우겠다. 종북주의 대신 정책경쟁하는 선거로 임해줄 것을 다시 한 번 호소한다"고 말했다. 그해 18대 대선을 앞두고 야권 후보 단일화 조건인 '지도부 총사퇴' 결정에 따라 대표직에서 내려왔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