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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핵 포기 불가론'을 밝혔다. 최근 함경북도의 한 간부회의에서 북한 당국 측 강연자가 참석자들에게 "핵무기는 선대 수령들이 남겨준 유산이다. 우리에게 없으면 죽음"이라고 말한 것이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4일(현지시각) 소식통의 말을 근거로 "(당시 회의에 참석한) 간부들은 윗선(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생각이 없다는 뜻인지, 핵 포기 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발언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반응을 자제하고 조용히 경청하기만 했다"고 전했다.
이 간부회의는 지난 7월 초순 함경북도 당위원회에서 도내 사법행정 기관, 사회단체, 기업소('기업'의 북한어: 독립적으로 경영 활동을 진행하는 사업체)의 당비서들과 지배인들을 대상으로 소집한 회의였다. 북한 당국이 남북-미북회담 성사로 내외에 조성된 정세와 관련한 중앙의 방침을 전달하는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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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은이 작년 11월 29일 새벽 평양 인근에서 신형 대륙 간 탄도 미사일(ICBM)급 화성-15형 시험발사 현장을 찾아 참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사건은 회의 말미에 터졌다. 6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의 마지막 순서로 등장한 강연자가 '핵은 없어서는 안 될 선대의 유산'이라고 역설(力說)한 것이다. 소식통은 "이 회의 내용이 주민들에게 알려지면서 상당한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며 "(핵 포기 불가론을 외친) 당국의 주장에 공감한다는 반응, 국제사회와 한 약속을 파기하는 것이냐는 반응이 엇갈리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싱가포르 회담 이후 중앙에서 당 간부회의를 통해 '핵'을 선대 수령들이 물려준 고귀한 유산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다만 "최근 조성된 정세로 인해 기강이 해이해진 간부들을 다잡기 위한 사상교양 사업의 하나일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 공사도 김정은의 핵 포기를 믿지 않았다. 태 전 공사는 지난 5월 책 《3층 서기실의 암호》 출판기념회에서 "(북한의 결론은) 완전한 핵 폐기가 아니라 비핵화로 포장된 핵 보유국"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지난달 20일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정은은 북한 핵을 놓고 '강력한 보검'과 '확고한 담보'라고 개념을 정립했다"며 "이는 핵이 북한에 있어 창과 방패라는 의미인데 이걸 내려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인권운동가인 김영환 준비하는미래 대표도 같은 달 '2018 북한 인권 국제회의' 기조연설에서 "북한은 국가 예산의 24%를 국방비로 지출하고 있다"며 "김정은과 북한 지도부는 핵무기가 필수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고 말했다.
핵에 대한 북한의 집착은 뿌리가 깊다. 현재는 남북-미북 연쇄 정상회담 성사 이후 대북 유화국면이 조성된 상태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북한은 남한을 향해 '핵 공격'을 운운했다. 핵 보유 사실을 과시하면서 그 위력을 신봉한 것이다.
통일연구원이 2016년 발간한 《북한 핵 개발 고도화의 파급영향과 대응방향》에 따르면,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부터 북한의 핵 태세는 가장 공세적 형태로 전환됐다. 핵 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강화하고 있고, 핵 탄두 소형화 기술도 연구 중이다.
북한은 과거부터 한미연합훈련을 도발로 간주하면서 핵무기를 동원한 선제타격도 불사할 것임을 계속 밝혀왔다. 실제 3차 핵실험 직후인 2013년 3월 27일 인민군최고사령부 명의 성명을 통해 '1호 전투근무태세'를 발표, "(대남) 군사적 행동은 우리의 자주권 수호를 위한 강력한 핵 선제 타격"을 포함한다고 밝힌 바 있다. 책은 이렇게 설명한다.
〈(북한 당국은 자신들이 만든) 핵보유국법에서 억지와 보복을 위한 사후적이고 제한적인 핵무기 사용원칙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각종 성명을 통해 한국에 대한 핵 선제공격을 위협하고 있어, 핵 선제 불사용 원칙을 포기하였거나 이를 상징적인 규정이라 치부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역대 한미 정권의 눈치를 살피며 비핵화를 협상 카드로 내세웠다. 각 정권이 단호한 태세를 취하면 핵무기 선제 공격으로 위협했다. 그들의 감탄고토(甘呑苦吐)하는 '비핵화론'을 이번에는 믿을 수 있을까.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