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이 정말 원하는 건 韓美 사이 틀어지게 하고 동맹 약화시키는 것”... 美 지식사회서 퍼지는 ‘北 비핵화 비관론’ : 월간조선

“김정은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핵무기를 포기할 어떤 의도도 없다.”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비확산·군축담당 특보)

“미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은 일부 역량을 포기하는 대신 경제 지원을 받는 방안을 협상할 것이다. 하지만 역량을 일부 보존하거나 애매한 방식으로 유지할 것으로 본다.”(랄프 코사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태평양포럼 소장)

최근 미국 학계에서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월 말부터 이달 초까지의 미 관영언론 ‘미국의 소리’(VOA) 보도에 따르면, 교수·전관(前官)·연구원 등 외교 전문가들은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나서더라도 그 이행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부 장관도 이 같은 점을 우려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문가들의 ‘북 비핵화 비관론’은 오는 12일 미북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파장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22일 열린 한미정상회담. 사진=뉴시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지난 3일(이하 현지시각) 제17차 아시아안보회의에서 별도로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를 갖기 전에 “아무리 낙관한다 해도, (북한과의 핵 협상은) 순탄하지 않은 길(bumpy road)을 예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 정권의 전례(前例)를 볼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경고했다. 나아가 유엔의 대북제재 또한 북한 정권이 ‘검증 가능하고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조치’를 보일 때만 완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 1일 백악관에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난 뒤 ‘북한이 비핵화하기 전까지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 사진=조선DB

VOA가 지난 5월 30일 미 외교·안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북 비핵화에 대한 긍정적 응답은 하나도 없었다. 이들이 주장하는 해결책도 ‘단계적 비핵화’부터 ‘추가 제재’ ‘정권 교체’까지 각자 달랐다. 중국 전문가인 고든 창 변호사는 현 상황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추가 대북제재 등 압박 강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데이비드 맥스웰 한미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북한 비핵화를 위해 한국 체제하에 남북이 통일되는 ‘통일 한국’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하 VOA가 보도한 전문가 응답의 일부분이다.

1. 에반스 리비어 전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부차관보: “북한은 비핵화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북한이 정말 원하는 건 한미동맹을 약화시키고 사이를 틀어지게 하는 것인데 가장 잘해야, 미래에나 이뤄질 비핵화를 거론하는 애매하고 모호한 합의를 하는 데 그칠 수 있다. 또 북한이 몇 가지 구체적 조치를 취하도록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역량을 약화시키고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을 다시 영변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들이 될 수 있다. 북한은 끝까지 핵을 포기할 것 같지 않다.”

2. 브루스 베넷 랜드연구소 선임연구원: “북한은 지난 1992년 남북 비핵화 선언에서 핵무기의 보유, 개발, 사용 등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우라늄 농축 시설과 재처리 시설 역시 갖지 않겠다고 했다. 북한은 현재 이 모든 사안에 대한 약속을 어기고 있다. 북한은 최근 남북 판문점 선언에서도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현실화하겠다고 했다. 북한은 공식적인 약속을 두 번 이상 어기게 된 것이다. 역사적 증거를 봤을 때 북한은 자신들이 합의한 내용들을 이행하는 책임감이 없다. 낙관적인 측면으로 보면 김정은이 드디어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고 하는 것이라는 기대가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본다면 북한이 완전히 비핵화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김정은은 핵무기를 모두 처분했다고 할 수 있지만 어딘가에 숨겨놓을 것으로 본다. 김씨 정권이 수십 년 동안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것은 매우 창피한 일이다.”

3. 래리 닉시 한미연구소 연구원: “비핵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다. 2018년에 들어 김정은의 행동들은 미국과 한국에서 긍정적으로 평가됐다. 물론 어느 정도 이유가 이해는 되지만 이런 낙관론이 비현실적인 생각으로 이어져 버렸다. 노벨 평화상 얘기가 나오는 것도 한심하다. 최근 김계관의 발언을 보면 북한의 입장은 6자회담 당시와 똑같다.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 실험에 대한 제한적인 동결을 제안하며 미군의 훈련과 작전 역시 제한할 것을 요구할 것이다.”

4. 셰릴 로퍼 전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 핵 폐기 전문가: “북한이 핵무기를 진심으로 포기할 것 같지 않다. 북한이 현재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울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를 주권국가로 남아 있는 것을 보장하는 유일한 수단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5. 미첼 리스 전 국무부 정책기획실장: “절대 비핵화하지 않을 것이다.”

급물살을 타는 미북회담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는 지난 1일 문재인 대통령의 종전 선언 제의와 관련, 트위터에 “한국이 너무 빨리 움직여 미국을 상자 안에 넣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 석좌는 다음날 '뉴욕타임스(NYT)'에 트럼프 대통령이 상자 안에 갇힌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그는 해당 보도에서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이 잘 안 돼 대북제재로 돌아가려 해도, 한국과 중국은 따라가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크리스토퍼 힐 전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최근 '워싱턴포스트(TWP)'에 “데이트(미북회담)가 너무 빠르다는 데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미 국무부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때까지 제재 국면을 유지할 방침이다. 익명의 국무부 관계자는 지난 4일 VOA에 북한의 핵 프로그램 폐기를 원한다며, 비핵화를 달성할 때까지 대북 경제 제재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이전 협상의 점진적·단계적 접근법은 모두 실패했다는 입장을 다시 밝히기도 했다. 관계자는 미국의 변함없는 목표가 여전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CVID) 한반도 비핵화라고 밝혔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