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드루킹의 자료창고 블로그 캡처
댓글 조작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드루킹’(김모씨)의 네이버 블로그 ‘드루킹의 자료창고’가 최근 폐쇄됐다가 다시 열렸다. 드루킹은 과거 시사·정치·인문 계열의 파워블로거로 활동했다. 그의 블로그에는 시사 문제와 관련한 논평·해설 성격의 게시물이 많다. 나름의 시각으로 국내외 정치 현상을 종합·분석한 글들이 주를 이룬다.
그중 눈에 띄는 글이 하나 있었다. 드루킹이 작년 8월 1일 본인 블로그의 ‘정치시사’ 코너에 올린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차이점’이라는 제목의 게시물이다. 그는 민주당원답게 진보 정권의 대표적인 두 대통령의 성격·능력을 세밀하게 비교·분석했다.
게시물 안에 링크 주소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은 당초 드루킹 본인이 팟캐스트 동영상에서 말한 내용을 토대로 한 것 같다. 현재 드루킹이 출연한 인터넷 동영상, 즉 팟캐스트 채널은 없어진 상태다.
드루킹은 이 글에서 노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차이점을 ‘당골래(무당)와 총사령관의 차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문 대통령을 지지하는 분들은 그에게서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성향을 찾으려 한다”며 “소박함, 직선적인 면 등을 찾으려 하지만 제가 느끼는 것하고는 좀 다르다”고 말문을 열었다. 구어체로 된 드루킹의 글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은 직관력, 문재인은 철저한 계획에 의해 움직여”
2006년 5월 당시 정찬용 청와대 인사수석은 ‘노무현은 당골래’라고 말했다고 한다. 청와대 수석·보좌관들이 노 전 대통령과 일할 때면 그의 지시사항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것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셨구나’하고 참모진이 뒤늦게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노 전 대통령은 마치 선지자처럼 어떤 정국(政局) 상황이 벌어질지 예견하고 참모진에게 미리 일을 시켜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청와대 참모들이 “이 양반은 정말 어떻게 알고 그걸 시켰을까”라고 말할 정도로 노 전 대통령의 예지력에 감탄한 나머지 ‘당골래’라는 별명을 붙여줬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글쓴이 드루킹은 이렇게 덧붙여 설명한다.
“정확한 표현으로 하면 노 대통령이 굉장히 직관력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죠. 직관력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사건의 본질을 꿰뚫어 보고 거기에 대해서 미리 조치를 할 수 있는 거죠. 핵심을 딱 파악을 하니까. (예방)조치를 할 수 있는 이런 능력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보통의 사람들은 그런 직관력이 없기 때문에 왜 노 대통령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를 쉽게 하지 못한다는 거죠.”
또한 드루킹은 ‘직관력이 강한’ 노 전 대통령을 ‘단순하고 소박하면서도 직선적인 인물’이라고 표현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감정 표현이 솔직했다고 한다. 노래방에 가서도 주저하지 않고 상대방과 함께 즐겁게 놀아줄 정도로 진솔한 면모를 보였다는 것이다.
드루킹이 보는 문 대통령은 ‘전략가’였다. 노 전 대통령이 ‘어떤 사안을 직관적으로 깨부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정치가’인 반면, 문 대통령은 특정 사안에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전쟁터의 총사령관’이라는 뜻이었다. 드루킹은 해당 게시물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전쟁에 있어서 지휘관, 총사령관 같다’는 얘기를 제가 가끔 합니다. 이분은요, 어떤 사안에 접근할 때 굉장히 전략적인 분입니다. ‘이 문제를 도대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계획을 아주 오래전부터 짠다는 거예요. 철저하게 어떤 계획에 의해서 움직인다.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전략적인 사람이다. 이렇게 저는 판단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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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2007년 3월 12일 오전 청와대에서 문재인 신임 비서실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접견실로 가고 있다. 사진=조선DB |
드루킹은 문 대통령을 “우회적인 (전략적) 부분이 좀 있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은 정치적 판단을 할 때도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했다. 드루킹의 표현대로, “이 민주 세력이 정권을 제대로 운영해 나가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한가”부터 실질적으로 접근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다.
그런 점에서 드루킹은 문 대통령을 “냉정한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는 “지휘관이 전쟁터에서 승리하기 위해 작전계획을 세우고 군대를 투입하듯이 (문 대통령도) 그 계획에 맞춰서 냉정하게 움직인다”고 평했다.
드루킹은 이처럼 두 대통령이 각자 다른 성향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참여정부 시절 ‘지도자와 참모 사이로 정치적 궁합이 잘 맞을 수 있었다’고 평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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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루킹’이 보는 노무현-문재인 특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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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감성적 지도자) |
문재인 대통령 (이성적 지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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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선적, 감정적, 직관적, 단순함, 소박함 |
전략적, 계획적, 냉정함, 치밀함, 실질적 |
文대통령, 집권 직후부터 ‘지방선거·총선’ 승리 전략 짜놓고 있었나
드루킹은 문 대통령이 전략에 능하다고 생각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제가 깜짝깜짝 놀란 게 한 두어 번 있었어요. 지방선거까지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그림이 그려져 있고. 그다음에 좀 이런 얘기는 직접 하진 않으시겠지만, 길게는 총선까지 ‘어떻게 해야 될 것이다, 어떤 구도를 그려야 될 것이다’라는 게 짜여 있어요.”
즉 문 대통령과 청와대는 당시 집권한 지 3개월도 채 안 된 시기에 이미 다음해의 지방선거와 3년 뒤의 총선까지 승리 전략을 구상해 놓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만큼 문 대통령은 향후의 미래를 준비하며 치밀하게 집권 전략을 짜놓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드루킹은 문 대통령의 경우,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자신의 ‘작전계획’에 동의하지 않으면 매우 껄끄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한다. 물론 어느 대통령이든 여당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면 불편함을 느끼겠지만, 문 대통령의 경우는 더욱 심하다는 뜻으로 들린다.
예를 들어 노 전 대통령은 감정적 인물이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이해를 할 수도 있겠지만, 문 대통령은 전략적 인물이기 때문에 자신의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상황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하 드루킹의 설명이다.
“(여당) 당대표가 이런 그림이나 전략적인 측면에 협조를 안 해주면 문재인 대통령은 이걸 굉장히 껄끄럽게 생각을 하시고, 변화시키려고 한다는 거예요. 노무현 대통령처럼 감정적·직관적으로 접근을 했을 때는 어떤 이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문재인 대통령은 전술·전략을 딱 짜놓고 그 계획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이해할 수가 없죠). 예를 들면 부하 장수가 작전계획에 동의를 하지 않는다거나 또는 명령을 수행하지 않는다 할 적에는, 지휘관의 입장에서는 그 사람을 빼고 다른 사람을 투입해야 되잖아요.”
드루킹, 몽상가와 책략가의 '주변인'?
물론 이 같은 논평은 어디까지나 ‘파워블로거’로 활동하던 드루킹 개인의 생각일 따름이다. 정치사적으로 일면 들어맞는 부분도 있을 것이고, 현실정치와 괴리가 있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판단은 드루킹의 글을 읽는 이들의 몫이다.
중요한 건 드루킹이 오랫동안 파워블로거로 활동하고 각종 정치평론을 써오면서 나름 진보 정치의 권력구도와 역학관계에 대해 분석력을 가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 점으로 미뤄볼 때 그가 망상에 가까운 이론들을 믿었다는 말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여론 공작 조직을 이끌었을 만큼 주도면밀한 인물이었던 것은 맞아 보인다.
반면 여권에서는 드루킹의 댓글 조작을 ‘모험주의에 사로잡힌 개인의 일탈’로 일축하고 있다. 드루킹은 본인의 글처럼 치밀한 책략가였을까, 여권의 말대로 허술한 몽상가였을까. 검경의 수사결과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글=신승민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