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 개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지난해 11월 낙태죄 폐지에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촉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청와대는 국민청원에 응답해 4월부터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4월부터 정부 차원의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가 시행된다. 그러나 여성계는 "여성의 관점을 반영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청와대와 정부는 국민청원의 본질을 파악해 조사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난해 11월 23만 명이 참여한 ‘낙태죄 폐지’ 청원에 대한 응답으로 임신중절 실태조사를 예고했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1월 28일 연구 용역 공고를 냈고, 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3월 초 선정돼 4월부터 실태조사를 실시할 예정이다.
30일 여성단체들에 따르면 보건복지부가 실태조사를 위해 공지한 연구 제안서가 "여성의 관점이 아닌 국가적 관점에서만 인공임신중절 사태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여성민우회를 비롯해 14개 단체가 모인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모낙폐) 측은 "조사 방향이 여성의 기본권을 제약하고 국가가 여성의 몸을 낙태죄로 통제할 수 있다는 관점이 유지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여성을 아이를 낳아야 하는 국가적 의무를 가진 존재로, 인공임신중절은 그저 예방되어야 하는 사안으로만 바라보고 있다"며 "낙태죄 폐지 취지를 담은 실태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사연은 과거 ‘저출산은 여성 고스펙 탓’ 등의 연구로 문제점을 드러낸 바 있다. 보사연이 지난해 내놓은 ‘결혼시장 측면에서 살펴본 연령계층별 결혼결정요인 분석’ 보고서는 여성을 출산 도구 정도로 여기는 시각을 보여줘 논란이 됐다.
‘고학력·고스펙 여성들이 저학력 남성과 하향 결혼하게 유도할 백색 음모가 필요하다’는 황당무계한 내용이었다. 당시 사회적 파문이 일자 보고서를 작성한 원종욱 선임연구위원은 공개 사과하고 보직 해임됐다.
보사연은 또 인공임신중절 실태와 정책과제’ 보고서(2010년)에선 “인공임신중절은 무엇보다도 발생 자체를 억제하는 것이 중요하다” “피임 방법의 보급과 함께 인공임신중절의 폐해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확산시키는 일 그리고 인공임신중절의 법적 제재 등으로 어쩔 수 없이 출산한 경우의 양육지원”을 정책 방향으로 제언한 바 있다. 모낙폐는 “(보사연이) 성인지적 관점의 연구를 수행할 역량과 의지가 충분한지 우려”스럽다고 비판했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낙태죄 폐지의 근간은 여성들의 임신중절 이유를 분석해 이를 해결하고 중절로 인한 신체적, 정신적 위험을 예방하는 등 여성의 건강권과 자기결정권을 보호하는 것인데, 보사연의 연구방안에는 그런 언급이 없다"고 분석했다. 또 "국민청원으로 얻어낸 결과라 과거보다 좀 더 발전된 방안이 나올 줄 알았는데 실망스럽다"고 밝혔다.
헌법재판소는 지금 낙태죄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이다. 여성계는 "이번 실태조사는 당사자인 여성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고 법제도에 반영할 기회인 만큼 신뢰할 수 있고 역량 있는 연구진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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