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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 강타한 미투...북한 여성의 현실은?

구금시설에서 우월적 직위 이용해 성폭행, 탈북 후 팔려가 성노예 생활

김성훈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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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탈북여성단체 뉴코리아여성연합 주최로 열린 '북한여성들의 인권실상을 알리고 인권개선 및 그 가해자 처벌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탈북여성들이 북한에서 겪은 인신매매와 성폭행 등 실태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 사회에서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김정은 정권의 폭압 속에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북한 여성의 현실은 어떨까?
 
북한인권정보센터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소장 윤여상)는 2007년 개소한 이래 지난해 7월까지 탈북민 4만932명을 대상으로 인권 침해 사례 6만8940건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성폭행 피해 사례가 430건이었고, 강제매춘 및 인신매매 피해 사례가 3933건이었다. 성폭행, 강제매춘 및 인신매매 피해자 중 여성의 비율은 각각 99.1%, 99.4%였다. 
 
성폭행 - 상당수가 구금시설에서 우월적인 직위 이용해 발생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장소를 분석하면, 보위부와 안전부 조사 및 구금시설 91건(21.2%), 집결소 33건(7.7%), 정치범수용소 22건(5.1%), 단련대 14건(3.3%), 교화소 9건(2.1%), 군영 내 12건(2.8%)로 나타나 북한의 공식적인 조사시설과 구금시설에서의 성폭행 사건 발생빈도가 181건(42.1%)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는 북한 구금시설이 성폭행 관련 인권사각지대임을 보여준다. 상당수의 성폭행이 구금시설에서의 우월적인 직위와 직책을 이용해 이뤄졌다.
 
세부 사례별로 분류하면 강간 222건(51.6%), 강간미수 13건(3.0%), 성추행 및 성희롱 95건(22.1%), 성폭행 100건(23.3%)이었다. 성폭행은 강간, 강간미수, 성추행 및 성희롱을 제외한 성폭력 행위를 따로 분류해 집계했다.
 
강간 피해를 당한 함경남도 출신 이모씨의 증언이다.
"보위부에서는 1년 있었는데, 한 달에 한 5~6번 정도 성폭행을 당했어요. 그 사람은 안전부 계호원이었어요. 보위부에서 생활하지만 안전부 소속입니다. 이 사람이 성폭행 했어요. 구류장 안에서 때리는데 어떤 때는 그 매를 안 맞기 위해서도 그렇고 하루에 두 끼씩 주는 것도 그 사람이 하라는 대로 안 하면 못 얻어먹잖아요. 그래서 성폭행 당했어요. 카메라가 많이 있으니깐 구류장 안에서는 많이 안 당했습니다. 그런데 정전 안 되면, 어떤 때는 전기 떼고 강간하고 구류장에는 쇠창살이 있으니까. 가까이 오라고 해서, 나를 세워 놓고 젖가슴 만지고, 옷 다 벗기고 자기 성기를 그렇게 하라든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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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3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탈북여성단체 뉴코리아여성연합 주최로 열린 '북한여성들의 인권실상을 알리고 인권개선 및 그 가해자 처벌을 위한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뉴시스

강제매춘 및 인신매매 - 1990년대 대량 탈북 이후 급증
 
강제매춘 및 인신매매 사건을 시기별로 분석해보면 2000년대 50.5%, 1990년대 27.0%, 2010년 이후 10.7%, 1980년대 0.1% 순으로 1990년대 이후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다. 발생지역을 분석해보면, 중국이 91.5%(3598건)로 나타나, 대부분 중국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0년대 이후의 비율이 높은 것은 당시 북한의 심각한 식량 부족으로 많은 여성들이 탈북해 강제매춘을 경험하거나 중국으로 인신매매되었음을 보여준다. 북한의 지속된 경제난으로 북한의 여성들이 성매매 수단으로 전락하는 등 여성의 인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이다.
 
인신매매 및 강제매춘 피해를 당한 함경북도 출신 김모씨의 증언이다.
"2009년에 강을 건넜는데 인신매매 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애들이 둘 더 있었는데 저보다도 더 어리고 예뻤어요. 그런데 그 때 금방 사라졌는데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조선족이 중개를 했는데 그 사람이 나한테 그런 일을 할 것을 얘기했어요. 술집에 가서 몸 파는 일들을. 그런데 애들 둘은 그 길을 택했어요. 그런데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래도 일단은 안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시골에 가서 시집을 간 거예요. 한족 집에서 조금 살았는데 처음에 갔을 때 엄청 충격 받았어요. 남자는 나이는 많이 안 먹었는데 아이가 있었어요. 여자가 돈을 갖고 도망갔다고 했어요. 생활이 많이 한심하고 막연해서 음식도 안 맞고 힘들어서 몇 번 도망가려고 시도를 했어요. 그러다가 옆집 아줌마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그 아줌마랑 ㅇㅇ성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를 시내에 시집보내겠다는 것이 협잡이었어요. 저를 몸 파는 데에 팔아서 돈을 벌어먹겠다는 거였죠. ㅇㅇ성 ㅇㅇ시에 있는 조그마한 가게였어요. 거기서 몸을 팔지 않겠다고 한 삼일 버텼어요. 그런데 밥도 안주고 돈도 안주고 하는 거에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2차도 나가고 하면서 몸을 팔게 되었어요."
 
자료=《2017 북한인권백서》, 북한인권정보센터 부설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글=김성훈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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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달기 2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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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혜연 (2018-03-29)

    너희들 입장에서야 종북주의자들을 척결하느라고 기를 쓰시는데 그래봤자 종북주의자들은 더 활개칠거다!!!!

  • 박혜연 (2018-03-28)

    그러고도 여기와서는 극우보수단체들의 노리개가 되려고 작정하셨나 ㅡㅡ 월간좇선아!!!! 탈북자들을 정치선전에 이용하는거 제발 그만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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