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볼턴이 22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지명되면서 그가 추진했던 '리비아식 핵 폐기 모델'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볼턴은 내달부터 미북 정상회담의 밑그림을 그리면서 북한 비핵화 로드맵을 짤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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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조선DB |
당시 리비아는 '완전한 핵 포기' 선언 후 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을 받고 핵개발 장비·문서를 미국에 넘기고 있을 때였다. 볼턴은 최근에도 "미·북 정상회담이 성사된다면 리비아 때와 비슷한 협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볼턴이 주장하는 리비아식 해법은 '선(先) 핵 폐기, 후(後) 보상'이 기본 틀이다. 먼저 완전한 핵 포기를 선언하고 검증까지 이뤄진 후에야 제재 해제 등 '보상'을 한다는 것이다.
리비아는 1981년 미국과 외교 관계가 단절된 뒤 강력한 경제 제재에 직면했다. 1986년 카다피가 서베를린 디스코텍 폭탄테러를 자행, 미군 사병이 사망하자 미국은 자국 리비아 자산 동결, 미국의 대(對)리비아 교역 금지 조치가 이어졌다. 1992년에는 유엔 안보리 제재까지 받았다.
원유 수출 봉쇄 등으로 카다피 정권이 타격을 받은 상황에서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전쟁에 나섰다. 그러자 리비아는 2003년 3월 영국 비밀정보국 MI6을 통해 미국에 핵 포기 의사를 전달했다.
2003년 4월부터 미국과 리비아의 비밀 협상이 시작됐다. 리비아는 핵 프로그램을 미측에 모두 공개했다. 이어 그해 말 "핵과 생화학 무기를 완전히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듬해 포괄적 핵실험 금지조약(CTBT)에 가입하고, IAEA의 사찰도 받았다. 원심분리기 등 리비아의 핵 무기 제조 장비와 관련 서류 총 25t 분량이 미국 테네시주 오크리지 국립연구소 창고로 옮겨졌다. 2005년 10월 리비아의 핵 프로그램은 완전히 폐기됐다.
리비아는 2006년 5월 미국과 국교가 정상화됐고, 25년 만에 미국의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빠졌다. 리비아가 '완전한 핵 포기'를 선언한 뒤 실제 핵 프로그램이 폐기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년 10개월이다. 리비아가 확실한 핵 포기 의사를 보이며 IAEA의 포괄적 사찰을 바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복잡한 검증 단계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셈이다.
미국은 북한에도 리비아식 북핵 폐기 방안을 제시해왔다. 볼턴이 전면에 나설 경우 5월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비슷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크다. 리비아식 비핵화를 하면 북한도 사실상 2년 내에 핵 폐기를 완료해야 한다. 리비아처럼 핵 포기 선언 후 관련 시설과 자료를 공개하고, 광범위한 사찰을 거쳐 핵 시설을 전면 폐기하는 방식이다.
북한 정권은 당연히 강한 거부감을 보였다. 2004년에도 "리비아식 선(先) 핵 포기 방식은 일고의 논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하며 '핵 동결과 그에 따른 동시 보상'을 주장했다. 특히 카다피 정권이 2011년 민주화 운동으로 무너진 것을 보고 거부감이 더 커진 것으로 알려졌다. 카다피 시대의 종말이 결과적으로 핵을 포기했기 때문으로 본 것이다.
존 볼턴의 이러한 ‘리비아식’ 북핵 폐기 방안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주목된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