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판 '왕의 남자' '호랑이 사냥꾼' 왕치산의 화려한 부활 : 월간조선

중국 제13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우리의 국회)에서 국가부주석으로 복귀한 왕치산(王岐山)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는 향후 시진핑 정권의 핵심 인물로 부상할 것으로 보인다.

69세인 왕치산은 지난해 10월에 열린 제19차 중국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7상 8하’(67세는 유임하고 68세는 은퇴한다) 원칙에 따라 은퇴했지만, 이번 전인대를 통해 복귀했다. 국가주석과 함께 부주석도 지난 11일 표결 시행된 개헌으로 2연임 한도이던 임기 제한이 사라졌다. '시⋅왕 투톱 체제'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반면 리커창(李克强) 총리의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약해질 것으로 보인다.

왕치산의 복귀는 시진핑 주석의 종신 집권 길을 여는 데 기여할 뿐 아니라 위기로 치닫고 있는 미중 긴장관계 해소에 일정한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잇따라 미국을 방문했지만 별 소득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장관을 교체해 중국으로서도 미국과 대화가 통하는 누군가를 내세워야 하는 시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 주석이 미중 관계 복원에 왕치산을 앞세울 것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그만큼 시 주석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남다르다는 뜻이다.

왕치산은 우리의 검찰격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중기위)’ 서기를 맡아 반부패 사정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시진핑이 정권을 잡은 2012년 18차 당대회 이후 중기위가 낙마시킨 크고 작은 부패 관료는 무려 25만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고위관료들도 37명이나 된다. 중기위의 감찰에 걸려 자리를 잃은 국영기업 고위간부들은 27명, 은행 등 금융 계통에서 날아간 행장 이하 간부도 20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 날아간 인물이 보시라이(薄熙來) 전 충칭시 서기(정치국원), 쉬차이허우(徐才厚) 전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정치국원), 저우융캉(周永康) 전 중앙정법위원회 서기(정치국 상무위원) 등이다. 이후 왕치산은 ‘대호(大虎·큰호랑이) 사냥꾼’으로 불렸다.

왕치산은 이미 지난 20여 년 동안 경제·외교 분야에서도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 때 광둥(廣東)성 부성장으로 중국 최초의 파산금융사인 광둥신탁투자 처리를 맡아 이를 매끄럽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명성이 전국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2003년 중국의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대유행 때다. 광동성 부성장을 지내고 하이난성 서기 재임 중 사스로 초토화된 베이징 시장으로 긴급 차출됐다. 이후 그는 사스 광풍을 누그러뜨려 ‘소방수’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왕치산은 몇 년 전 방영된 ‘별에서 온 그대’의 인기를 중국에 전파한 인물이기도 하다. 왕치산은 2014년 3월 “(공무원) 당신들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싱싱(星星·별)’인가 뭔가 하는 드라마를 봤느냐”며 “당신들 공무원은 아무도 모른다”고 질책했다. 이어 “나도 이따금씩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한나절 동안 보면서 한국 드라마가 우리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그 덕에 이 드라마가 중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끈 한류드라마가 됐다는 후문이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