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여성 보좌진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각계에 '미투(me too)' 운동이 확산되면서 정치권도 예외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이미 정치인들이 여성 당원들에게 행한 성추행 및 성희롱 사건은 다양하다. 국회 여성 보좌진 사이에서 남성 국회의원이나 상급 보좌관의 실명을 거론한 미투가 등장한다면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미 여성 보좌진은 "누가 먼저 나서나" 긴장 중이다.
보좌진의 페이스북 페이지인 '여의도 옆 대나무숲'에는 미투와 관련된 내용들이 줄을 잇고 있다.
한 여성 보좌진의 글이다. “일상에서는 성차별적인 발언, 술자리에서는 성희롱 발언을 아무 생각 없이 내뱉던 의원님의 입이 아직 제 눈에 선하네요. 덕분에 전 여전히 그때의 기억과 트라우마에 아주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함부로 미투를 응원하네, 어쩌네 하지 마세요.”
이 밖에도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들은 다음과 같다.
“요새는 여자 보좌진끼리 만나면 미투 얘기만 한다. ‘너도 미투야?’로 시작하면 얘기가 끝이 없다.”
“미투 운동을 정치권에서 응원하는 것을 보면 남의 눈의 티끌을 욕하기 전에 제 눈의 들보부터 뽑으라고 말하고 싶다. 영감들(국회의원) 중에 자기 방에서 성추행 일어났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피해자를 내보내고 가해자는 계속 두는 사람도 있다.”
“미투 운동이 한창인데 왜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이 모인 여의도 국회는 조용할까. 이곳만 유독 조용한 그 이유에 주목해 달라.”
“미투야 더 세게 불어라. 부디 국회에도 불어와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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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뿐만 아니라 직급이 높은 남성 보좌진이 여성 보좌진에게 행하는 성희롱, 성추행도 적지 않다. 한 보좌진은 “비서관이 은연중에 그러나 습관적으로 하는 성희롱적 발언을 참고 있는 우리 씩씩한 막내야”라며, “Me Too(미투)하란 말은 안 할게. 하지만 그렇게 참고만 있을 필요는 없다고 해주고 싶네. 지금보다 단호하게 대응해도 괜찮아. 그건 잘못이 아니고 우리는 너의 편이니까. 뉴스 보다 네 생각이 났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또 다른 보좌진의 글이다. ”몸매에 자신 있나 봐.” 40대인 A보좌관이 내 가슴을 지그시 응시하며 말했다. 그날 사무실에는 우리 둘뿐이었고, 난 몸에 좀 달라붙는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끈적한 시선이나 받으려고 입은 게 아니었다. 무척 불쾌했지만 드러낼 수 없었다. 그 사람은 내 직장 상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익명을 빌려서라도 말하고 싶다.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XXX의원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보좌관이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내왔다. 그는 '여자를 다룰 땐 이런 식으로 해야지'라며 낄낄댔다. 다들 히죽대며 웃는 걸 보니 사무실의 다른 남자 직원들에게도 보낸 모양이었다. 나도 남자지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성 보좌진도 많은데 국회에서 어떤 생각으로 이런 생활을 견디고 있는지 안쓰러워졌다. 그래서 나도 조용히 외친다. ‘미투.’"
다른 보좌진은 “의원님들! 남의 일에만 용기 어쩌고 개혁 저쩌고 하지 마시고 국회 내 성추행, 성희롱 조사 한 번 해주세요!”라는 게시물을 올렸다.
특히 여성 보좌진은 의원실을 찾아오는 외부인에게조차 수모를 겪곤 한다. 한 여성 보좌진은 “의원님을 찾아온 공무원이나 기업 관계자들이 '내가 10살만 어렸으면 비서님 꼬셔보는 건데'라는 식으로 얼굴과 몸매를 평가하며 희롱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여성 보좌진은 고용상태상 철저하게 '을'이기 때문에 전면에 나서기 힘들다. 물의를 일으켰다간 인사권을 갖고 있는 의원의 눈 밖에 나 당장이라도 해고될 수 있다. 실권을 갖고 있는 남성 보좌관이 의원에게 모함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국회 보좌진 가운데 말단인 9급 비서직의 여성 비율은 70%가 넘는다. 반면 최고 직급인 4급 보좌관직의 여성은 채 6%에 못 미친다. 직급이 높아질수록 남성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우세하다 보니 남성 중심의 분위기는 불가피한 구조다.
국회 한 여성 보좌진은 "국회는 누군가 한 명이 터뜨리기만 하면 활활 불 붙을 듯한 '화약고' 같은 분위기"라며 "지금 미투 운동에서 폭로되는 수준의 사건들은 수없이 많았지만 일자리 때문에 나서지 못하고 있는 내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다"고 토로했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