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27일 “현행 헌법의 전문은 개정할 필요가 없을 만큼 충분히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을 지낸 최 교수는 이날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헌법전문과 민주이념 토론회’ 기조 발제에서 “현재 개헌 논의의 대상이 되는 민주주의의 근본이념이나 기본권, 시민권의 가치는 지금 헌법 전문에 담긴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질서’라는 말을 통해 간결하게 표현됐다”고 강조했다.
최 교수는 헌법을 둘러싼 좌우 이념논쟁을 경계하는 듯한 말도 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한국 정치를 움직이는 진보·보수 간의 갈등이나 불편함을 전문 개정을 통해 불러들일 필요가 없다”며 “민주주의하에서 정치세력 간 갈등, 타협, 협력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실체적 내용은 헌법의 조문이나 규정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른바 진보 성향으로 일컬어지는 최 교수의 이 같은 주장에 일부 언론은 “진보 성향 정치학자인 최 교수가 보수층의 손을 들어준 셈”이라고 해석했다. 당초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는 최근 헌법 전문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삭제하자는 안(案)을 제시했다. 보수층에서는 “국가 정체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며 이런 움직임에 반대해 왔다.
최장집 교수는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지만, 다소 유연하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한국의 민주화 30년-세계 보편적 의미와 전망'이란 세미나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진보층 사이에서 대두되던 '직접 민주주의'를 우려하는 주장을 했다.
이 자리에서 최 교수는 "대의제 민주주의 원리에 따라 정치를 의회·정당 중심의 제도 안으로 수렴하는 대신 광장에서 운동의 정치를 확대하는 직접민주주의 추구는 커다란 방향착오"라고 주장했다. 그는 "직접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가 도약할 수 있다고 믿을 근거는 없다"면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보다 더 좋고 더 발전된 형태라는 전제는 현대 대의제 민주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도 쓴소리를 했었다. 최 교수는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10월 인터넷 ‘프레시안’과의 인터뷰에서 “‘과거사 진상규명’과 같은 이념대립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문제와 삶의 현실적 문제와 거리가 먼 '행정수도 이전'과 같은 지역 개발주의적 사안들이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자리 잡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노무현 정부가 추진하던 ‘과거사 진상규명’에 대해 "이러한 문제들은 이데올로기나 집단적 열정을 쉽게 동원하게 돼 정치를 극한적 갈등으로 치닫게 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때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의 ‘멘토’ 역할을 해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안 의원이 ‘십고초려’ 끝에 최 명예교수를 ‘정책네트워크 내일’의 이사장으로 모셨다는 게 당시 언론의 평가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멘토’ ‘멘티’ 관계는 80여 일 만에 끝났다고 한다.
2015년 3월 ‘월간중앙’과의 인터뷰에서 최 교수는 “안철수 개인에 대한 외부의 요구와 실제 모습이 달랐다. ‘안철수 현상’은 새로운 인물을 불러들여 막혀 있는 기성 정치를 새롭게 바꿔달라는 요구에서 나타난 것이었다”며 “안 의원을 보면 그런 것은 없고 언론과 여론에 반응하는 것이 전부였다”고 비판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