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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사회

22일 서거한 민법학계의 태두(泰斗) 곽윤직 교수의 삶과 일화

"법을 해석할 때는 「꽃을 꺾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보고 이를 「꽃나무를 뽑는 것은 괜찮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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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학계의 태두(泰斗) 곽윤직(郭潤直)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가 2월 22일 별세했다. 향년 93세.
고시생들의 영원한 베스트셀러인 <민법총칙>을 비롯한 민법 시리즈의 저자로 유명한 곽윤직 교수는 1951년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53년부터 교단에 섰고, 민법이 제정되던 1958년 서울대 전임강사가 됐다. 경성제국대학이 아닌 서울대 출신 첫 법대 교수였다. 

곽윤직 교수의 이름을 세상에 널리 알린 것은 1963년 나온 <민법총칙>이었다. 이후 곽 교수는 <물권법> <채권총론> <채권각론> <상속법>에 이르는 민법 시리즈를 완간했다. 민법 전 분야를 아우르는 책을 쓴 것은 그가 최초였다.
곽윤직 교수의 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국내 민법 교과서들은 일본 교과서들을 베끼다시피 한 것이 많았다. 거기에 소개된 판례들도 대부분 일본 판례들이었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민법이 제정된 것이 1958년, 시행된 것이 1960년 1월 1일부터였다. 그 민법조차 일제(日帝)시대에 조선총독부가 시행했던 조선민사령이나 그 원전인 일본 민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곽윤직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의 책에 얼마 안 되는 국내 판례들을 적극적으로 소개했고, 기존의 학설들을 충실하게 소개한 후 자신의 관점을 바탕으로 명쾌한 결론을 제시했다. 때문에 그의 민법시리즈는 ‘한국 사람이 한국인의 시각으로 쓴 최초의 민법교과서’라는 평을 듣는다. 
곽윤직 교수의 제자인 김태훈 변호사(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대표)는 “그 내용이 일목요연하고 이론이 정연해 이해하기 쉬웠다”면서 “그 어떤 책들도 곽 교수의 책을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곽윤직 교수의 민법시리즈, 특히 <민법총칙>은 법대생은 물론 사법시험, 행정고시 등 각종 고시생의 필독서였다. 9판(2013년)까지 나온 <민법총칙>은 약 40만 부 이상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곽 교수의 책을 출간해 온 박영사 관계자는 “정확한 판매 부수는 우리도 모른다”고 했다.

곽윤직 교수를 기억하는 제자들이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세 가지 있다. “~ 했단 말”이라는 특이한 말투와 철저한 학사 관리, 그리고 평생 한눈 팔지 않고 학문에만 매진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초 서울대 법대에서 공부한 차기환 변호사는 “교수님들의 학사관리가 그다지 엄격하지 않던 당시, 곽 교수님은 다른 분들과 달리 강의에 충실했고 학사관리도 엄격하게 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법대생들 사이에서는 "곽 교수에게서 A를 받는 것이 민법시험에서 과락(40점)을 면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유명한 말이 있었다. 한번은 학생 두 명이 A를 받자 곽 교수는 두 명을 앞으로 불러 세우더니 “괘씸하게도 A를 받았다는 말” “(점수를) 깎을래야 깎을 게 없었다는 말”이라고 했다고 한다.

학자로 조금만 이름이 나면 자의에 의해서건 타의에 의해서건 관계(官界)나 정계(政界)로 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한 우리나라 대학 풍토 속에서, 곽윤직 교수는 평생 학문의 외길을 걸었다. 
권성 전 헌법재판관은 “곽윤직 교수님은 잠깐 교무처장인가를 맡았던 것을 제외하면 학내 보직도 일절 마다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몰두했다”면서 “정부나 정치권에서 수차 영입 제안이 있었지만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권성 전 재판관은 “그 대신 곽윤직 교수님은 제자들과 법학 얘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댁으로 찾아가면 늘 밥상 같은 상(牀) 앞에 앉아서 원고를 쓰거나 책을 읽고 계셨다. 제자들이 오면 민법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걸 그렇게 즐거워하셨다.”
1995년 후학(後學)들이 고희(古稀)기념논문집을 출간하고 기념행사를 열었을 때, 곽윤직 교수는 “애써서 만들어 줘 고맙다”고 인사한 후, “이런 자리가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하는 허식의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면서 예고 없이 ‘상속법, 재산법인가 가족법인가’라는 주제의 논문을 발표해 후학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민법학에 대한 사랑과 열정은 1977년 민사판례연구회를 만드는 것으로 이어졌다. 곽윤직 교수는 민법학 연구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제자들을 모아 매달 2~3권의 논문을 발표하고, 이를 모아 <민사판례연구>라는 책을 매년 한 권씩 발간했다. 이용훈·양승태 전 대법원장, 김황식 전 국무총리, 권성 전 헌법재판관, 송상현 전 국제형사재판소(ICC)소장 등이 민사판례연구회 출신이다. 
권성 전 재판관은 “곽윤직 교수님은 한국 민법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관으로 일하면서 민법과 관련해서는 곽 교수님의 책과 일본 민법학의 대가인 와가쓰마 사카에(我妻榮·1897~1973)의 책을 참고했는데, 곽 교수님의 이론이 와가쓰마를 넘어섰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곽윤직 교수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법조인이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는 사법시험 합격자 1000명 시대에 접어든 2002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엉터리 의사가 많아지면 의료사고가 빈발하듯이 앞으로 엉터리 법률가가 많아져서 소송사고가 빈발하고 억울한 의뢰인들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김태훈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곽 교수님은 제자들에게 늘 ‘제대로 된 법률가가 되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법을 해석할 때는「꽃을 꺾지 마시오」라는 푯말을 보고, 이를 「꽃나무를 뽑는 것은 괜찮다」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던 게 기억난다.”

입력 : 2018.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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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 등이 있습니다. 이 코너를 통해 제가 읽은 책들을 소개하면서 세상과 역사에 대한 생각을 독자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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