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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CCR의 〈Lodi〉

[阿Q의 ‘비밥바 룰라’] 설날에 듣는 낙향의 노래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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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밴드 CCR의 리더 존 포거티의 젊은 시절 모습.

우리가 떠나온 고향은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고향을 떠나 외지로 떠돌다 어느 날 다시 찾은 고향... 고향이란 원형의 공간은 이미 변해버려 옛 흔적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기억 속 원형은 언제나 기억에서 반짝이고 있다. 아직도 그곳엔,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는 그곳엔, 헐벗은 아버지와 어머니, 가난한 누나와 오빠, 동생이 함박눈을 맞으며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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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R의 싱글 Lodi〉 커버.
시인 서정주(徐廷柱, 1915년 5월 18일~2000년 12월 24일)의 고향인 질마재는 시적 원형이다. 그의 시는 질마재에 쌓인 바람이었다. 질마재는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선운리는 그 영(嶺) 모롱이(산모퉁이의 휘어진 곳)의 이름을 따서 질마재라고 불렀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아늑한” 곳이었다. 질마재는 모두 합해 150 가구가 사는 곳이었다. 석류나무, 감나무, 돌다리가 있고 신선도(神仙圖)에 나올 법한 산이 굽이굽이 이어진 마을이었다.
 
소설가 김동리(金東里, 1913년 11월 24일~1995년 6월 17일)의 고향은 경주다. 생전 그는 경주를 슬픔과 폐허의 고도라고 했다. 집 밖에는 무슨 절터가 나오고, 무슨 당산(당집과 당나무가 있는 산)이 있고, 고분들이 많은 밤숲 거리, 봉황대, 비두거리(첨성대 앞거리), 안압지, 계림, 반월성, 황룡사지가 있었다. 그 사적들과 잡초와 낙엽에 덮여 있는 어느 이름 모를 절터, 공터에서 유년을 보냈다. 그 유년이 그에게 소설을 쓰게 만든 내적 원형이었다.
 
소설가 이문열(李文烈, 1948년 5월 18일~)의 고향은 경북 영양군 석보면이다. 그는 소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의 에필로그에 떠나온 고향을 이렇게 그렸다.
 
〈…진정으로 사랑했던 고향에로의 통로는 오직 기억으로만 존재할 뿐 이 세상의 지도로는 돌아갈 수 없다.
아무리 사라져 아름다운 시간 속으로, 그 자랑스러우면서도 음울한 전설과 장려한 낙일도 없이 무너져 내린 영광 속을 돌아갈 수 없고, 현란하여 몽롱한 유년과 구름처럼 허망히 흘러가 버린 젊은 날의 꿈속으로 돌아갈 수 없으므로. 한때는 열병 같은 희비의 원인이었되 이제는 똑같은 빛깔로만 떠오르는 지난날의 애증과 낭비된 일정으로는 누구도 돌아갈 수 없으며 강풍에 실이 끊겨 가뭇없이 날아가 버린 연처럼 그리운 날의 옛 노래도 두 번 다시 찾을 길 없으므로.
우리들이야말로 진정한 고향을 가졌던 마지막 세대였지만 미처 우리가 늙어 죽기도 전에 그 고향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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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고향에서 은둔 후 재기에 성공한 존 포거티.

CCR(Creedence Clearwater Revival)의 〈Lodi〉는 떠나온 고향을 다시 찾은 이의 쓸쓸한 감정이 담겨 있다. 그러나 리듬은 전혀 슬프지 않다.

Lodi Lyrics

Just about a year ago
I set out on the road
Seeking my fame and fortune
Looking for a pot of gold
Things got bad and things got worse
I guess you know the tune
Oh Lord, stuck in Lodi again
꼭 1년 전에 난 길을 떠났어요. 명예와 부, 황금단지를 찾아서 길을 떠났지요. 하지만 사정은 나빠졌고 어려워졌죠. 당신이 그 곡조를 알겠지요. 오, 주여. 난 다시 로다이로 돌아가렵니다.

Rode in on the Greyhound
I´ll be walkin´ out if I go
I was just passin´ through
Must be seven seven months or more
Ran out of time and money
Looks like they took my friend
Oh Lord, stuck in Lodi again
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무대가 있기만 하면 올라갔었죠.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7개월이 넘게 지났어요. 이젠, 세월도 돈도 다 써버렸어요. 오, 주여. 난 다시 로다이로 돌아가렵니다.
 
 
The man from the magazine
Said I was on my way
Somewhere I lost connections
Ran out of songs to play
I came into town a one night stand
Looks like my plans fell through
Oh Lord, stuck in Lodi again
잡지 속의 그 남자, 그게 내 길이었어요. 어디서부턴가 길이 막혔고
노래할 곳은 사라졌어요. 촌구석에서 하룻밤 공연을 할 때 내 꿈은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습니다. 오, 주여. 난 다시 로다이로 돌아가렵니다.

If I only had a dollar
For every song I´ve sung
And every time I had to play
While people sat there drunk
You know, I´d catch the next train
Back to where I live
Oh Lord, stuck in Lodi again
Oh Lord, stuck in Lodi again
달러를 벌기 위해 노래를 불렀죠. 내가 노래를 부르고 연주를 할 때마다 사람들은 항상 취해 있었죠. 당신도 아시죠? 제가 다음행 기차를 타고 내가 살던 곳으로 돌아가리란 것을. 오, 주여. 로다이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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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다이로 가는 길. 포도 재배와 와인생산으로 유명하다. 사진출처=www.lodiwine.com

〈Lodi〉는 CCR의 리더 존 포거티(John Fogerty·1945~)가 만들었다. CCR은 1960년대 후반에서 70년대 초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록 밴드였다. 리더 기타와 노래, 작사·작곡까지 도맡은 존 포거티는 밴드 내 독창적인 우월성을 드러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고집했는데 다른 구성원들과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었다. 팀은 짧고 굵게 반짝이다 해체되고 말았다. 존 포거티는 이후 고향으로 돌아가 10여 년을 은둔하며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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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다이는 존 포거티의 고향이 아니다. 그러나 노래가 히트하면서 시골마을이 유명해졌다. 사진출처=www.lodiwine.com

〈Lodi〉는 전성기 시절인 1969년 만든 노래지만 마치 존 포거티가 자신의 낙향을 예상하고 부른 노래 같다. Lodi는 존 포거티의 고향(미국 캘리포니아주 북쪽 끝에 위치한 버클리(Berkeley))에서 약 70마일(110km) 떨어진 센트럴 밸리(Central Valley)에 있는 작은 시골이다. 그러나 존 포거티가 실제로 이 마을을 찾아가거나 살지는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노래가 히트하면서 Lodi는 존 포거티의 고향으로 널리 알려지게 됐다. 그리고 Tesla, Emmylou Harris, Amy Ray, Shawn Colvin, Tom Jones, Buck Owens, Jeffrey Foucault, The Flying Burrito Brothers, Ronnie Hawkins, Smokie, Dan Penn, Al Wilson, The Blue Aeroplanes, Tim Armstrong, FIDLAR, Freddie King, the Italian band Stormy Six, Bo Diddley, Eric Church 등 많은 컨트리 가수들이 이 노래를 커버해서 불렀다.
 

입력 : 2018.02.16

조회 : 2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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