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탈의 역사'에 이어 양대 공장 폐쇄까지... '비극의 군산' : 월간조선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가 문을 닫은 데 이어 한국GM 군산공장마저 당분간 폐쇄키로 한 가운데 군산 지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전북의 은행권과 한국GM에 부품을 대던 협력업체들도 악재를 맞은 상황이라 이들의 고심도 커지고 있다.

JB전북은행이 한국GM 하청업체에 대출한 금액은 100억 원대

14일 금융권에 따르면 군산 등 전북 지역 여·수신 비중이 58%로 높은 JB전북은행의 경우 한국GM 하청업체에 집행한 대출이 100억 원대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북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규모가 지난해 말 기준 6조4300억 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은 액수지만, 한국GM 군산공장 종업원 2000여 명과 요식업 등 관련 종사자가 1만3000명에 달해 전북을 거점으로 하는 전북은행이 입을 타격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 전에도 전북은행은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2017년)를 비롯해 최근 몇 년간 새만금사업 부진과 태양광업체 OCI 등 군산 지역 대표기업들의 경영 악화로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전북은행의 충당금 전입액 규모는 2014년 658억 원에서 2015년 707억 원, 2016년엔 838억 원까지 늘어난 후 지난해에는 414억 원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북은행의 지난해 순이익이 802억 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규모라고 한다.

한국GM 협력업체에도 피해 갈 듯

한국GM 의존도가 높은 협력사들이 입을 피해도 우려된다. 한국GM에 주요 부품을 납품하는 A사 관계자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수출 물량의 경우에는 해외 공장으로 이전해 생산해 걱정이 덜하지만, 군산공장 폐쇄는 고스란히 내수 물량에 피해가 전가돼 실제 피해액은 5%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3·4차 협력사의 경우 한국GM만 바라보며 납품을 하는 곳이 많다”며 “이런 곳들은 경쟁력을 잃어 도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GM 군산공장 전경.

한국GM에 대한 납품 비중이 높은 협력사들은 이를 대체할 고객 잡기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처지에 놓였다. 현대·기아차도 지난해 실적 부진에 따라 올해 판매 목표를 전년보다 낮춘 데다, 한국GM 군산공장마저 가동을 멈춰 납품량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부품사들은 중국을 포함한 해외 완성차 업체들을 상대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한국GM 군산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지역 노동자들의 주름도 깊게 패고 있다. 우선 한국GM은 계약직을 포함한 2000여 명의 직원들을 구조조정할 뜻을 내비쳤다. 아직 이들에 대한 뚜렷한 대책은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로 1차 직격탄 맞은 군산 경제

준공된 지 7년 만인 지난해 7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도 문을 닫았다. 이로 인해 50개가 넘는 협력업체가 폐업했고 5000명에 가까운 직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노동자들이 떠나면서 상권은 피폐해졌고 부동산 경기도 식었다.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전경.

건립 당시 군산조선소의 위용은 상당했다. 군산시 소룡동 매립지 181만㎡의 부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와 골리앗 크레인을 갖췄다. 도크는 축구장 4배의 크기로, 25만 톤급 선박 4척을 한꺼번에 건조할 수 있는 규모였다. 골리앗 크레인은 한 번에 1650톤, 자동차 400대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부지 매입비 2000억 원과 토목과 건축 설비 공사비 9300억 원 등 모두 1조2000억 원이 투입됐다. 2016년 6월 말 기준으로 사내와 사외 협력업체는 86개, 노동자는 5250여 명에 달했다.

군산조선소의 폐쇄는 2016년부터 공공연하게 거론됐다. 조선업의 불황이 장기화하면서다. 전북과 군산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던 만큼 폐쇄를 막기 위한 지역사회의 노력은 이어졌다. 존치를 호소하는 서명운동에 100만명이 참여했고 송하진 전북지사까지 나서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전 의원의 집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일감 부족과 경영 악화를 이유로 끝내 가동 중단을 결정했다.

요동치는 군산의 지역 민심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에 이어 한국GM 군산공장마저 문을 닫게 되자 지역 민심도 요동치고 있다. 당장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전북과 군산의 민심이 어떻게 반응할지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군산이 지역구인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도 14일 성명을 통해 “지난해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 폐쇄로 인해 50개가 넘는 협력업체가 폐업했고, 관계 근로자 5000여 명이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나앉았다”고 주장했다. 김관영 의원은 “한국GM 군산공장 폐쇄로 대규모 실직이 자명한 만큼 선제적 특별 고용재난지역 선포를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주무부처인 기재부 장관 주재로 범정부 대책팀을 꾸려 대응책 마련에 나서줄 것”을 촉구했다.

'수탈의 역사' 지닌 군산

전북 군산은 일제시대 때 ‘수탈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1899년 5월 개항을 맞이한 군산은 일본이 호남지방에서 생산된 쌀을 수탈해 가는 통로로 활용했다. 외국인 거주지역(조계지·租界地)으로 설정되면서 개항 초기부터 많은 일본인이 거주했다. 그 당시 일본인들이 거주하면서 세워진 일본식 가옥을 비롯해 옛 조선은행 군산지점과 부잔교, 미곡창고 등 170여 채의 근대문화유산 건축물들이 도심 곳곳에 남아 있다.

군산시 신흥동의 일본식 가옥.

군산의 중심지였던 내항 주변의 월명동, 해신동, 중앙동 일대는 급속한 산업화에 따른 도시 팽창으로 1996년 군산시청과 법원 등 관공서들이 조촌동으로 이전하고 상권도 신흥 도심인 나운동과 수송동으로 옮겨가면서 공동화 현상이 빚어졌다. 1980년 5만6700명이던 인구는 원도심의 공동화 현상으로 2010년에는 1만7898명으로 급격히 감소했다.

글=조성호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