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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화

서울역 停電사고와 국가위기관리 시스템

김성동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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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7월 6일 오전, 필자는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가는 8시20분 출발 예정 KTX에 승차해 있었다. 이날 오전 11시에 대구에서 취재원과 만날 약속을 잡아 놓았기 때문이다. 승차 후 좌석 깊숙이 몸을 파묻고 잠을 청하고 있는 필자의 귀에 출발 준비를 알리는 안내방송이 들려왔다.

  안내 방송이 나온 지 불과 1~2분도 안돼서, 또 다른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차량을 점검하고 있으니 안전한 실내에서 잠시 기다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시간은 막 출발 예정 시각을 넘어서고 있었다.

  “승객들의 안전을 위해 열차를 점검하고 있다”는 내용의 방송이 몇 차례 반복된 후 이번에는 “서울역 停電(정전)사고로 인해 KTX를 비롯한 全(전) 열차가 운행을 못하고 있으니 복구될 때까지 잠시만 더 기다려 달라”는 안내방송이 나왔다.

  정전으로 냉방장치가 꺼지면서 열차 객실이 무더워졌다. 일부 승객들이 출입문을 열고 승강장으로 나갔다. 역무원들도 “실내가 더우면 승강장으로 나가서 기다려도 된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그 ‘잠시’가 35분을 넘어설 무렵 안내방송이 나왔다. “경의선 전철역 신촌 부근에서 사고가 발생해 복구하는 데 3시간가량 소요될 것 같으니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해 달라”며 “환불은 매표소에서 해 준다”는 내용이었다.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기 위해 매표소로 향하던 일부 승객들이 역무원들에게 강하게 항의하는 장면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이 피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이냐”가 주된 항의였다.

  필자는 대구에서 만나기로 한 취재원에게 급하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이야기하고 양해를 구했다. 이날 필자가 만나기로 한 취재원은 10년 연속 보험업계의 판매왕을 차지한 분이었다. 그가 올리는 연평균 매출은 200억원이 넘었다. 그에게는 시간이 곧 돈인 것이다. 필자는 본의 아니게 그의 시간과 돈을 빼앗은 셈이 된 것이다. 필자 개인도 시간은 차치하고라도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경제적 손해를 입기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손해를 배상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국가위기관리 시스템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날 사고는 오전 8시16분께 서울 서대문구 지하철 충정로역 인근 재건축 현장에서 공사 중이던 50m 높이의 타워크레인이 경의선 철로로 넘어지면서 서울역까지 정전이 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타워크레인 하나에 끊겨버린 국가대동맥

  이날 사고로 한때 서울역에서 출발하는 모든 열차의 운행이 중단됐고, 월요일 아침 출근길은 큰 혼잡을 빚었다. KTX는 사고 발생 두 시간 만에 일부 열차의 운행이 시작됐고, 새마을호나 무궁화호의 하행선 열차는 밤늦게까지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서울역은 하루 20만명이 이용하는 대한민국 철도의 허브다. 이번에 사고가 난 경의선은 물론이고 경부선, 호남선과 연결된 대한민국 철도의 중심축이다. 대한민국의 동맥이 두 시간 이상 끊어져 있었던 셈이다. 신경망처럼 서로 얽혀 있는 철도의 특성상 사고로 인한 정전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고 치더라도, 복구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또 하나의 문제는 승객들에 대한 거짓말이다. 열차에 탑승하고 있던 승객들은 경의선에서 사고가 발생한 후 35분 이상 동안 왜 서울역에 정전이 됐는지에 대해 알 수 없었다. 열차 안내방송대로 “고객안전을 위해 열차를 점검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승객들은 정확한 정보에서 완전히 차단돼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을 사고 발생 35분 후에야 할 수 있었던 셈이다. 상황을 보고하고 전달하는 조직 시스템에 문제와 일단 상황만 모면하고 보자는 관련 업무 종사자들의 무책임이 빚어낸 결과다.

  만약 戰時(전시)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면 그 혼란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을까. 불순세력들이 그런 혼란을 노리고 철길과 電車線(전차선)에 테러를 가한다면 어떤 혼란이 빚어지게 될까. 경의선에서 타워크레인 하나가 넘어지면서 난 사건으로 국가의 동맥이 수시간 동안 끊겼는데, 불순세력들에 의해 전국 곳곳에서 테러가 자행된다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서울역에서는 지난 2000년 6월에도 정전사고로 열차운행이 40분간 지연되는 사고가 있었다. 경부고속철도 노반 건설작업 중이던 중장비가 선로 옆에 설치된 전선을 잘못 건드려 정전사고를 일으킴으로써 발생한 사고였다. 9년여가 흐른 지금까지 위기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날 환전을 위해 매표소 앞에 서 있을 때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 역무원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여기에 입사한 이후로 이런 사고는 처음이에요.”

  필자는 그 여성 역무원의 미소에 미소로 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도 ‘냉전적 사고’에서 헤어나지 못한 까닭일까. 필자에게는 생각할수록 등골이 오싹해지는 사고였기 때문이다.⊙

입력 : 20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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