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가 물을 싫어한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외모 중시 본능을 원인으로 꼽는다. 전문가들은 이는 부차적 요인일 뿐이며, 주된 이유는 진화적 배경에 있다고 설명한다.

동물 행동학자 크리스틴 비탈레는 집 고양이가 물을 싫어하게 된 근원으로 아프리카 야생들고양이를 꼽았다. 현대 고양이의 조상인 아프리카 야생들고양이(학명 Felis silvestris lybica)는 중동과 아프리카 등지에 서식한다. 이 야생들고양이는 9000년에서 1만 년 전 근동(近東) 지역에서 인간과 가까워지면서 가축화돼 오늘날 고양이(Felis catus)가 됐다.

고양이 조상은 사막 환경에서 살았다. 이 환경에서는 물에 익숙하지 않았고, 물에 젖으면 생존에 위협이 됐다. 고양이는 본능적으로 물을 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자연스러운 혐오감과 학습된 행동이 결합된 것으로 추정한다.

고양이 털 구조도 물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다. 고양이 털은 이중모 구조다. 겉털은 방수 기능이 있지만 속털은 물에 쉽게 젖는다. 젖은 털은 무거워져 활동성을 떨어뜨리고 외부 위협으로부터 방어 능력을 저하시킨다.

젖은 털은 체온을 빼앗거나 포식자에게 더 노출될 수 있다. 물에 젖으면 체온이 떨어질 수 있는데, 이는 일교차가 큰 사막 환경에서 치명적이다. 체온 손실이 털이 젖지 않았을 때보다 빠르기 때문이다.

고양이는 후각이 발달한 동물이다. 사람보다 후각이 약 14배 정도 뛰어나다. 예민한 후각 때문에 수돗물에 담긴 화학 물질 냄새를 싫어할 수 있다. 물에 젖으면 털에 묻은 자신의 냄새와 페로몬이 희석되거나 가려진다. 사냥에 성공하려면 체취를 숨겨야 하는데, 물에 젖으면 이 기능이 손상된다.

고양이는 하루 중 15%를 그루밍에 쓴다. 그루밍은 털을 청결하게 유지하고 냄새를 없애는 행동이다. 고양이 침에는 항균 성분이 있어 그루밍만으로도 몸을 깨끗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물에 젖으면 다시 오랜 시간 그루밍을 해야 하므로 털이 젖는 것을 오염으로 느낄 수 있다.

호랑이나 고기잡이삵, 재규어와 같은 일부 야생 고양이과 동물들은 수영하는 것을 좋아했다. 하지만 아프리카 야생 고양이는 대부분 사막 환경에 서식하며 큰 물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메인쿤, 노르웨이숲고양이, 벵갈 등의 품종은 오히려 물놀이를 좋아하기로 유명하다. 이들은 오랜 시간 주 서식지가 물가나 호수 주변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고양이가 물 자체를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다.

고양이가 목욕을 싫하는 이유를 두고 ‘목욕에 대한 첫 경험’이 나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물에 대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 놀람이 두려움으로 확대된 경우다. 새끼 고양이가 물에 노출되면 물을 더 좋아하게 되는지에 대한 직접적 연구는 없지만, 새끼 고양이를 다양한 경험에 노출시키면 더욱 자신감 있는 어른 고양이로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다.

결론적으로 고양이가 물을 싫어하는 주된 이유는 진화적 배경, 털의 특성, 냄새, 체온 조절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외모를 중시하는 본능은 이러한 요인들에 비해 부차적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