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사진=조선DB
세종 관가에서 이제는 통설처럼 굳어진 말이다. 2023년 행정고시 재경직 수석과 법무행정직 수석, 2024년 재경직 차석이 모두 첫 부처로 공정거래위원회를 선택했다. 2021년과 2022년 재경직 수석 합격자도 공정위를 택했다.
한때 ‘재경직의 본산’으로 불리던 기획재정부는 느린 승진 속도, 경직된 조직문화, 과중한 업무 강도, 낮은 보수 등의 문제로 인기가 급락하고 있다.
일부 기재부 신입 사무관 1년 만에 이탈
기재부의 위기는 수치로 드러난다. 지난해 5급 공채 재경직 수석으로 합격해 기재부에 발령받은 사무관이 서울대 로스쿨에 합격하면서 1년 만에 퇴사할 예정이다. 여기다 기재부 신규 사무관‘들’의 조기 이탈과 로스쿨 진학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전언이 나온다
최근 행정고시 출신 사무관 최대 5명이 서울대 로스쿨에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내부 분위기는 술렁이고 있다. 과장급 인사들의 이탈까지 이어지면서 관가 전반이 충격에 빠졌다.
사무관들이 공직을 떠나는 이유로는 낮은 보수와 비합리적 인사 시스템, 열악한 워라밸이 꼽힌다. 기재부에 입직한 사무관이 과장으로 승진하기까지 짧게는 12년, 길게는 15년이 걸린다. 각종 정부 대책에 관여해야 하는 탓에 밤샘근무와 주말 근무가 일상화돼 있다.
공정위, 유연한 조직문화로 ‘MZ세대의 성지’ 부상
올 하반기 기재부는 조직 개편으로 기능이 축소되며 경제 컨트롤타워로서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산업부 에너지 기능 상당 부분이 기후에너지환경부로 이관되며 내홍을 겪는 가운데, 공정위만 홀로 주목받고 있다.
내년도 예산안에는 공정거래 조사인력 약 150명 증원이 반영됐다. 통상 진보 성향 정부에서 공정위의 권한이 강화되는 경향이 있다.
공정위의 인기 비결은 조직문화다. 직원 각자가 사건을 직접 맡아 처리하는 업무 특성상 개인의 판단과 성향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발달해 있다. 상명하복이 약하고, 심지어 “의전이 너무 약하다”는 말까지 나온다.
전문성 확보도 용이하다. 행정 업무를 폭넓게 다루는 타 부처와 달리, 공정위는 ‘불공정거래’ 분야에 집중돼 있어 해당 분야 전문가로 성장하기에 유리하다. 대기업 및 글로벌 기업의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을 다루는 만큼 업무 전문성을 쌓을 수 있고, 퇴직 후 재취업에도 유리한 ‘실속형 부처’로 평가된다.
이 때문에 최근 젊은 MZ 사무관들 사이에서는 공정위가 ‘세종의 구글’로 불린다.

기재부, 조직문화 개선 나섰지만 한계 여전
기재부도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 ‘체인저스(Changers)’ 6기를 발족해 일하는 방식과 조직문화를 개선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체인저스는 업무환경 혁신 방안을 논의·실천하는 2030세대 직원 모임이다.
그러나 근본적 한계는 뚜렷하다. 세종청사 이전 이후 서울과의 물리적 단절로 인한 업무 효율 저하, 중앙부처 간 협업 어려움 등이 구조적 문제로 남아 있다.
기재부 내부에선 “밤새 정책을 만들고 주말도 없이 일하지만 인정받지 못한다”며 “정부 출범 이후 기재부 기능이 분산되면서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상실했고, 공정위만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니 허탈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또 일부 공무원은 “체인저스 같은 조직문화 개선 시도는 의미 있지만, 세종 이전으로 인한 소외감과 구조적 한계는 쉽게 극복하기 어렵다”고 전해지고 있다.
강력한 권한, 절차적 권리 보장 논란도
공정위는 조사·심의·의결 기능을 함께 가진 준사법적 행정기관이다. 그러나 피조사기업(피심인)의 방어권과 절차적 권리 보장 측면에서 여전히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조사 단계에서 영업비밀 보호와 반대신문권(증인 대질·교차신문권)이 충돌하는 문제가 대표적이다. 조사·심판 기능이 동일 기관 내에 병존하는 구조도 독립성을 약화시킨다는 비판이 있다.
한 로펌 변호사는 “공정위가 조사와 심판을 모두 수행하는 구조에서는 피조사자의 방어권이 실질적으로 제한될 수 있다”며 “영업비밀 보호와 절차적 권리 간 균형을 맞추는 것이 과제”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피심인의 절차적 권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 중이며, 조사와 심판의 분리 필요성도 내부적으로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공정위 45년, 경제기획원 산하 부서에서 장관급 독립기관으로
공정위는 경제기획원 산하 과(1976)로 출발해, 위원회로 개편(1981)된 지 약 44년, 출범 원년(1976) 기준 약 49년이다. 1976년 2월 20일 경제기획원 물가정책국 내 공정거래과로 출발했다. 독립 조직이 아닌 경제기획원 내부 부서에 불과했다.
1981년 4월 1일 공정거래위원회로 개편됐지만 여전히 경제기획원 소속이었다. 위원장 직급은 차관급, 조직은 3심의관·5개 과에 불과했다.
1990년 4월 1일 경제기획원으로부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 사무를 이관받으면서 조직이 확대됐다. 1994년 12월 23일에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이관돼 독립성을 확보했다. 이때 사무처에 총무과, 심판행정과, 정책국, 경쟁국, 조사1·2국 등이 설치됐다.
결정적 전환점은 1996년 3월. 위원장 직급이 차관급에서 장관급으로 격상되면서 공정위는 명실상부한 장관급 중앙행정기관으로 자리 잡았다.
소비자보호 기능 흡수… 위원장 인선의 변화
1999년 5월 24일, 공정위는 산업자원부로부터 방문판매·할부거래 관련 소비자 보호 기능을 이관받았다. 2008년 2월 29일에는 재정경제부로부터 소비자보호 관련 사무를 넘겨받으며 공정거래와 소비자보호를 아우르는 종합 경쟁당국으로 발전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까지는 구 경제기획원 출신 고위관료들이 위원장을 맡았으나, 노무현 정부 이후부터는 경제법·산업조직론·기업지배구조 전공 교수 등 학계 출신 위원장이 다수를 이뤘고, 정재찬 등 관료 출신도 배출됐다.
정권의 재벌정책 성향에 따라 위원장들의 정책 노선이 대조를 이루기도 했다.
재취업 비리 사건 이후… 공정위의 명암
공정위 역사상 가장 큰 오점은 2010년대 중반 불거진 재취업 비리 사건이다.
공정위가 고위 간부 수십 명의 ‘재취업 리스트’를 만들어 대기업에 조직적으로 취업을 알선한 사실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정년을 앞둔 간부를 주요 업무에서 미리 배제하는 ‘경력 세탁’ 정황도 확인됐다.
검찰 수사로 두 전직 수장이 2018년 구속됐고, 2020년 대법에서 각각 집유·실형이 확정됐다. 이후 공정위는 대대적인 인사 쇄신과 내부통제 강화에 나섰다.
이 사건은 공정위 역사에서 가장 뼈아픈 오점으로 기록됐지만, 동시에 제도 개선의 계기가 됐다.
‘세종의 구글’로 변신한 공정위
이후 공정위는 빠르게 위상을 회복했다. 글로벌 경쟁법 전문지 글로벌 컴피티션 리뷰(GCR)는 2023·2024 평가에서 연속으로 ‘매우 우수’를 받았다.
1976년 경제기획원의 한 과(課)로 출발했던 공정위는 45년 만에 젊은 관료들이 가장 선호하는 ‘세종의 구글’로 거듭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