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동덕여자대학교 학생이세요? 페미(‘페미니스트’의 줄임말)세요?”

취재를 하러 서울 성북구 동덕여자대학교(동덕여대)를 찾은 여기자가 들은 말이다. 이들은 동덕여대 정문 앞에서 검은 옷을 입고 시위에 참석하는 학생들을 자신의 핸드폰으로 촬영하고, 수치스러운 말을 걸며 조롱했다. 심지어는 정문 안으로 무력을 사용해 들어가려다 경비원에게 제지를 당하기도 했다. 모두 기자가 정문 앞에서 택시를 기다리는 3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앞에 놓여 있는 근조화환들. 사진=고기정

“학생과의 면담 차일피일 미뤄…소통하려는 태도 없었다”

현재 동덕여자대학교 재학생들은 학교 측의 공학 전환 논의에 반대하며 11일 오후 8시부터 본관을 비롯한 모든 건물을 점거했다. 12일부터는 모든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12일 오전 11시 30분, 동덕여대 총력대응위원회(총학생회‧동아리 ‘사이렌’ 등 포함)는 교내 본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측의 공학 전환 논의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동덕여대 학생들은 “대학 본부는 공학 전환을 즉시 철회하라” “대학 본부는 학교의 주인인 학생 의견을 수렴하라” “비민주적 태도를 보이는 학교는 사과하라” 등의 피케팅 구호를 외쳤다. 이날 시위에는 평일임에도 약 200명 넘는 인원이 참석했다. 

동덕여대 총력대응위원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고기정

동덕여대 총학생회 회장 최현아씨는 “학교 측에서 남녀공학 전환 논의가 있음을 파악했다”라면서 “그런데도 학교 측은 여전히 ‘논의한 바가 없다’는 말로 회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11월 11일 오후 5시에 면담이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일 면담을 하기로 약속되어 있었던 기획처장 등은 회의 등의 핑계를 대며 면담을 미뤘고, 오늘 오전 9시에서야 면담이 진행됐다”라며 “그마저도 소통하려는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됐다”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발언한 사회과학대학 학생회장은 “공학전환 논의는 여자대학 자체를 공격하는 것”이라며 “여대의 목적은 여성의 학문적 성장과 사회 진출을 위해 설립되었는데, 본교 측은 일방적인 논의를 통해 학생들에게 발표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보여주기식 교육만 추구하고 학생들의 목소리를 꾸준히 무시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짚었다.

‘오전에 있던 회의에서는 어떤 논의가 진행되었나’ 라고 묻는 기자의 질문에는 “총력대응위원회의 입장을 전달했고, 대학 본부에서는 ‘논의된 바가 없어서 답변할 게 없다’고 일관하고 있다”고 답했다. ‘서울권 여대끼리 단합하려는 움직임이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비단 공학 전환이 동덕여대에만 닥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서울여대, 덕성여대, 성신여대 등이 적극적으로 연대‧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동 경찰이 ‘임신‧출산’ 발언

앞서 지난 8일 동덕여대가 남녀공학 전환을 논의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재학생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총학생회 측은 필리버스터 등을 준비했으며, “학생 몰래 추진한 공학 전환 결사 반대” “민주동덕 다 죽었다” “여자들이 만만하냐” 등의 메시지가 달린 근조화환이 교내에 설치됐다. 사이렌이 진행한 공학 전환 반대 서명에는 약 22만 명이 참여하는 등 여성의 교육권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동덕여자대학교 백주년 기념관 본 출입구. 사진=고기정

시위 도중 마찰도 있었다. 지난 11일 동덕여대 교내에서 남녀공학 전환을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가 벌어지자,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시위 중인 경찰을 상대로 시위와 관련 없는 임신‧출산 발언을 했다. 영상에 따르면, 경찰은 학생들을 향해 “여러분들 나중에 선생님 되시고, 아기 낳고 육아도 하시면…”이라고 발언했고, 경찰의 말을 들은 학생들은 격분하며 “안 해!” “네가 임신해!” 등 거세게 반발했다.

이에 학생들의 시위를 응원하는 누리꾼들은 해당 경찰의 발언과 관련해 민원 제기를 독려하며 ‘국민 신문고’ ‘경찰 민원포털’ 등 관련 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이 외에도 교내 농성 중인 학생들이 이들을 몰래 촬영하는 남성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23학번인 A씨는 “학교를 점거한 상태였는데, 새벽에 한 남성이 몰래 점거 중인 학생들을 촬영했다”라며 “‘찍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휴대전화 갤러리를 보여 달라고 하니, 안 된다고 하며 거세게 밀쳤다”라고 주장했다.

동덕여대 재학생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는 남성. 사진=동덕여대 재학생 제보 

A씨가 제공한 영상을 보면, 교내에 출입한 한 남성이 학생의 옷깃을 거세게 붙잡는다. 이에 학생이 ‘하지 말라’며 괴로운 듯 몸부림치는 모습이 보인다. A씨는 “저 말고도 시위하는 학생들을 촬영하는 남성들이 너무 많다”며 “학교 측에서 학교의 존립을 위해 공학으로 전환한다는 이야기는 모순이다. 학생들을 너무 큰 위험에 빠지게 했다”라고 비판했다.

“비민주적인 공학 전환…철폐될 때까지 시위 계속할 것”

현재까지 동덕여대를 지지한다는 뜻을 밝힌 여대는 덕성여대, 숭의여대, 광주여대, 성신여대, 한양여대, 숙명여대, 수원여대 등이다. 성신여대 측은 동덕여대와 더불어 12일부터 본격적인 시위를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동덕여대 19학번 재학생인 송세영씨는 “학교 측에서 학생들의 동의 없이 올해부터 6명의 남학생을 입학시켰다”라며 “학교 측에서 공학 추진 결정을 철폐하지 않는 한 학우들이 시위를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덕여대는 올해 신설된 한국어문화전공 과에 남학생 6명을 입학시켰다. ‘동덕여자대학교 재적학생 수’를 포털에 검색하면 타 여대가 여학생 100%라고 나오는 것과 달리, 여학생 99.9%, 남학생 0.1%로 나오는 이유다. 이는 비단 동덕여대만의 문제가 아니다. 성신여대 총학도 국제학부가 올해부터 공학으로 전환된다는 내용을 뒤늦게 발견하여 오늘 11시 학교 트래픽 총공격을 시작으로 시위에 나섰다.

동덕여대는 2018년부터 꾸준히 구설수에 휩싸였다. 2018년에는 한 용역업체 직원이 교내에 침입해 음란 사진을 찍고 가는 등, 이른바 ‘알몸남’ 사건으로 화두에 올랐고, 지난해에는 동덕여대에 재학 중이던 한 학생이 교내 쓰레기 수거 차량에 치여 숨졌다. 당시 총장이었던 김명애씨는 “참담한 심정”이라면서도 총장직선제를 외치는 학생들의 의견을 수용하지 않았다.

교내에 시위 관련 포스터를 붙이던 학생 B씨는 “청소 노동자분들에게 죄송한 심정”이라며 “차후 시위가 끝나면 학생들 모두 청소 노동자분들을 앞장서서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교내 청소노동자 C씨는 “치우는 것은 문제없으니, 학생들이 대학에서 하고 싶은 걸 모두 이뤘으면 좋겠다”라며 학생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동덕여자대학교 본관 앞에 놓인 과 점퍼들. 사진=고기정

한편 교육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남은 4년제 여자대학은 동덕여대, 이화여대 등 7곳이다. 한양여대를 비롯한 전문대를 포함하면 모두 14곳이다. 앞서 상명여대는 1996년 남녀공학으로 전환해 상명대로 바뀌었다. 성심여대는 가톨릭대와 통합했고 대구의 효성여대는 대구가톨릭대와 통합돼 남녀공학이 됐다.

글=고기정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