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정치 실종(失踪) 시대다. 여야 대결은 벼랑 끝으로 치닫고 있고 정치 복원, 민생 복원은 구호에 그치고 있다.

정치가 이처럼 험악해지면, 12월의 날씨처럼 추워지면, 생각나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이만섭(李萬燮, 1932~2015) 전 국회의장이다.

꼭 60년 전인 1963년 정계에 31살 나이로 진출해 8선(選)의 긴 세월을 보냈다. 그리고 두 차례나 국회의장을 역임한, 원조 ‘미스터(Mr.) 쓴소리’ 이만섭 전 의장. 지난 2015년 12월 14일 별세했다.

그는 평생을 의회주의자로 살았다. 여야가 대치할 때 고비고비마다 대화와 타협을 외쳤다. 정계를 은퇴한 뒤에도 소신과 원칙에 따라 곧은 소리를 했다. 사람들은 기꺼이 그의 고언(苦言)에 귀를 기울였다.

이만섭 의장은 생전 “정치와 사랑은 계산하면 안 된다”, “정치는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2017년 국회도서관 국회기록보존소가 공개한 ‘이만섭 의장의 육성록’(국회의장단 구술총서 3편)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정치는 오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순리로 해야 하는 겁니다. 국회가 노상 싸움을 하니까 소통이고 통합이고 됩니까, 안 되지요. 그리고 또 하나는 국회의원들은 모두 내가 속해 있는 당보다 나라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항상 해야 합니다. 내 개인이나 내가 속해 있는 당보다 나라가 중요하다, 국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또한 정치는 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항상 해주길 바랍니다.>

<내 정치 지론이 뭐냐면 정치와 사랑은 계산하면 안 되는 거예요. 사랑을 계산해서 저 여자하고 결혼하면 내가 열쇠 세 개를 얻겠다, 내가 덕을 보겠다 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대개 파경을 맞습니다. 좋으면 무조건적인 사랑을 해야지요. 정치도 내가 이런 발언을 하면 대통령에게 잘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나한테 유리할 것이다, 이런 계산을 해서 한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나는 한평생 정치해도 무슨 계산을 해본 일이 없어요.>

이만섭 전 의장을 지근에서 함께 했던 언론인 안동환 선생은 이런 말로 고인을 추억했다.

“현재 정치권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에 어른이 없다. 어른이 나서서 따가운 이야기를 하면 ‘꼰대’라고 봉변 당하기 일쑤다. 역대 국회의장 중에서 그분만한 어른을 보지 못했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지금 여야 정치권을 보니 더욱 이만섭 의장님이 그립다. 기일을 맞아 해마다 찾아뵈었다. 정치가 실종된 지금, 그가 간절하게 그립다. 그분이 남기신 말씀이 죽비로 내리치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대통령실도, 여야 대표도 그분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