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 1일 사우디아라비아 제다에서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바레인 국왕(왼쪽)을 만나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오른쪽). 사진=사우디 왕실
지난 21일 영국의 중동 전문 매체 《미들 이스트 모니터(MEMO)》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지난달 이스라엘을 비밀 방문했다고 보도했다.
이스라엘 관료는 지난 20일 프랑스 통신사 《AFP》에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지난 9월 이스라엘 텔아비브를 비밀 방문했다고 말했다. 그는 익명을 요구하며 벤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의 논의 내용 뿐 아니라 회담의 성격, 인물들을 공개하는 것을 거부했다.
이스라엘 관료의 증언은 앞서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보도됐었다.
히브리 공식 라디오 방송은 “사우디 왕족이 9월 7일에 이스라엘을 비밀 방문해 이스라엘 고위관료와 앞으로의 지역 평화 현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알렸다.
국수주의·우파 성향 주간지 《마코르 리숀(Makor Rishon)》의 아리엘 카하나(Ariel Kahana) 기자는 트위터에서 “빈 살만이 공식 대표단과 함께 이스라엘을 방문해 관료들을 만났다”고 말했다.
사우디 유명 블로거 무즈타히드(Mujtahid)는 “이스라엘 문제 국제 전문가로 인정받는 노가 타르노폴스키(Noga Tarnopolsky) 기자가 빈 살만의 이스라엘 방문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분석가들과 전문가들은 이스라엘과 사우디는 이란에 대한 공통된 적개심을 바탕으로 관계 진전에 나서고 있다고 분석했다. 최근 이스라엘과 사우디 양국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핵협정을 불인증하고 제재 재개를 논의하는 것을 환영했다.
아유브 카라(Ayoob Kara) 이스라엘 공보처 장관은 “이란에 대한 공포를 가진 많은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과 연대를 맺기 시작했다”며 “대부분의 걸프 지역 국가들은 이스라엘이 아닌 이란에 위협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이스라엘과 사우디 수니파 동맹국 간의 관계는 중동에서 민감한 문제이기에 비공식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소식이 알려지자 중동 전문가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개인 SNS에 “사우디의 왕세자가 직접 이스라엘을 방문한 것이 사실이라면 중동의 판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인 교수는 “이는 기존의 피아(彼我) 진영의 구조가 허물어지는 것으로 아랍-이슬람권이 그들의 주적이던 이스라엘과 손을 잡는 믿기 힘든 일”이라며 “서구 문명 대 이슬람 문명의 대결이라는 헌팅턴의 테제도 흐뜨러지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 교수는 “빈 살만 왕세자는 유력한 왕위 계승자"라며 “이스라엘과의 연대는 국내 뿐 아니라 전 아랍권에서 반발을 불러올 것임에도 이를 감수하고 추진한다면 기존의 사우디와는 완전히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빈 살만 왕세자가 왕위에 오른다면 완벽한 정교 일치를 추구했던 기존 사우디 이슬람의 보수성을 탈피하고자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 교수는 “권력 내부에서는 보수 성향의 왕자들과 와하비스트 성직자들의 저항이 만만치 않고 국·내외의 상황도 좋지 않다”며 “이 험난한 상황을 서른한살의 왕자가 극복하고 왕위 승계에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빈 살만 왕세자의 운명이 중동의 판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평가했다.
글=김성훈 월간조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