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1일 서울 종로에서 전여옥 전 의원을 만났다. 김소연 변호사, 오세라비 작가와 함께한 ‘굿바이 청년정치’ 대담 자리에서다. 이날 이들은 ‘이준석’으로 대표되는 작금의 청년정치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전 전 의원은 “청년 정치인들은 정치판에서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니즈를 너무 쉽게 얻었다”면서 “그래서 노회함과 영악함, 꼼수부터 먼저 배웠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정치적 촉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이들 스스로를 처벌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그래야 ‘굿바이 청년정치’ 이후 ‘웰컴 청년정치’가 있다”고 했다. 

전 전 의원은 이날 이준석 전 대표와의 첫 만남 비하인드도 털어놨다. 

“이준석을 처음 만난 건 박근혜 전 대통령이 후보이던 2011년 1월 무렵이다. 이준석과 TV 프로그램을 같이 했다. 당시 MC가 이준석에게 “전여옥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는데, “배신자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호기롭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송 이후 이준석이 나에게 90도로 인사하면서 “의원님, 밥 한번 사주세요”하더라. 3선 의원도 이렇게는 안 한다.”

대담이 끝난 후 그를 약 10분가량 짧게 인터뷰했다. 

― 정치라는 게 원래 앞에서 싸우고 뒤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협상하는 것 아닌가. 그런 차원에서 이 전 대표는 정치를 잘 하는 것 같은데.

“그런 행동은 정치가 아니라 야합이다. 정치는 국민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가는 거다. 반듯하게 정치하려 했다가 잊힌 여러 정치인들이 있다. 이준석처럼 야합하지 않고,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스스로 끊어내면서까지 나라와 국민들,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했던 수많은 정치인들이 있다. 이준석이 하는 정치야말로 어떻게 보면 최악의 정치고, 서툰 정치고, 뭘 모르는 무식한 정치다.” 

“이재명 물러나도 개딸당은 생존할 것”

그는 “이는 결국 기성 정치인의 문제”라고 했다.

“청년 정치인들에게 영양가를 보충해주고, 때로는 야단도 치며 잘 키워야 하는데, 키우기도 전에 영계마냥 잡아먹으려 하는 기성 정치인들이 문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준석 영입을 봐라. 청년이면 푸르름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회함과 영악함과 정치 꼼수부터 먼저 배웠다. 정상적인 루트에서 차근차근 배우는 것은 고되지만 꼼수는 쉽다. 이들은 정치판에서 ‘청년’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니즈를 너무 쉽게 얻었다.”

전 전 의원은 이어 “욕심을 버리지 않는 다선 정치인도 너무 많다”면서 “처음 하는 사람들의 장점이 돋보이는 곳이 정치”라고도 했다. 

“정동영, 박지원 전 의원 등을 보면, 계속 나온다. 물러설 줄 알아야 한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별의 시기를 스스로 정할 줄 아는 거다. 그런 면에서 홍준표 시장도 자유롭지 않다. 대선 두 번 나왔으면 됐지, 대구시장은 왜 나왔나. 개인적으로 귀여운 면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더 이상 귀여워 보이지 않는다. 어디 가서 낚시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건가. 그런 면에서 보면 손학규 전 지사가 낫다.” 

―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그 말대로라면 중진들이 다 빠진 곳에 ‘처럼회’ 같은 초선들만 남을 텐데.

“처럼회도 그때가면 심판 받지 않겠나. 무엇보다 민주당은 현재의 시스템으로 갈 수가 없다. 좀 더 극단으로 갈 수도 있지만 이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정치에서 ‘뉴 페이스(New Face)’는 언제나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아마 민주당에서는 분칠을 하고 ‘나는 당신이 못 보던 사람입니다’는 식으로 나올 가능성도 있고, 동시에 새로운 인물도 많이 영입할 거다. 국민의힘도 이에 상승하는 새롭고, 참신하고, 겉멋 들지 않은 청년정치인, 여성정치인을 많이 선별해서 내세울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정치에서 뭔가 새롭다, 물갈이한다고 느끼는 건 결국 인물이다. 아주 냉정하게 얘기해서 윤석열 대통령이 왜 당선됐겠나. 새 인물이기 때문이다. 써보지 않은 ‘신상’이 기대치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점을 다음 총선에서 잊어서는 안 된다.”

―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체제로 총선을 치르지 않을 거라는 분석도 있던데.

“그 체제로 총선을 치르지 않더라도 이재명의 ‘개딸당’은 총선에서 반드시 생존할 거다. 국민의힘은 대응을 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청년정치의 구태를 벗어나는 게 급선무다. 이제껏 이준석이라는 인물이 청년정치의 모델이 됐던 건, 이 시장에서 그가 희소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이아몬드도 마찬가지잖나. 근데 이제 다이아몬드도 대량 생산체계에 들어간다. (청년정치도) 그렇게 하면 된다.”

― 제 3지대 신당에 대한 견해는.

“‘떴다방’ 같은 거라고 본다. 월세방 얻어놓고 ‘올 테면 와라’ 이런 느낌.” 

“박근혜 저격, 정치인생 중 가장 잘한 일”

그는 지난 8월 14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사람이 잘못을 하면 거기에 적당한 형량을 받아야 하는데 김건희 여사는 자신이 한 것에 비해 너무 가혹하게 받는다고 느꼈다”면서 “한 여성을 발가벗겨 광화문 네거리에 놓고 짱돌을 던지는 셈”이라고 했다. 

― 김건희 여사에게 짱돌을 던진다는 표현을 썼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전여옥에게 짱돌을 맞은 셈 아닌지.

“나는 무능한 사람을 싫어한다. 이게 내 한계일지도 모른다. 무능하더라도 감싸는 게 진짜 정치인이지만, 나라를 위해서는 냉혹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유능했다. 그러나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은 무능했다. 그런 지도자가 대통령이 되면, 피해는 국민이 받는다. 그게 걱정됐다. 나는 박 전 대통령을 배신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국민을 배신하진 않았다.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진대도 그렇게 할 거다. 잘했다고 생각한다. 내 정치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다.”

― 영부인은 유‧무능을 구별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긴 하다. 

“김건희 여사는 정치인이 아니다. 대통령의 배우자일 뿐이고, 영부인은 공식적 직함도 아니다. 왜 그리 부당한 대우를 받아야 하나 싶다. 결혼 10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잘 살고 있고, 남편을 위해 그 비싼 아파트도 팔았지 않나. 굉장히 충실하고, 훌륭한 부인 아닌가. 그런데 이들의 결혼생활에 왜들 이리 왈가왈부하는지 모르겠다. 김 여사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다만 강아지 입양도 좋지만, 좀 더 어두운 곳의 힘든 사람들, 가령 보육원에서 나와 18살이라는 나이에 단돈 500만원으로 이 사회에 던져지는 자립청소년들의 친구가 돼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입양은 쉽지 않다. 나도 못 하는 걸 남에게 권할 수는 없다. 다만 친구는 돼 줄 수 있을 거다. 남은 4년 동안 김건희 여사가 자립 청소년들의 친구가 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일본은 없다》 출판 당시 日에 열등감 

전여옥 전 의원은 19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KBS 도쿄특파원을 거쳐 2004년 한나라당 대변인으로 정치에 입문했다. 17대, 18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일본은 없다》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돼라》 《오만과 무능》 《산다는 것은 1%의 기적》 등 여러 저서를 출간했다. 지금은 ‘전여옥 TV’를 운영한다.

― 《일본은 없다》 작가이자 외교통일위 간사 출신으로서 윤석열 대통령의 대일 외교는 어떻게 보는지.

“훌륭하다. 그간 일본, 미국 정치인들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경색된 한일 관계였다. 그에 따른 이득은 북한과 중국이 봤고. 그런 점에서 윤 대통령이 먼저 일본에 과감하고 결단력 있게 손 내민 것은 우리 정치사에 두고두고 남을 일이다. 서양인들이 아시아에 와서 놀라는 게 한국인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이 북한이 아니라 일본이라는 거다. 참 어리석은 일이다. 역사적으로 한일관계는 좋았던 시기가 더 길다. 임진왜란과 강점기는 양국 모두에 굉장한 손해였다. 일본 또한 한국을 강점하지 않고 좋은 이웃이 됐다면 히로시마, 나가사키 비극(원폭)도 분명히 없었을 거다.”

― 일본 비판서였던 《일본은 없다》의 시각을 더 이상 견지하지 않는 건지.

“그땐 내가 일본에 열등감을 갖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당시만 하더라도 ‘30년이 지나도 우리는 일본을 쫓아가지 못한다’ ‘우리는 일본에게 30년이나 뒤떨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때 ‘우리가 배워야 할 일본은 없다’고 말한 건, 어떻게 보면 오만한 얘기기도 했지만, 우리가 좀 다른 방식으로 일본을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지금과는 하늘과 땅 차이인 셈이다. 살아생전 이렇게 빨리 일본을 앞선 한국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기쁘고 자랑스럽다.”

― 대통령이 자유총연맹창립기념식과 광복절 축사에서 언급한 ‘반국가세력’이라는 단어는 어떻게 보는지. 정제된 언어였으면, 하는 아쉬움도 나오는데.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솔직해야 한다. 국민들이 정치를 어떻게 속속들이 알 수 있겠나. 그러니 알기 쉽게, 뚜렷하고 깔끔하게 얘기해야 한다. 이런 말도 있더라. 대통령이 ‘자유’를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우리는 자유와 시장을 갖고 여기까지 온 나라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를 매우 쉽게, 명확하게 얘기하는 거다. 나도 처음에는 윤 대통령이 진짜 보수 우파인지 의심했다. 그런데 지금은 윤 대통령이야 말로 아버님 교육을 통해 자유와 시장의 가치를, 모태가 아니라 부태(父胎)한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기쁘고 다행스럽고, 안심된다.”

투병 통해 삶 느끼고, 배워

그는 2년 전 겨울 대장암 4기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이미 간으로 전이돼 수술이 불가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투병 사실은 지난 5월에 밝혔다. 

― 겉으로 보기에 투병생활 중인 게 믿기지 않는데. 

“지금 사실 상당히 힘들다. 곧 쓰러질 것 같은데, 후배 기자라 최대한 정성껏 답하고 있다. 기자는 참 좋은 직업이다.(웃음)”

― 투병 이후 새롭게 깨달은 삶의 가치가 있다면.

“무언가 풍족하다고 해서, 가령 돈이 많다고, 권력을 쥐었다고 해서 행복한 건 아닌 것처럼 오래 산다고 해서 꼭 그 인생이 빛나는 건 아니다. 짧아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삶이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 오늘 만난 사람을 또 다시 만난다는 기약이 없기 때문에, 그 절박함 속에서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정성을 다 하게 되는 것도 수확이다. 실제로 투병 중에 내 인생에서 만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소울 프렌드(Soul Friend)’도 만났다. 행복하다. 이 병을 통해서 삶을 느끼고, 또 배운다.”    

글=박지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