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새만금에서 진행중인 제25회 세계잼버리가 만신창이가 됐다. 4만여명이 참가하는 잼버리에서 영국과 미국은 참가자 수천명을 철수시켰다. 무더위로 인한 온열질환 속출과 부실한 식단, 위생문제 등 총체적 난국이다. 열악한 상황이 알려지면서 상당부분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조기폐회 논란까지 나왔다. 

세계잼버리는 세계스카우트연맹이 주최하는 세계 스카우트 멤버들의 합동야영대회로 1921년 시작된 유서깊은 대회이며 4년마다 열린다. 한국은 1991년 8월 제17회 세계잼버리를 강원 고성에서 개최한 바 있다. 당시 1만9000여명이 참가했고, 스웨덴 국왕 칼16세 구스타프, 모로코 몰레이 라시드 왕자 등이 스카우트 대원으로 참가했다. 대기업들이 후원에 나섰고, 개회식과 폐회식을 TV에서 생중계할 정도로 정부가 공을 들인 행사였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1991년 8월 강원도 고성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잼버리. 사진=KTV 유튜브 캡쳐 

이는 노태우정부가 1988년 서울올림픽 후 또다른 국제대회를 개최해 국위선양에 나서겠다는 취지로 대회 유치에 나서 성공한 사례다. 당시 정부 차원에서 행사를 전폭적으로 지원하게 된 이유는 또 있다. '실세'였던 박철언 체육청소년부 장관이 총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박 장관은 성공적인 대회 개최를 위해 관련 시설 건설은 물론 도로와 교통, 통신 인프라를 집중 지원했다. 

한국의 세계잼버리 운영능력은 왜 32년 전에 비해 크게 후퇴했을까. 이번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장소선정이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1991년 잼버리 장소는 한여름에 다른 지역보다 기온이 낮고 산이 많은 강원도 고성이었다. 2023년 잼버리는 그늘 한 점 없는 간척지 새만금에서 열린다. 당시 정부와 전북도 등이 행사 유치를 위해 무리수를 뒀다는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2023년 세계잼버리 장소가 결정된 것은 2017년 8월, 문재인대통령 시절이다. 당시 유치단은 전북도, 여성가족부, 외교부 등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유치에 나섰다. 호남지역에 세계대회를 열어 지역발전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뜻과 사업이 지지부진하던 새만금을 홍보하고 발전시키겠다는 지역 정치인들의 뜻이 고스란히 읽혔다.   

애초 "굳이 호남에서 유치하려면 무주 등 지리산 인근이 적절하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결국  정치적인 이유로 새만금으로 쏠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여름에 청소년들이 야외에서 캠핑을 한다는 대회 취지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일본이 간척지에서 세계잼버리를 치렀던 사례가 있는 만큼 대회 유치 후 대대적으로 투자를 했다면, 적어도 예정된 예산이라도 제대로 썼다면 지금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치 후 5년간 준비된 것은 거의 없었다. 

여전히 여야는 '남 탓'이다. 지금이라도 대회 유치 주체와 당시 상황을 밝혀내야 하고, 그들에게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다면 정치적 책임도 져야 한다.  물론 아무리 전 정부에서 유치하고 진행해 온 행사라 해도 행사를 무책임하게 치른 현 정부도 책임이 크다. 전 정부 탓으로 돌릴 때가 아니다. 1991년 세계잼버리 당시 박철언 전 장관은 이를 대권 도전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뜻이 있었고 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어떤 행동이든 정치적 의도에서 시작했다면 그만큼 책임도 지면 될 일이다. 언젠가부터 우리 정치에 '책임'이 사라졌다.          

글=권세진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