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시행 5년… “말기환자로 확대” “생명 경시 우려” : 월간조선

2025년 대한민국 국민 5명 중 1명은 65세 이상이 된다. 전체인구의 20.6%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의 고령(만 65세 이상) 인구는 901만8000명이었다. 전체 인구 가운데 고령 인구 비율은 17.5%였다.

고령인구 비중이 2040년 34.4% → 2050년 40.1% → 2060년 43.8% → 2070년 46.4%로 50년 뒤에는 인구 2명 중 한 명이 노인이다.

노인들은 누구나 ‘아름다운 죽음’, 웰 다잉을 꿈꾼다. 보건복지부 노인실태조사(2020년)에서 65세 이상 노인 중에 ‘스스로 정리하는 임종을 좋은 죽음’이라 답한 이가 89.0%였다고 한다. 스스로 택한 자기결정권의 죽음이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무리인 것이다.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죽음을 잘 결정할 수 있을까. 연명의료결정법 시행도 5년이 지났다.

연명의료결정법은 생애 말기 존엄한 삶과 죽음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 최초의 법률이다. 지금까지 4차 개정이 이뤄졌다.

현재 연명의료란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에게 하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착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및 그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로 치료효과 없이 임종과정의 기간만을 연장하는 것을 말한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의학적 시술은 ▲체외생명유지술(ECLS) ▲수혈 ▲혈압 상승제 투여 등이다.

다만, 남용을 우려해 연명의료 결정을 임종기에 한정하고 있다.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말기환자가 본인의 의사로 자신의 삶을 종결할 수 있는 권리는 아직 인정되지 않고 있다.

작년 5월 조력존엄사법안(의사조력자살)을 발의한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은 “극심한 통증과 괴로움을 호소하는 말기환자에게 고통을 마냥 감내하라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며 “준비된 죽음, 품위 있는 죽음을 개인 스스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환자의 자기결정을 존중하는 것임과 동시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력존엄사법안은 수용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는 말기환자가 원하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삶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다.

웰 다잉 단체협의회 운영위원장인 서울대 사회학과 서이종 교수는 작년 12월 21일 ‘국회 존엄한 삶을 위한 웰 다잉 연구회’ 주최 토론회에서 “임종기가 아닌 말기환자로 확대해 말기부터 임종기에 이르기까지 그 질환의 진행과 특성에 따라 절차적 결정을 하도록 하는 것이 좀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말기상황에 대한 의료인의 설명의무를 부여하면 말기환자가 자신의 생애말기 존엄한 삶과 죽음의 가치에 따라 의료인과 상의하면서 함께 말기에서부터 임종기에 이르는 과정에서 연명의료를 결정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논란도 있다. 생명 경시 사회 풍조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말기환자의 남은 삶을 인위적으로 단축시키려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 경제적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강요하는 사회적 타살 위험도 상존한다. 가뜩이나 우리나라 OECD 국가 중 자살율이 최고이다. 이 법이 자칫 자살 증가 가능성을 열어둘 수 있다.

또 ‘미끄러운 언덕’의 논리에 따라 치매나 정신질환자 등 말기환자의 문턱을 넘어서는 대상자 확대의 현실적 위험이 존재한다.

최근 3년간(2018년 2월부터 2021년 2월까지) 서울대병원에서 의료기관윤리위원회의 임상윤리 지원 서비스를 받고 숨진 환자 6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인 56.1%가 60세 이상 고령 환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별로는 70대가 22.8%로 가장 많았다. 사회경제적 수준에서는 저소득층(47.4%)과 의료급여 환자(21.1%)가 상대적으로 많았다. 생애말기의 가난한 노인들이 스스로 죽음을 택하고 있는 셈이다.

윤영호 서울대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지난 7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에서 “국가는 품위있는 삶과 죽음을 공동체적으로 돌볼 책임이 있다”면서 “규제 중심의 연명의료결정과 ‘협의의 웰 다잉’(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결정)에서 벗어나 국가적 차원에서 ‘광의의 웰다잉’(호스피스·연명의료 결정 확대·독거노인 공동 부양 등)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대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윤영호 교수는 앞서 작년 8월 24일 국회 조력존엄사 토론회에서 “국민 누구나 웰 다잉을 위한 사전돌봄 계획을 준비할 수 있는 3번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제공해야 한다”며 “건강할 때, 중증질환 진단 때, 말기질환 진단 때 등 3번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연명의료 계획서 작성에 대해 국가가 건강보험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효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은 지난 7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토론회에 나와 “우리나라 의료보험 제도나 사회적 안전망이 실질적으로 조력자살 오남용 방지할 수 있을 정도로 갖춰져 있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독일처럼 특정 시기에 한정하지 않고 조력자살을 가능하게 하는 것보다 제도가 완비될 때까지라도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말기환자에 한해 조력자살을 택할 수 있도록 법제화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웰 다잉을 위해선 거점 대도시의 급성기 병원이 아니라 지역사회 중심의 만성질환 요양병원 및 호스피스 시설 등을 확충해 체계적인 생애말기 의료 및 돌봄 체계로 운영되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전(事前)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140만명

훗날 병세가 악화되어 회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혀 두는 서류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고 한다. 용어는 마치 연명의료를 하겠다는 뜻이지만 실상은 반대다. 연명 치료를 안 하겠다는 데 동의한다는 문서다.

현재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가 14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또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은 2018년 291곳에서 2022년 612곳으로 늘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