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점 하늘 김환기” 전시회를 다녀오다 : 월간조선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 김환기 전시회에 다녀왔다. 용인에 있는 호암미술관이 1년간의 공사를 거쳐 재개관하면서 김환기라는 한국미술의 선구자를 선택한 탁월한 행사라는 지인의 추천이 있었다.

‘한 점 하늘 김환기’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회에서는 김환기 화백이 1913년 전남 신안군의 작은 섬, 안좌도에서 태어나 일제시대 동경유학, 파리체류 작품활동, 브라질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 등의 과정을 거쳐 뉴욕 체류 활동 중 61세 사망 때 까지 김환기가 예술적 고뇌 속에서 잉태한 화풍의 변화와 생각들을 보여주는 많은 자료들을 전시해 놓았다.

김환기는 항아리, 달, 산, 새, 나무 등 한국 전통예술 그중 특히 항아리에 집중하며 자연을 주제로 하여 구상, 비구상으로 출발, 뉴욕에서 사망할 때 도달한 점·선·면을 활용한 추상화로 정점을 찍고 아쉽게도 그의 예술여정의 막을 내린다. 좀 더 생존하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전시 기획자는 김환기의 120개 작품을 이러한 일련의 흐름에 따라 섬세하게 배치했다. 거기에다 김환기의 서정주, 김광섭 등 당대의 문인들과의 교류와 친지들과 주고받은 서간문, 사상계·문예지 등에 수록된 기고문들을 전시작품 사이사이 배치하여 그의 끝없는 예술에 대한 천착 과정을 보여주었다.

평소 거장의 그림 전시회를 자주 찾지 않았고 여전히 그림에 대한 감수성과 변별력이 변변치 못한 나로서는 처음에 그림이 주는 감동보다는 그의 기고문과 편지를 통해 보여주는 예술에 대한 강렬한 그의 의식을 느끼면서 그의 그림보다 그의 글에 더 집착하여 들여다 보았다. 전시장에 함께 온 아내는 그림을 보러 왔는지 김기환의 글을 보러 왔는지 모르겠다는 핀잔까지 주었다. 하지만 김기환의 치열한 예술활동 중에 간간히 내 비친 그의 글들을 통해 전해 오는 감동으로 먼저 세례를 받고 다시 전시 그림들을 보니 그 그림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120개의 작품을 배치하고 그의 생각과 느낌을 동시에 볼 수 있는 문건들을 적절하게 배치한 전시 기획자의 탁월한 아이디어가 미술에 대한 특별한 조예가 없는 사람에게 까지 감동을 주도록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에서 활동을 하면서 완성한 푸른색 전면점화 ‘우주’라는 작품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 132억원에 낙찰되었고 보통 6~70억의 낙찰가를 보인 명품 대작이 120개였으니 도합 7~8천억원의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는 셈이 되었다.

김환기는 서울대와 홍익대 교수라는 편한 사회적 위치를 박차고1956년 불혹을 넘긴 나이에 파리로 달려가 당시 피카소, 루오, 마티스를 비롯한 서양 대가들과 호흡을 함께하였다. 파리를 다녀 온 후에 역시 홍익대학교 미술대 학장 등 그럴 듯한 직책 모두를 뒤로 하고 1963년 뉴욕으로 떠나 가난한 화가로서 작품 활동을 한 예술가의 모습에서 그리고 61세라는 길지 않은 삶을 마무리한 인생역정에서 그의 예술을 위한 끊임없는 도전에 구도자적 면모까지 느꼈다.

‘지중해 푸른 물도 동해의 청정한 푸름에 비할 바 못된다.’는 김환기의 편지글에 나 자신이 너무도 깜짝 놀랐다. 내가 미국 유학중 1996년 여름방학을 맞아 근 1달간 유럽을 배낭 메고 유랑할 때 이태리에서 본 지중해나 도버해협을 건너며 바라본 대서양이나 심지어 샌프란시스코에서 본 미국의 서태평양도 동해 바다의 청정한 푸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똑같이 70여 년 전 김환기 화백이 느꼈다는 것에 신기함을 느꼈다.

1970년대 뉴욕에서 활동할 때 푸른 색의 전면점화를 많이 그린 것은 그의 고향 신안군 섬에서 유년시절에 함께한 바다와 고국의 청정한 동해바다의 푸름이 밑바탕에 깔려 있지 않나 생각해 보았다.

“나는 동양 사람이요, 한국 사람이다. 내가 아무리 비약하고 변모하더라도 내 이상의 것을 할 수 없다. 내 그림은 동양 사람의 그림이요, 철두철미한 한국 사람의 그림일 수밖에 없다 세계적이려면 가장 민족적이어야 하지 않을까? 예술이란 강렬한 민족의 노래인 것 같다. 우리들은 우리의 것을 들고 나갈 수밖에 없다. 우리 것이 아닌 그것은 모방 아니면 복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파리에서 1961년 사상계 9월호)

“코르뷔제의 건축이나 정원에다 우리 이조자기를 놓고 보면 얼마나 어울리겠소, 코르뷔제의 예술이 새롭듯이 이조자기 역시 아직도 새롭거든, 우리의 고전에 속하는 공예가 아직도 현대미술의 전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이것은 크나큰 사실입니다. 어디 이조공예만 끌리겠소, 까마득한 고구려의 벽실(벽화), 이것 역시 대단한 문제이거든, 우리들은 이러한 것을 들고 나서야 할 것 같소.....”(파리에서 , 신천지 1953년 6월호) *코르뷔제 :스위스 태생의 당시 유명한 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