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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Room Exclusive

욱일기 함정 입항했다고 호들갑 떨 일인가?

김석규  한반도안보전략연구원고문, 행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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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9일 오전 부산 남구 해군작전기지에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함이 욱일기의 일종인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 정박해 있다. 사진=조선DB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 하마기리함이 국제 관례에 따라 일본 해군기인 욱일기를 게양하고 우리가 개최하는 다국적 해양차단훈련이스턴 엔데버23’에 참가하기 위해 지난 달 529일 부산 해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이번 하마기리함 입항에 대하여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일본의 식민 지배에 면죄부를 준 것도 부족해 일본의 군국주의마저 눈감아 주려 하느냐면서 윤석열 정부는 오늘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았다고 비판했다.

 

욱일기 함정입항·영부인 군복 난리, 지겨운 내로남불

 

더불어 민주당의 주장과 달리 군함이 외국에 입항할 때 자국 국기와 군기를 다는 것은 국제관례이고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에서도 욱일기를 단 일본함정이 입항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자 더불어 민주당은 난처한 입장에 처하고 말았다.

 

또한 금년 115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중동에 파병중인 아크부대를 방문하면서 군복을 착용하였다고 해서 대통령 노릇을 한다.”“영부인이 군복을 입고 가시는 것은 본적이 없다라면서 야권에서 비난을 하다가 문재인 대통령 재임시 김정숙 여사가 아크부대를 찾을 때 군복을 입고 명찰까지 단 사례를 제시하자 역시 할 말 못하고 수그러들고 말았다.

 

어린애들 장난도 아니고 어떻게 하든지 집권 대통령과 배우자에 대한 악의적인 선동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 이런 행태는 이제 버려야 한다.

 

 

나찌는 히틀러가 제작, 일장기·욱일기는 메이지유신 전후 제작

 

욱일기는 붉은 해에서 햇살이 확산되는 문양을 갖고 있으며 이것을 일본에서는 일족문양이라 하고 1870515일 일본 육군이 창설되면서 군기로 법제화되었고 1889년 해군 역시 붉은 원을 약간 왼쪽으로 옮겨서 군함기로 제정했다. 메이지 유신보다 8년 앞선 1860년부터 일장기가 관행적으로 일본 국기의 기능을 한 이래 그 후 일장기와 욱일기는 일본 군국주의 상징물로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945년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해 육군과 해군이 해체되면서 욱일기 사용은 중지되었다가 1954년 육상자위대를 창설하면서 욱일기를 자위대기로 재사용하였고 같은 해 창설된 해상자위대 역시 과거 군함기를 그대로 제정하여 사용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의 같은 전범국가인 독일은 히틀러가 나찌하켄크로이츠를 창안하여 독일 국기로 사용하였다. 패전 후 나찌 정치세력이 전승 연합국과 함께 정권을 잡고 인종청소 등 전범과 관련된 하켄크로이츠를 포함한 일체 나찌 상징물을 금지하고 과거 바이마르 공화국 때 흑적금 삼색기를 국기로 정하게 되었으며 히틀러를 비롯 전범들은 사형 등 사법처리가 된 역사적 사실이 있다. 물론 전쟁범죄 미 청산과 배상문제에 대한 일부 불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전쟁 쌍방은 그 상처를 치유하며 오늘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함께 동반성장을 해오고 있다.

 

일본은 독일과는 조금 결이 다른 과정을 거쳐 왔다. 물론 일본의 패전 후 도죠 히데키를 비롯 전범들에 대한 재판과 사형 등 사법처리가 있었지만 일본군 통수권자로서 전범책임이 누구보다 적지 않은 히로히토 일본 왕에 대해서는 면죄부가 주어지고 말았다. 그것은 전후 일본을 신속하게 복구하고 정상적인 국가로 작동시켜 소련의 공산주의 팽창에 대한 방어가 긴급했던 미국과 자유진영 입장에서 천황제를 유지하여 일본국민들을 안정화시켜야 하는 절실한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독일이 나찌 자유민주정부가 나찌를 금지하였던 것과 달리 일본은 전쟁내각은 무너져도 천황제가 유지되어 그 세력들이 정권을 잡게 되었고 자위대가 창설되며 욱일기도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이다.

 

일제 규탄과 욱일기 문제는 구별해야 할 때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면 한 나라가 패망하고 제국주의 야욕에 잡아 먹혀 식민지로 지배받는 것은 피지배국민으로서는 치욕스럽고 고통스러운 일이다. 나 자신도 선조부께서 일제 말기에 해방덕분에 짧은 기간이었지만 강제징용으로 곤욕을 치르셨던 아픔이 있다. 또한 안동 유림의 수령이셨던 처 고조부이신 향산 이만도 선생께서는 을사의병장으로 항쟁타가 결국 한일합방의 치욕을 당하시면서 24일간의 단식 순국으로 일제에 항거하셨고 그 후 증조부이신 이중업 선생의 파리장서운동, 조부이신 이종흠 선생의 독립자금후원 등 안동 유림3대를 이은 찬란한 독립운동이 이어 졌었다. 그래서 이에 대한 경탄과 존경과 함께 처가인 안동 유림 퇴계 후손 집안 전체가 받은 고통과 그 당시 일제 압제에 치를 떨지 않을 수 없는 입장에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보면 일제 식민시대에 사용했다고 해서 지금 욱일기에 대한 입항금지 등 극단적 혐오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최고의 전범지휘 책임이 있던 히로히토 일왕과 전두환, 김대중 역대 대통령과의 만찬회동 건배행위를 해서도 안되었고 주한 일본 대사관의 일장기까지도 지금 국내에 사용하지 말아야한다. 과연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인가? 상식적으로 되지 않는 이야기가 되고 만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되 强者의 역사를 우리가 쓰도록 하자

 

이제 냉정함을 잃지 않으면서 일본과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선린 이웃으로서 국제관례를 존중하며 한··일과 인도태평양 여러 나라들과 협조를 통해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북··러의 도전에 적극 대처하는 것이 먼저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의 치욕적인 역사를 학술적으로 더욱 철저히 검증하고 발굴하여 후세들에게 경계 삼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와 동시에 비록 일본이 여러 차례 사과를 하였지만 미흡하다고 생각하면 문화와 역사연구 활동으로 그러한 역사의 진실과 정의로운 판단들을 일본과 세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긴 호흡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 밑바탕이 되는 문화, 경제, 학술 등 여러 분야의 우리 국력을 더욱 키워나가야 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전쟁과 가난에 찌든 나라에서 우리는 단시간에 선진국의 반열에 올라온 경험을 가진 나라이다. 대한민국의 국운은 상승기이다. 역사는 강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우리 스스로 원하는 대로 기록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입력 : 2023.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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