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메인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NewsRoom Exclusive

이승만의 '정읍 선언' 학술 세미나 개최

"정읍 선언은 새로운 통일을 위한 선언"

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gasout@chosun.com

  • 트위터
  • 페이스북
  • 기사목록
  • 프린트하기
  • 글자 크게
  • 글자 작게
한국전쟁 당시의 이승만 전 대통령(왼쪽)과 백선엽 장군 사진=조선DB

우남네트워크(상임대표 신철식)가 23일 오후 2시 30분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6·3 정읍 선언 77주년을 기념하는 학술 세미나 ‘이승만의 정읍 선언과 대한민국 건국’을 개최한다.


'정읍 선언(정읍 발언)'은 1946년 6월 3일 이승만이 전북 정읍을 찾아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공식 언급한 발언을 의미한다. 이 자리에서 이승만은 “이제 우리는 무기 휴회된 공위(미·소공동위원회)가 재개될 기색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 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우리는 남방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 이북에서 소련을 철퇴하도록 세계 공론에 호소하여야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같은 정읍 선언은 38선 이남의 단독 정부 수립을 처음 언급한 것으로 평가됐고, 좌파 학자들은 이를 ‘한반도 분단의 원흉'이라고 공격하는 근거로 삼아왔다.


이승만은 1945년 8월 15일 광복 직후부터 한반도에 통일 민주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미·소·영·중 정상에게 전보를 보냈다. 귀국 후 38선 철폐 운동을 벌이는 한편 자신과 김구, 조만식, 김일성으로 구성된 남북 지도자 모임을 개최해 그해 12월까지 정부를 만들 계획을 세웠다. 이듬해 3월 미·소공동위원회가 열려 한반도 내 정부 수립을 논의했으나 교착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소련의 스탈린은 이미 1945년 9월 20일 북한에 ‘38선 이북에 정권을 수립하라’는 지령을 내린 상태였다. 지령에 따라 1946년 2월 평양에 들어선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김일성에게 권력을 집중하고 화폐를 발행했다. 또 군대를 창설하고 토지개혁을 단행했다.


정읍 선언은 이같은 상황에서 나왔다. 우남네트워크 공동 대표 박명수 서울신학대 명예 교수는 "당시 이승만은 미·소공동위원회가 이미 실패했다고 봤다. 남은 방법은 남한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은 뒤 소련을 압박해 통일 정부를 세우는 방안이 현실적인 목표였다"면서 "정읍 선언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닌 새로운 통일을 위한 선언"이라고 평가했다.

 

오영섭 대한민국사연구소장은 "당시 많은 정당과 단체, 신문이 정읍 선언에 반대했다"면서도 "이들은 소련이 북한을 위성국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던 사실과 반탁(反託) 단체들을 임시정부 협의체에서 배제하려 한 현실을 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번 학술 세미나를 개최하는 우남네트워크는 2021년 발족한 단체로, 이승만의 건국 정신을 널리 알리고, 이승만과 관련된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승만 연구 및 기념 사업 단체 회장과 개신교 목사, 역사학자 등이 주축이 되어 활동한다.


글=김세윤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23.05.22

Copyright ⓒ 조선뉴스프레스 - 월간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NewsRoom 인기기사
Magazine 인기기사
사진

김세윤의 ...

gasout@chosun.com
댓글달기 0건
댓글달기는 로그인 하신 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내가 본 뉴스 맨 위로

내가 본 뉴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