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헬기가 이륙한지 10분 만에 실종된 것을 두고 중국군에 의한 격추설(說)이 떠도는 가운데, 현지에선 이번 음모론이 미칠 파장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일각에선 중국에 해명을 요구할 경우, 양국이 분쟁을 빚고 있는 사고 해역 근처 센카쿠 열도에 중국이 들어올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복수의 현지 매체에 따르면 지난 6일 일본 육상자위대 소속 헬기가 미야코지마 기지에서 이륙한지 10분 만인 오후 3시 56분 레이더에서 사라져 실종됐다. 해당 기체는 사카모토 유이치 제8사단장을 비롯해 10명의 자위대원이 탑승한 상태였다. 사고 기종은 ‘블랙 호크’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UH60JA 다목적 수송기다.

일본 방위성(한국의 국방부에 해당)은 ‘항공 사고’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그러나 온라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격추설’이 제기되고 있어 중국과의 긴장 관계를 신경 써야 하는 일본 정부의 입장만 곤란해졌다.

다만 격추설이 제기된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고 발생 시점이 낮인 데다가 바람도 초속 7m의 남풍으로 그리 심하지 않았고 가시거리는 10㎞가 넘었다. 사고 헬기가 마지막으로 점검을 받은 시점이 지난 3월 말이라서 정비 불량일 가능성도 낮다. 또 육상자위대에 따르면, 사단장이 탑승한 헬기엔 특히 숙련된 조종사가 선발된다고 산케이 신문이 전했다.

무엇보다도, 사고 해역인 미야코지마 근해에서 중국 해군 정보수집함이 항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군에 의한 격추가 아니냐는 설(說)이 증폭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군 공작원에 의한 레이저나 사이버 공격이 기체에 가해졌다’는 등 근거 없는 낭설이 부풀려졌다. 하마다 야스카즈 방위상은 이번 사고와 중국과의 관계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중국군 격추설에 대해 야마토 타로 통합막료감부(한국의 합동참모본부) 총괄관(한국 직제상 합참차장 바로 아래 직급)은 참의원(국회) 외교 방위 위원회에서 “(중국군 항행은) 사고 발생과는 크게 떨어진 시간이었다”며 (사고와의) 관련성은 아직 확인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자위대는 일본 주변 해공역에서의 중국군 동향을 24시간 체재로 경계 감시하고 있다고 한다.

가뜩이나 중국과의 긴장 관계가 부담스러운 일본 현지에선 이번 사고가 미칠 파장에 조심스러운 분위기다. 현지 국제 외교 전문가는 일본 매체 ‘마이도나 뉴스’에 “중국에 해명을 요구하면 일중(日中) 관계에 또 다른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고 기고했다. 그는 “센카쿠 열도에선 중국 해경에 의한 침범이 계속되고 있지만 일본의 근거 없는 요청을 계기로 중국 해경이 공격적인 대응을 첨예화시켜 센카쿠 열도 상륙·지배라는 행동으로 나올 우려가 있다”고 경고했다.

한편 중국이 최대 교역국이라는 점도 일본이 음모론 진화에 급급한 이유다. 일본은 이미 미국의 대중(對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동참한 상태다. 지난달 말 일본은 중국에 반도체 제조 장치 등 관련 분야 23개 품목을 수출 규제했다. 이에 맞서 중국은 희토류 관련 기술 규제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양국이 2010년 센카쿠 열도 갈등을 빚을 때도 중국이 활용한 조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