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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취] 풍자로 위력 떨친 1세대 시사만화가 박기정

“가위에 눌리는 꿈을 요즘도 꿔요”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kimch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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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기정 화백, 박기정이 그린 박정희 대통령, 장택상 총리, 장면 총리, 윤보선 대통령, 조병옥 박사, 이기붕 의장이다.

1세대 시사만화가 박기정(朴基禎, 1934~2022) 선생이 18일 별세했다.


기자는 2013년 《월간조선》 3월호에서 고인과 <현대사의 인물과 캐리커처>에 대해 길고 재미난 이야기를 나눴었다. 중국요리집에서 고량주를 앞에 두고 가진 인터뷰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한국 현대사에서 신문이 위력을 떨친 이유가 있었다. 바로 기자들의 ‘펜’ 못지않게 풍자(諷刺)로 무장한 시사만화, 그중에서도 캐리커처의 위력을 무시할 수 없다. 

 

우리 시대 대표적인 캐리커처 작가가 바로 박 화백이었다.


그는 기자에게 “내가 그리지 않은 명사(名士)는 명사가 아니었고, 대한민국 인물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대담하게도, 신문 1면에 캐리커처가 실리면 사방에서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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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정 화백의 생전 모습이다.

 

박기정 화백은 1956년 옛 《중앙일보》에서 시작해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거쳐 《중앙일보》에서 정년을 마쳤다. 한국 만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2004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기자가 인터뷰하는 곳이면 사진기자 대신 현장을 찾아 캐리커처를 그렸다. 명사들은 그에게 잘 그려달라는 청을 넣거나 청와대, 중앙정보부를 통해 압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박 화백은 그런 청탁에 대해 “내가 잘 그려줄 사람이우? 항상 내 마음대로였지…”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기억을 떠올렸다.

 

 “내가 잘 그려줄 사람이우? 항상 내 마음대로였지…”

 

“1000여 명을 그렸는데 대체적으로 여자들이 그리기 더 힘들었어요.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국회의원을 하던 박범진(朴範珍)씨였습니다. 박 의원은 학교 후배였는데, 나를 보더니 ‘선배님 잘 그려주세요’ 그러는 게 아닙니까. 그 소리를 듣고 났더니 더 안 그려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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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8월 14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박정희와 윤보선의 캐리커처는 당시로선 드물게 풍자적이다. 이 그림은 김성환·박기정·백인수(白寅洙) 화백이 함께 그렸다. 윤 전 대통령이 박순천(朴順天·1898~1983) 민중당 대표에게 ‘소근소근’대자 선글라스를 쓴 박 대통령이 “윤 선생! 제발 훈수 좀 두지 마시오”라고 소리친다. 박 대통령 곁에 얼굴도, 입도 없는 김종필(金鍾泌·당시 중앙정보부장) 총리가 ‘속닥속닥’하는 장면도 나온다.

 

박 화백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과장의 묘미가 캐리커처입니다. 냄새를 잘 맡아야 하죠. 펜 끝에서 인품이 풍겨 나와야 합니다. 붓 선에 사람의 굵기, 그러니까 인품이 섞여서 나와야 좋은 작품이 됩니다. 조병옥(趙炳玉·1894~1960) 박사, 변영태(卞榮泰·1892~1969) 총리, 김병로(金炳魯·1887~1964) 초대 대법원장, 태완선(太完善·1915~1988) 경제부총리와 같은 분들은 선이 아주 굵은 분들이죠. 최남선(崔南善·1890~1957)은 선은 단순하지만 어떤 냄새가 풍기는 분이죠. 윤보선(尹潽善·1897~1990) 대통령은 캐리커처에서 왠지 꼬장꼬장한 느낌이 묻어납니다.”


시사만화의 풍자 시대가 막을 내렸느냐는 질문에 박기정 화백은 사진만으론 밋밋하다고 말했다. 아직 막을 내리지 않았다는 말을 에둘러 표현했다.

 

은퇴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지금도 한 달에 3~4번은 마감에 쫓기는 꿈을 꾼다고 고백했다. 일간지 풍자 만화가의 마감시간이 얼마나 고되고 혹독한지도 이야기했다. 


“옛날 신문 1면에 그림이 들어가면, 가판 지면이 달라져 보였어요. 그림이 인기가 없었다면 30~40년 동안 캐리커처를 그리며 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독자들은 비주얼 한 것에 반응하죠. 사진만으론 밋밋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만평이고 뭐고 치열해야 합니다. 지면마다 만평 경쟁이 붙으면 다시 신문 독자도 늘 것입니다. 신문이 영상매체에 자꾸 지고 만평도 줄어들고 있고, (다른 매체와) 대결하는 무기가 사진밖에 없어요. 하지만 사진만으론 영상에 눌릴 수밖에 없어요.”

 

가위에 눌리는 꿈을 요즘도 꿔요

 

이런 말도 했다.

 

“마감 시각에 종이가 없어 찾으러 다니거나, 편집자가 문 열고 얼굴을 비치고 갑니다. 마감이 임박하니 빨리 (만평을) 내놓으란 뜻이지요. 그런 가위에 눌리는 꿈을 요즘도 꿔요. 참….

 

심지어 잘 때도 만평 연구를 했다고 한다.

 

“《중앙일보》에 제 후임으로 왔던 김상택(金相澤) 화백도, 《조선일보》 신경무(申景武) 화백도 저세상으로 갔어요. 김 화백의 경우 술을 못했는데… 정신노동의 스트레스를 풀어줘야 해요. 저는 술을 마셨어요. 낮에 술을 한 잔 마시고 확 잊어버리지 않으면 못해요.

 

—신문과 잡지가 점점 독자의 외면을 받고 있어요.

 

 “요는 만화계 자체도 문제입니다. 신문이 만화가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데, 제대로 안 됐어요. 신문·잡지는 기획기사를 잘 써야 하고, 영상매체가 못하는 것을 찾아야 하되 재미있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만평, 4칸 만화조차 없앤 신문이 많아요. 신문마다 만화가 다시 나와야 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입력 : 2022.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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