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이를 낳기로 선택한 그 여자는 그 후 어떻게 됐을까. 영화 <둠둠>은 선택을 이야기한다.
주인공 이나(김용지)는 혼자 아이를 낳는다. 엄마(윤유선)의 반대 때문에 이나는 딸을 위탁 가정에 맡겨 놓고 있다. 남편을 잃은 후 혼자 이나를 키워온 엄마는 마음에 병을 앓고 있다. 세기말 감성을 넘어선 프레퍼족(지구 종말에 대비하는 사람들)으로 변신 중이다. (집 지하에 벙커를 짓는다)
이나는 콜센터 알바를 하며 틈틈이 딸을 보러 위탁 가정을 찾는다. 그러던 어느날 길을 걷다 음악과 재회한다. 출산과 함께 포기하다시피 했던 음악이었다. 그녀는 음악을, 아이를 되찾을 수 있을까.
엄마 신애 역을 맡은 윤유선
영화는 이나의 현재를 응시한다. 아이 아빠는 누구이고, 어떻게 된건지, 엄마는 왜 그런 사람이 된 건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는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이나의 엄마는 사람들의 시선에 구속되기로 선택하고, 이나는 그런 엄마의 선택에 종속되기로 선택한다.
그러면 그렇지, 앞날을 희생하고 미혼모로 살 수는 없지, 통속적인 이들의 선택에 균열을 만든 건 상처다.
급히 제왕절개 수술을 해야했던 딸, ‘배에 흉터가 남으면 안된다’며 수술 동의를 하지 않은 엄마. 딸은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며 엄마에게 상처를 보여준다. 역시 약자인 태국 여성은 교회 일을 열심히 도우면, 고국에 남겨 놓고 온 딸을 데리고 와주겠다던 약속이 물거품이 된 걸 알자 말다툼 끝에 엄마의 몸에 상처를 낸다. ‘홀어머니’라는 타인의 규정에 갇혀 피폐하게 살기로 한 자신의 선택이 딸을, 딸과 같은 타인의 상처를 얼마나 후볐는지 엄마는 비로소 깨닫는다.
DJ 이나를 연기한 배우 김용지
이 영화는 관객과 사회의 성장영화이기도 하다. 미혼모라 불리든, 싱글맘이라 불리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기로 한 여성의 어느 시기를 담담이 지켜보며 그 시선을 관객들에게 전염시킨다.
엄마는 두 손을 모으고 ‘딸의 몸과 마음에 묻은 얼룩을 깨끗이 지워달라’ 기도한다. 한 인간이 자신에게 찾아온 아이를 낙태하지 않고 낳기로 한 선택. 훈장까진 아니겠지만 인생의 얼룩은 더더욱 아니라는 것, 얼룩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영화는 순한 시선으로 이나를 지켜본다.
‘아이는 엄마가 키운다’는 그 당연한 명제를 두고 한국 사회는 참 긴 길을 돌아왔다. 갈망했던 ‘선진국’이 된 지금도 우리는 아이들을 수출하고 있다. 출생아 대비 국제 입양 비율은 중국보다 7배 높다. 기가 막힌 건 박근혜 정부니 문재인 정부니 할 것 없이 역대 정부들이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지출한 예산의 액수다. 2006년 이후 16년동안 약 198조원을 저출산 예산이라며 지출했다. ‘아이를 낳으라’며 돈을 퍼부으면서, 한 쪽에선 아이를 외국에 수출하는 괴상한 나라가 되어버렸다. 그러므로 이 영화는 어쩌면 시사 다큐보다 더 강하게 우리 사회 균열을 지목하고 있기도 하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하임
부담스러울 수 있는 소재를 다룬데다, 커다란 서사마저 없는 이야기를 영화는 지루하지 않게 풀어간다. 김용지의 매력적인 마스크와 윤유선의 연기력이 황금비율로 어우러진 느낌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음악도 큰 역할을 했다. 일렉트로닉 뮤지션 하임(haihm)과 신범호 음악감독의 작품이다. 디제잉(DJ)와 클럽이라는 장치 덕에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이야기가 힙(hip)하게 전개된다. 일렉트로닉 뮤직의 매력을 새삼스럽게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이 영화의 미덕이다.
정원희 감독
시대와 사회를 차분히 바라보며 온기를 지니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있는 여성 감독을 만난 기분이다. 다만 마지막 결말엔 조금 의문이 든다. 굳이 이나와 신애(엄마)가 교회에서 디제잉 공연을 하는 장면이 필요했을까. 이들의 선택이 그런식으로 다소 어색하게 교회가 상징하는 사회의 승인을 받는 결말 대신, 이를테면 이런 결말은 어땠을까. 엄마가 꾸민 지하 벙커에서 디제잉 공연을 하며 모녀 3대가 서로를 담백하게 응시하는 식의 결말 말이다.
9월 5일 용산cgv에서 열린 시사회에서 뮤지션 하임은 ‘이나를 응원해달라’고 말했다. 거기에 더해, 이나처럼 되고 싶었지만 아이를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여성들에게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글=하주희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