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의 ‘건국 100년’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17년에 펴낸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 정치의 주류세력 교체를 강력하게 주장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이덕일이라는 역사학자가 《노론의 나라》라는 역사책을 썼지요. 조선시대 때 세도정치로 나라를 망친 노론세력이 일제 때 친일세력이 되고, 해방 후에는 반공이라는 탈을 쓴 독재세력이 되고, 그렇게 한 번도 제대로 된 청산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여전히 기득권으로 남아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들 스스로 보수라고 자처하지만 기본적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서양의 귀족들은 전쟁에 먼저 출정해서 희생을 치렀는데, 우리는 오히려 특권층이 세금도 제대로 안 내고 병역도 피하고, 국가에 대한 기본 의무조차 다하지 않고 특권만 누리는 반칙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겁니다. … 그래서 제가 지금 '대청소'를 주장하고 있는데, 실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사진=김형석 제공

그런데 여기서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국립중앙도서관이나 국회도서관에서 아무리 검색해도 이덕일이 쓴 《노론의 나라》라는 책은 없다.

아마도 노론의 첫 번째 영수이던 송시열(1607~1689)을 다룬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를 잘못 기억한 듯하다. 그러면 이 책에서는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2000년에 나온 이 책에는 ‘친일’ ‘반공’이란 말은 토씨 하나 언급되지 않는다. 그런데 2016년에 나온 개정판 서문에는 이런 내용이 등장한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초판(2000, 좌)과 개정판(2016, 우)

“송시열이 절대화 시킨 주자학 유일사상은 양명학과 천주학을 비롯한 다른 사상의 씨를 말렸다. 그가 만든 주자학 절대주의 체제, 즉 노론 일당의 장기집권 체제는 국왕까지도 그 범주에 가둬 두는데 성공했다. 급기야 마지막 노론 당수 이완용이 일제에 나라를 팔아먹는 지경까지 타락했다. 그리고 해방 후 친일 청산에 실패하면서 이들은 여전히 현실 권력이 되었다. 그러나 송시열이 살아서 여전히 노론의 영수였다면 노론은 일제에 나라를 팔아 먹는 지경까지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송시열에게 일왕은 금수와 같은 오랑캐에 불과했기 때문에 송시열은 주저 않고 위정척사의 깃발을 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완용을 ‘마지막 노론의 당수’라고 한 주장도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지만, 여기에 덧붙여서 노론세력이 친일파가 되고, 해방 후 다시 ‘반공 독재세력’이 되었다는 주장은 그야말로 말장난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는 역사적 교훈은 극단적인 이념 대립과 파벌 분쟁이 난무하는 나라는 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은 이 같은 책의 내용을 작위적으로 해석하여 ‘노론’과 ‘친일’ ‘반공' '보수’를 동일시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명분을 바탕으로 삼아 주류 정치세력 교체를 주장한 것이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프로파간다(propaganda)이다.

2017년 5월 10일 제19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문재인은 그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국민 주권의 시대’를 선언하고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라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역대 대통령이 하나같이 천명해 온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광복절 경축사를 보면, 건국 10주년(1968년 이승만) 건국 20주년(1968년 박정희) 건국 30주년(1978년 박정희) 건국 40주년(1988년 노태우) 건국 50주년(1998년, 김대중) 건국 60주년(2008년, 이명박) 등 10년을 주기로 반드시 ‘대한민국 건국’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건국을 기산하는 것은 역사를 정리하는 것이지, 이데올로기나 정치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뒤이은 2018년 3·1절 기념사에도 “새로운 국민주권의 역사가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향해 다시 써지기 시작했다”면서 ‘3·1운동으로 인한 임정 수립 100년’이 ‘대한민국 건국 100년’임을 강조하고, 건국 100주년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주목할 것은 이때 공동위원장으로 실질적 리더이던 한완상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분단 고착과 남북 갈등으로 정치적 이득을 보아왔던 대한민국 주류(기득권)세력의 구조를 3·1운동 정신으로 바꾸는 역할을 감당하겠다. 단순히 100주년 프로그램을 준비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본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될 것이다”고 밝혔다.

문재인이 말한 ‘대청소’가 한완상에 의해 '정치 주류세력 교체'로 밝혀진 것이다. 이것은 평소 20년 장기집권을 주장하다가 2018년 10월 평양에서 북측 인사를 만나 "생전에 정권을 뺏기지 않겠다"고 발언해 파장을 일으킨 이해찬의 소신과도 일치한다. 그런 점에서 유추해보면, 문재인 정부의 건국 100년 사업은 단순한 역사인식의 문제가 아니다.

2018년 9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이 평양 옥류관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오찬을 마친 후 특별수행원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김 국무위원장, 문 대통령,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정의당 이정미 대표, 최문순 강원지사.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이들이 의도한 목표는 기득권 세력(보수세력)을 타파하고 장기집권을 통해 한반도에 새로운 평화 질서인 ‘신한반도 체제’를 구축하여 돌이킬 수 없는 평화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처럼 문재인 정부의 ‘건국 100년’은 단순한 국가 기념행사가 아니라, 역사전쟁을 마무리하고 장기 집권을 꾀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의 비협조로 남북 공동의 '건국 100년'을 선포하지 못하고, 대신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한 다음 날인 2019년 4월 12일 역사문제연구소와 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가 공동으로 <국가 정통론의 동원과 ‘역사전쟁’의 함정>이라는 제목의 학술회의를 개최하였다. 이날 발표한 <학술회의 취지문>에는 그 이유가 잘 나타나 있다.

“한국 근현대사는 어쩌면 ‘국가주의의 승리의 역사’이기도 했다. …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런 방식의 역사 만들기가 한국사 교과 서 국정화를 강행했던 과거 정권에 국한된 문제인지 커다란 의구심을 갖고 있다. 특히 우리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점으로‘건국 백년’이 운위되는 것에 대해 큰 문제의식을 느낀다. 이는 학계를 포함해서 공론장의 충분한 논의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의 결과인 것이 분명하다. 또 현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추진하고 있는 전시 내용 역시 ‘건국 백년’이라는 구도에 맞춰져 있다면 더 큰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건국 100년’이 정치적 선택의 결과였다는 역사 학계의 뼈아픈 지적이자, 그런 의도를 인지하고도 휩쓸린 데 대한 역사학자들의 자기성찰이었다. 이들 단체는 2008년 ‘건국절 철회를 촉구하는 역사학계의 성명서’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더욱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의 역사전쟁은 ‘건국 100주년 사업’에 국한되지는 않았다. 2018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생활 속의 적폐청산 의지’를 피력했다. 그리고 5월 13일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은 새 정부 국정과제 1호인 적폐청산 1년에 대해서 “적폐청산과 부패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주무부서인 민정수석실은 법과 원칙에 따라 그 과제를 추진해왔다.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보고하면서, 방향성을 ‘권력형 적폐’ 청산을 넘어 민생 영역의 ‘생활 적폐’ 청산으로 전환할 방침을 밝혔다.

경남도교육청 정원에 심겨진 가이스카 향나무를 뽑아내고 있다. (2019.2.16) 사진=김형석 제공.

곧이어 생활 적폐 청산은 교육현장에서 친일잔재 청산으로 나타났다. 2019년이 시작되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교육계가 일제 잔재청산에 팔을 걷어붙였다. 교과서에서《친일인명사전》에 실린 작곡가 9인(김동진·김성태·김재훈·안익태·이종태·이흥렬·조두남·현제명·홍난파)의 노래를 빼고, 이들이 작곡한 교가도 바꾸도록 독려했는데, 그 대상이 전국적으로 214개교였다. 경상남도교육청은 정원에 있는 일본 가이스카 향나무를 뽑아내고, 그 자리에 고유종인 소나무를 심 었다. 이런 일이 전국의 교육현장에서 경쟁적으로 일어났다. 21세기 초일류 국가를 지향하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에서 가이스카 향나무를 찾아 뽑아내는 기가 막히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이 무렵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의 <죽창가> 사건이다. 7월 14일 조국은 페이스북에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죽창가>를 소개했다. 이틀 전 그가 ‘아베 정권의 졸렬함과 야비함’ ‘실질적인 극일’을 언급한 언론 칼럼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과 연관지어 동학운동 당시의 반일 항쟁을 현재 양국 갈등 상황에 빗댔다는 관측이일면서 반일 투쟁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되었다.

곧 이어 2019년 8월 2일 일본이 각의에서 수출심사우대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다. … 반드시 일본을 뛰어 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문재인 정부는 항일전쟁에,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친일잔재 청산에 몰입하였다. 이렇게 문재인 정부 5년의 친일전쟁은 한국정치의 세력구도를 바꿔 좌파정권의 장기 집권을 꾀하려는 역사전쟁이었다. 그 중심에 문재인의 '건국 100년'이 자리하고 있다.

김형석 ‘대한민국 역사와 미래 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