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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이재명, "국민의힘은 광주학살세력 후예"...그럼 더불어민주당은 소위 '제주4.3학살'세력의 후예인가?

더불어민주당이 뿌리라고 내세우는 민주당 창당 주역-당수-대선 후보 지낸 조병옥은 4.3진압 주도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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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옥 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왼쪽)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상임선대위원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총괄상임선거대책위원장은 5월18일 국민의힘이 광주 학살세력 후예라고 주장했다. 

이재명 위원장은 이날 오전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의원들의 5·18 기념식 참석에 대해 평가해달라고 하자 “원래 국민의힘이 광주 학살세력 후예이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이 위원장은 “(국민의힘은) 민정당(신군부가 창당한 민주정의당), 군사정권의 후예들인데 그 후에도 국민의힘은 (5·18 행사 때) 광주에 안 가거나 가더라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거부하고 모욕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위원장의 말처럼 국민의힘으로 대표되는 이 나라 보수정당의 뿌리가 전두환 정권 시절의 민정당에 닿아 있는 것은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 시절의 민주공화당, 이승만 정권의 자유당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의 국민의힘이 ‘민정당의 후예’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민정당은 1990년의 3당 합당으로 과거 이 나라 정통야당의 맥을 잇는 김영삼 세력(통일민주당), 박정희 정권에 뿌리를 둔 김종필 세력(신민주공화당)과 함께 민주자유당(민자당)을 만들었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민정계가 당의 주류였지만 1993년 김영삼 정권 출범과 함께 당의 주류는 YS계로 바뀌었다. 1995년 김종필계를 밀어내면서 민자당은 신한국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1996년 총선, ‘역사바로세우기’를 내세운 김영삼 정권의 12‧12 및 5‧18 수사와 재판, 1997년 한나라당 출범과 이회창 총재의 당권 장악, 2000년 총선 등을 거치면서 당내 민정계는 소멸했다. 이후에도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에는 이명박당(黨)이 되었고, 2012년 새누리당으로 개칭한 후에는 박근혜당(黨)이 되었다. 오늘날 국민의힘에는 전두환 정권이나 민정당에 인연을 가진 정치인은 없다.


그럼에도 민주당 계열의 정당과 정치인들은 걸핏하면 이 나라 보수정당을 향해 ‘광주학살세력의 후예’라고 비방하고, 일부 국민들은 그런 주장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런 논리대로라면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에 대해서는 “4‧3학살세력의 후예”라는 비난도 가능하다. 

지금 더불어민주당이 자신들의 뿌리라고 공언하고 있는 민주당은 1955년 출범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추미애 대표 시절인 2017년 9월 18일 창당 기념행사를 민주당 당수였던 신익희 선생의 경기도 광주(廣州) 생가에서 열기도 했다.

민주당은 대체로 한국민주당에 뿌리를 두고 있는 구파(舊派)와 흥사단 및 자유당 탈당파에 뿌리를 두고 있는 신파(新派)가 양대 축이었다. 신익희, 조병옥, 윤보선, 김도연, 유진산 등이 전자(前者)였다면, 장면, 곽상훈, 오위영 등은 후자(後者)였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구파,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신파의 맥을 이었다.

그런데 그 중 구파의 거두였던 조병옥은 미군정 시절 군정청 경무부장(지금의 경찰청장)으로 좌익세력을 진압한 주역이었다. 그는 남로당을 비롯한 좌익세력에 단호하게 대처했고, 제주 4‧3사태 당시에도 강경진압을 앞장서 주장하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조병옥은 민주당 창당 이후 최고위원, 대표최고위원(당수)을 거쳐 1960년에는 민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섰다가 지병(持病)으로 세상을 떠났다. ‘민주당’의 맥을 잇는 이 나라 정통 야당의 역사에서 조병옥은 지울 수 없는 이름이다.

 

원래 민주당 구파는 야당이기는 했지만 대한민국 건국의 주도세력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반공 자유민주주의를 전면에 내걸었고, 이런 전통은 1970년대까지도 면면히 이어졌다. 하지만 1980년대에 들어와 김영삼-김대중 세력이 민주화운동의 주역이 되면서 야당의 세대교체가 시작됐다. 1990년 3당 합당 이후 김대중 세력은 야당의 길을 계속 걸으면서 1992년 총선, 1996년 총선, 2000년 총선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재야 운동권 세력을 수혈(輸血)했다. 특히 1980년대 운동권 세력을 집중 영입했다. 그러면서 ‘김대중 야당’은 소위 ‘진보정당’으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은 2004년 총선에서 이른바 ‘탄돌이’라고 불리는 86운동권세력이 대거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면서 가속화되었다.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에서 과거 ‘반공 자유민주 야당’의 흔적은 발견하기 어렵다.

만일 오늘날 더불어민주당이나 이재명 선대위원장을 향해 누군가가 “민주당의 주역 조병옥이 4‧3제주학살의 주역이니, 더불어민주당은 4‧3학살세력의 후예”라고 비난한다면 그들은 수긍할까?

 

정당의 색깔은 때로는 정반대로 변하기도 한다. 미국 공화당은 1860년대에는 노예해방과 신흥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진보정당’이었다. 반면에 민주당은 그 시절에는 노예해방에 반대하고 남부 농장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정당’이었다. 하지만 1930년대 뉴딜시대를 거치면서 민주당이 먼저 ‘진보(리버럴)정당’으로 변신했고, 공화당은 이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점차 보수화되기 시작하다가 1980년대 ‘레이건혁명’으로 완전히 보수주의정당으로 탈바꿈했다.  2016년 트럼프 집권 이후에는 그러한 색채가 더욱 강해졌다.

 

정당의 색깔은 변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변화가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반영하는 것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람직한 것이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판단은 선거 때 국민들이 하면 되는 것이다.

경쟁 정당의 뿌리를 두고 ‘친일세력의 후예’니 ‘광주학살세력의 후예’니 하는 것은 후진적인 낙인찍기에 불과하다. 민주당이 계속 그런 ‘역(逆)매카시즘’을 고집하겠다면 그들도 ‘4‧3제주학살세력의 후예’라는 비난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덧붙임) 기자가 4‧3제주사태를 ‘학살’이라고 주장하는 세력에게 동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입력 :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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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진영 ‘어제 오늘 내일’

ironheel@chosun.com 어려서부터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2000년부터 〈월간조선〉기자로 일하면서 주로 한국현대사나 우리 사회의 이념갈등에 대한 기사를 많이 써 왔습니다. 지난 70여 년 동안 대한민국이 이룩한 성취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내용을 어떻게 채워나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2012년 조국과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45권의 책을 소개하는 〈책으로 세상읽기〉를 펴냈습니다. 공저한 책으로 〈억지와 위선〉 〈이승만깨기; 이승만에 씌워진 7가지 누명〉 〈시간을 달리는 남자〉lt;박정희 바로보기gt;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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